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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영화 흥행 위해… 아는 사실 말 안했다는 판사

도깨비-1 2012. 1. 28. 15:18


[기자수첩] 영화 흥행 위해… 아는 사실 말 안했다는 판사

'석궁테러' 김 교수 복직소송 패소 판결 내린 이정렬 판사
자신이 불리한 상황 놓이자 "부러진 화살, 사실과 다른 듯"


  - 이명진 사회부 기자/ 조선일보 2012.01. 28.

   영화 '부러진 화살'로 인터넷과 SNS가 북적거리고 정치권이 '단체관람 운동'에 나섰다. 2007년 복직 소송에서 진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가 판사를 석궁(石弓)으로 쏜 사건의 재판이 거꾸로 됐다는 이 영화를 본 사람들 중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거나 "영화는 허구를 담을 수 있다"고 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절대다수는 영화가 진실이고 그 재판이 잘못됐다고 생각할 것이란 게 기자의 생각이다. 영화를 만든 사람들 스스로가 '사실(事實·fact)' 문제를 다뤘다고 하고 "100% 실제와 가까운 실화(實話) 영화"라고 말하고 있다.
   일부에선 이런 영화가 사법부의 권위주의를 고발하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런 뜻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재판이 거꾸로 됐다' '증거가 조작됐다'고 하는 것은 그런 의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일선 판사들은 "법원이 무차별적으로 매도되는 상황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며 법원 내부 게시판에서 댓글 달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여간해선 앞에 나서지 않는 50대 고법부장 판사가 캠페인을 제안하고 나섰다. 캠페인이 시작되자마자 "짜증 난다" "사필귀정의 날이 올 거다" "규탄한다" 같은 울분을 담은 글들로 게시판이 도배됐다.
   묘하게도 당시 김 교수 복직 소송의 주심(主審)을 맡았던 사람이 이정렬 창원지법 부장판사다. "가카새끼"라는 발언으로 유명해진 그 사람이다. '가카새끼' 판사가 억울한 피해자를 만드는 데 일조한 사람이 된 것이다.
   이 판사가 최근 법원 게시판에 글을 올려 심경을 밝혔다. 그 글의 전체적인 내용은 영화가 사실과 다른 것 같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자신의 명예도 훼손돼 억울하다는 취지다. 그런데 그의 글에서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부분이 눈에 띄었다. 이 판사는 "영화와 관련해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을 밝힌다면 영화 흥행에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썼다. 그래서 사실을 밝히지 않고 참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판사가 계속 참고 있으면 영화가 흥행에 더 성공해서 수많은 관객이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믿을 수도 있게 된다. 다른 사람도 아닌 판사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믿기 어려웠다.
   그런 그가 끝까지 참지 못하고 사실을 토해낸 것은, 자신이 억울한 사람을 만드는 재판 과정의 한 주역으로 매도당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자신에게만 피해가 없었다면 이 판사는 영화의 흥행을 위해 끝까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을 것 같다.
   그의 글에서 놀라운 부분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 판사는 김 교수가 낸 복직 소송에서 김 교수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당초엔 김 교수 승소로 판결하려다가 뒤늦게 어떤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고 패소로 바꿨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판사는 "항상 들었던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상고심에서 뒤집어지든 어떻든 간에 변론재개 없이 그냥 원고(김 교수) 승소로 선고가 되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싶기도 하다"고 했다. 재판을 받는 국민 입장에선 실제 이렇게 내려지는 판결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27일 차한성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이 영화는 사법 테러를 미화(美化)한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 그러나 이정렬 판사에 따르면 '몇몇 법원 가족'은 이 판사에게 "누구 지시를 받아 미리 결론을 내놓고 짜맞추기식 엉터리 판결을 했느냐"고 비난했다고 한다. 영화를 그대로 믿은 것이다. 그 '법원 가족'들은 '엉터리 재판' 지시를 한 사람이 "청와대다" "대법원장이다" "삼성이다"라고도 했다고 한다. 이게 다른 곳도 아닌 법원 내에서 벌어진 일이다. 법원은 먼저 자기 내부를 돌아봐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