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박철순 등)

[스크랩] [박광민의 베이스볼 다이어리] 최동원, 그가 남긴 위대한 유산

도깨비-1 2011. 9. 15. 11:38
[박광민의 베이스볼 다이어리] 최동원, 그가 남긴 위대한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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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미디어다음]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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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 [OSEN=박광민 기자] 옛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표현이 있죠. 그런데 자신의 이름도 남기고 사람이라는 위대한 유산까지 남기고 세상을 떠난 별이 있습니다.

'불멸의 투수' 최동원이 향년 53세의 생을 마감하고 14일 오전 2시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 소식에 많은 야구팬들의 마음이 아팠습니다. 특히 지난주 장효조 전 삼성 2군 감독이 운명을 달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최동원마저 세상을 떠나자 상실감이 더 크게 밀려오는 듯 합니다.

최동원. 그는 누구였나요. 최동원은 한국야구가 낳은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입니다. 지난 1975년 경남고 2학년 때 전국우수고교초청대회에서 경북고를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했고, 군산상고에게는 무려 탈삼진 20개를 뺏어내며 전국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후 연세대와 실업야구 롯데 시절을 거쳐 25살의 나이인 1983년 롯데 유니폼을 입고 프로무대에 데뷔한 최동원은 이후 놀랍고도 놀라운 불후의 기록들을 남겼습니다.

최동원이라는 이름이 던져졌을 때 야구팬들에게 가장 많이 회자되는 1984년 한국시리즈 4승, 그리고 폭포수 커브를 주무기로 1984년 한 시즌 최다 탈삼진(223개), 한국프로야구 최초 개인 통산 1000탈삼진, 1984∼1985시즌의 2년 연속 20승, 그리고 1983∼1987년까지 5년 연속 200이닝 이상 투구까지…. 기사에 다 찾아 적기에 부족할 정도로 많은 기록들이 최동원의 손 끝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최동원이 다른 야구선수들처럼 단지 야구 성적이 좋아서 위대한 선수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최동원의 특별한 유산은 아마도 기록이 아닌 사람을 남겼다는 점이 대단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많은 분들이 있겠지만 꿈많은 LG 트윈스 신인투수 임찬규와 NC 다이노스 김택진 구단주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14일 잠실구장에서 임찬규를 만났습니다. 그는 "정말로 최동원 선배님이 돌아가신 건가요"라고 반문한 뒤 "선배님은 저에게 영웅과도 같은 분이십니다"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대신했습니다.

임찬규는 지난해 휘문고를 졸업하고 올해 프로 첫 해지만 LG 마운드를 든든히 지키고 있습니다. 15일 현재 그는 59경기에 등판해 9승3패7세이브 평균자책점 2.83을 기록 중입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신인으로서는 믿기 힘든 성적표입니다. 가끔은 그의 두둑한 배짱과 더불어 마운드 위에서 당찬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임찬규는 "사실 이 모든 것은 최동원 선배님을 통해서 배운 겁니다. 중학교 1학년 때 한국시리즈 명장면을 TV를 통해 다시보기로 봤어요. 그 때 최동원 선배가 한국시리즈에서만 4승을 올렸잖아요. 4차전 이후부터는 공이 홈플레이트로 안 날아가더라고요. 근데 정신력이 느껴졌어요. 폼도 정말 거칠었던 것 같은데 저 공은 정말 못 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추억했습니다.

그러면서 임찬규는 "사실 최동원 선배를 한 번도 못 만나봤습니다. 야구 잘해서 한번 만나 뵙고 싶었는데 아쉽습니다. 진짜 아쉽습니다. 오늘 경기 전 전광판에 최동원 선배 사진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울컥했습니다"라고 말한 뒤 "비록 세상을 떠나셨지만 제 가슴 속에는 영원히 영웅이십니다. 앞으로 선배님처럼 멋진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다짐했습니다.

또 있습니다. 프로야구 9구단인 NC 다이노스 김택진 구단주는 지난 3월 31일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9구단 창단승인서 전달식 및 협약서 체결식'에서 "어릴 적 나의 우상은 최동원 투수였습니다"라는 깜짝 발언을 했습니다. 당시 김 구단주는 기자들과 첫 공식 석상이었는데요.

그 자리에서 김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야구를 좋아했습니다. 저는 빠른 볼을 던지고 싶어서 모래 주머니를 어깨에 차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중학교 때 커브가 너무 던지고 싶어서 만화를 보면서 벽에다 공을 던지며 연습도 했죠. 당시 제 우상은 커브를 잘 던지던 최동원 투수였습니다. 최동원 투수 때문에 저는 롯데팬이기도 했습니다"며 환한 웃음을 보였습니다.

김 구단주는 그렇게 '야구'라는 단어를 가슴 속에 세기며 성장해 아래아 한글부터 시작해서 리니지 신화를 일궈내며 NC소프트라는 기업의 대표가 됐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야구를 생각하면 가슴이 더 뛴다"고 말한 김택진 구단주. 이제는 IT 벤처 사업가를 넘어 당당히 야구단 구단주로서 삶도 살아가고 있는데요.

지금은 어엿한 프로구단주가 된 김택진 대표는 우상의 사망 소식에 14일 오후 빈소를 찾아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김 구단주는 "고인은 영원한 별이다"라며 목이 메인 목소리로 이야기했습니다. 슬픔이 컸던 만큼 김 구단주는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한 뒤 그저 눈시울만 붉혔습니다.

일단 최동원은 임찬규라는 어린 선수에게 꿈을 심어주고 떠났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는 임찬규라는 재능있는 야구선수 후배를 남겼습니다. 이 뿐이 아닙니다. 어릴 적 사신을 우상으로 생각했던 어린 학생을 기업가로 키웠고, 그 기업가는 이제 한국프로야구 9번째 구단 구단주가 되었습니다.

밤 하늘에 별이 떴다가 아침이면 다시 집니다. 그리고 밤이면 다시 뜹니다. 그러나 '최동원'이라는 별은 다시 뜨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는 임찬규, 그리고 김택진이라는 사람에게 별보다 밝은 꿈을 심어주며 위대한 유산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agass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