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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8 rue paradis Mother

도깨비-1 2012. 3. 25. 16:55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 (1992)

588 rue paradis Mother

 

감독

앙리 베르누이

출연

리샤르 베리 (피에르 자카르 역), 오마 샤리프 (하곱 역), 나탈리 루셀 (가얀 역),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아락시 (어머니) 역), 디안느 벨레고 (캐롤 역) 

 

줄거리

아르메니아에서 프랑스 마르세이유로 이주한 하콥(오마 샤리프)의 가족은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서로를 사랑하고 힘들게 일하면서 프랑스 사회에 정착하며 살고 있다. 하콥의 아들 아자드는 가족들과 갈등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이름을 프랑스 사람들이 발음하기 쉬운 ‘삐에르 자카르’로 개명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프랑스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프랑스의 유명 극작가로 성공한다. 그는 아르메니아식 이름을 고집하는 고지식한 부모님에게 자신이 대본을 쓴 연극을 보여드리기 위해 파리로 초대한다. 삐에르는 부모님을 극진히 모시기 위해 5성급 호텔로 모시는 등 정성을 다해 보지만 그의 부모님은 아들의 집이 아닌 호텔에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이 야속하기만 하다. 결국 삐에르와 그의 아버지 하콥은 서로에게 험한 말을 퍼부으며 싸우게 되고 급기야 삐에르가 자신의 진심을 보이기도 전에 하콥은 숨을 거두고 만다.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삐에르는 어머니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기로 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오랫 옛 이웃들이 살고 있으며 가족들이 프랑스에 처음 이민와서 살았던 왔던 지역의 고급 주택을 어머니께 선물한다.

제작노트

이 영화는 앙리 베르누이 감독이 만든 자전적인 영화 ‘메이리그(1991)’의 속편에 해당한다. 전편에서 40년이 지난 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편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아자드는 1915년에 아르메니아에서 태어난다. 1915~1923년에 있었던 터키 정부의 아르메니아인 대학살로 인해 어린 아자드는 아버지 하곱과 어머니 아락시, 이모 애나와 가이앤과 함께 프랑스 마르세이유로 강제 이주를 당한다. 프랑스에 도착한 아자드 가족은 문화적 충격과 가난에 시달리며 힘겹게 생활한다. 하지만 끈끈한 사랑 덕분에 프랑스 사회에 서서히 적응하게 된다. 또한 아자드는 자식에게 좋은 미래를 만들어 주려는 부모님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명문 학교를 졸업하고 엔지니어가 된다.

감독인 앙리 베르누이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한 담백하고 밀도 있는 대본과 오마 샤리프와 끌라우디아 까르디날레의 중후한 연기력은 40여년에 걸친 아르메니아 이민자들의 애환이 담긴 가족사를 한편의 수채화를 보듯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EBS)

 

아르메니아(Հայաստան / Հայք 하야스탄 / 하이크, 문화어: 아르메니야)는 캅카스 지방에 있는 내륙국이다.


공식 명칭은 아르메니아 공화국(Հայաստանի Հանրապետություն 하야스타니 한라페투티윤)이다. 수도는 예레반이며, 공용어는 아르메니아어이다. 조지아(그루지야), 아제르바이잔, 터키, 이란과 국경을 접한다. 1921년 예레반을 수도로 하는 아르메니아 소비에트공화국이 수립되고, 이듬해 소연방에 가입했다. 1990년 8월 주권을 선언하고 1991년 12월 독립국가연합에 가입하였다. 남카프카스의 산국(山國)으로, 강수량이 적고 기후는 건조하다. 주민은 아르메니아인 93%, 아제르바이잔인이 3% 등이다. 산업의 기초는 세반호(해발 1,900m)의 물에 의한 수력전기로서, 화학·야금공업(인조고무·질소·과린산비료·플라스틱·도료·동·알루미늄)이 발달해 있다.


역사

오스만 제국의 말기 (1915년 - 1923년)에 오스만 제국령 동부 아나톨리아 지역의 아르메니아인 150만 명이 살해되었다(터키에서는 아르메니아 사람을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소수의 희생자가 발생한 사건이라면서 아예 사건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이를 아르메니아인 학살 사건이라 부르면서 교회와 주민 모두 기념한다.) 지금도 터키와는 아르메니아인 학살 사건으로 사이가 안 좋다.

1920년대에 소련의 일부가 되었다가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와 함께 독립하였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이오시프 스탈린 치하에서도 대숙청을 당하는 치욕을 겪었다)

한때 아제르바이잔과 니고르노-카라바흐 자치구를 둘러싸고 분쟁이 있었다. 그로 인해 아제르바이잔과는 심지어 홈 어웨이 형식으로 이루어진(양국을 오가는) 유로 2008 예선 축구 경기조차 상호간 거부할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다.

콜롬비아 정부는 아르메니아인 학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자국의 도시인 비야올긴을 아르메니아라는 이름으로 바꾸기도 하였다.




아제르바이잔 공화국(Azərbaycan Respublikası 아재르바이잔 레스푸블리카시, 문화어: 아제르바이쟌)은 캅카스에 있는 투르크계 공화국이다.

동쪽은 카스피해와 접하고 있으며 북쪽은 러시아의 다게스탄 공화국, 서쪽으로는 조지아(그루지야)와 아르메니아, 남쪽으로는 이란과 접경한다.

아제르바이잔 영토내에 있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공화국은 아르메니아와의 전쟁 이후로 사실상 독립 상태에 있다. 또한 아르메니아의 남서쪽에는 아제르바이잔의 고립영토인 나히체반이 있다. 터키의 지배를 받았으나 러시아-터키전쟁 결과 러시아에 편입되었으며 1922년 소련에 가입했다. 1991년 독립하였으며, 1993년 CIS에 가입했다. 나라의 3면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중앙은 넓은 쿠라 아라쿠스 저지로 되어 있다. 산지에는 강수량이 있으나 중앙 저지는 건조하여 스텝지대를 이루고 동남쪽 구석의 렌코란 평야는 아열대 기후이다. 주민은 아제르바이잔인이 90%, 러시아인이 3%, 아르메니아인이 2%, 다게스탄인이 3%이다. 이 나라는 석유와 석유제품, 기계제조, 면화, 과수, 포도의 재배, 포도주 양조, 양잠업으로 뛰어나다. 에너지원은 석유, 천연가스, 수력전기인데 석유는 질이 좋으며 주로 바쿠 부근의 육상과 카스피해의 해저에서 산출된다. 공업은 석유업장치류, 강관(鋼管), 알루미늄의 제조 등이다. 관개로 면화·쌀·담배 등이 재배된다.


역사

1918년 조지아(그루지야), 아르메니아와 함께 공화국으로 독립하였고, 세 나라 모두 국명에 '민주 공화국'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예전부터 3국을 지배해 온 소련이 또 다시 3국을 다시 지배하였고 1991년에 구 소련이 해체된다. 한 때 이 나라는 아르메니아와 분쟁이 있었다. 2008년 10월 15일에 아제르바이잔은 총선에서 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다.[5] 아제르바이잔은 최근 대통령 임기제한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 나고르노카라바흐는 남부 캅카스의 지역으로 아제르바이잔 속에 있는 공화국이다. 이 지역은 아르메니아인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고 사실상 아르메니아 군대의 지배하에 있다.

아르메니아인들이 1991년 12월 10일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NKR)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이 나라의 주권은 아르메니아만 인정하고 있으며 수도는 스테파나케르트이다. 국제 사회에서는 이 나라를 "아르메니아의 괴뢰 정부"라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