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상주이야기

[스크랩] 상주아리랑에 대하여

도깨비-1 2011. 3. 29. 16:09

     『상주아리랑』소고(小考)

김재수(향토문화연구원)


Ⅰ. 들어가는 말

 ‘아리랑’에 대해 정말 무지하였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아리랑이 무엇인지 왜 아리랑인지 아리랑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불려 졌는지에 대하여 막연한 상식정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다 2008년 10월, 제2회 『상주동화나라이야기축제』 한 마당에서 ‘상주아리랑(김의철 작곡)’이란 낯선 이름을 접했다. 구슬프게, 정말 ‘청성 맞다’는 말이 맞을 정도의 구슬픈 소리로 다가 온 상주아리랑.

 ‘상주 아리랑’이라니, 상주에도 아리랑이 있었던가? 62년을 상주에서만 살아온 내게 상주아리랑이란 말은 너무도 생경하게 들렸다. 내가 아는 아리랑이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라는 본조아리랑 정도였고,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의 밀양아리랑, 그리고 ‘아리아리 쓰리쓰리 / 아라리요 /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 라는 강원도 아리랑은 그나마 노래방에서 들어 본 정도였으니 그럴 수밖에.

 그리고 내가 아는 상식으로 아리랑이라 함은 ‘나름대로의 역사성이나 지역성, 설화 등이 바탕이 되어 구전되어 내려오다가 하나의 소리로 정착되거나 또 첨가 변형되면서 불리어 진  노래’로 알고 있는 정도였기에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온 ‘상주 아리랑’에 대한 ‘낯 가림’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리하여 시청 문화관광과나 상주문화원에 ‘상주 아리랑’에 대한 문의를 해 봤지만『상주동화나라이야기축제』 당시 배포한 CD 재킷에 청개구리 음악감독 문지환 씨의 해설을 참고하란 답변뿐이었다.

 그러다가 아리랑에 대해 내 상식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안 것은 (사)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인 김연갑 씨의 글을 읽으면서 였다. 김연갑 씨는 창작 『대구아리랑』에 대한 글에서 “대구아리랑은 분명 창작 아리랑이다. 그러나 따진다면 창작 아닌 아리랑이 강원도 아리랑(긴아라리·자진아라리)말고 어떤 것이 있는가. 밀양아리랑이 1920년대, 진도아리랑이 1930년대, 하물며 아리랑의 대표라는 의미로 불려지는 본조아리랑(서울․경기아리랑)이 1926년 개봉된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 이고 보면 거의 모든 아리랑이 창작 아리랑인 것임을 알게 된다. 바로 여기에서 시사 받을 수 있는 것은 전통이란 반드시 옛 것이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1)는 글이었다.

 이로 인해 아리랑에 관심을 가지고 인터넷 여행을 해 본 결과 이미 우리 지역에도 ‘상주아리랑’이란 이름으로 전해 내려오는 가사가 여러 편 있으며, 김의철 씨가 작곡한 ‘상주아리랑’ 외에 1950년대에 김소희 명창이 작창(作唱)한 ‘상주아리랑’이 불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뿐만 아니라 김소희 명창이 작창한 상주아리랑은 전국적으로 보급되어 국악이나 민요를 하는 분들은 이미 잘 알려 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경기도 어느 중학교 홈페이지에는 태창출판사 발간 중1 음악교과서에 감상 자료로 ‘상주아리랑’이 소개되었고, 2007년 10월 11일 부천시청 대강당에서 열린 2007 전국어린이 합창제에는 고촌초등학교 합창부(지휘:조현정)가 상주아리랑(이기경 곡)을 불러 찬사를 받았으며,2) 2006세계합창올림픽(The 4th World Choir Olympics)에 상주아리랑 (이기경 곡/ solo 강보은)이 최우수 금메달을 땄다는 기사도 눈에 띄었다.3) 이 뿐만 아니었다. 전국 또는 각 지방의 문화 행사나 주요 음악 콘서터 프로그램에는 약방의 감초처럼 상주아리랑이 차지하고 있었다.4)

 이런 사실에 접하자 솔직히 내겐 충격이었다. 이토록 모르고 있었을까.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지역문화에 대한 무감각, 무성의했던 나 자신을 일깨워야 하겠다는 자각과 함께 내가 몸담고 있는 지역사회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 전류처럼 흘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상주아리랑’ 보급을 위해 이미 관심 있는 분들이 오래 전부터 악보를 채보하는 노력을 하고 있었고, 상주문화원 민요교실과, 영남아리랑 보존회 상주지부(김동숙 지부장) 회원들, 그리고 이명희 명창의 문하와 그 밖에도 관심 있는 분들이 계심을 알았다.   이 원고는 연구 논문이 아니다. 이 곳 저 곳에서 찾아 낸 상주아리랑에 관한 자료를 나름대로 모아 본 것뿐이다. 비록 체계적이지 못하나마 이런 자료를 모을 수 있었던 것은 늦었지만 나도 이 일에 기꺼이 동참하려는 무모한(?)뜻이 생겼기 때문이다.



Ⅱ. 아리랑은 어떤 노래인가?

1. 아리랑이란?

 


 우리나라 민요 가운데 아리랑은 가장 상징적인 노래다. 우리나라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를 가더라도 아리랑이 없는 곳이 없다. 또 누구나 한 곡쯤 부를 수 있는 노래도 아리랑이다.

 옛날부터 아리랑은 식견 높은 양반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가 아니라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지어 부르고 어깨 너머로 배워 부르고 했던 백성들의 노래, 즉 민요(民謠)인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아리랑’이라 할 때 가락이 가지는 독특한 매력, 쉬운 표현 형식, 해학성, 그리고 노래가 가진 기능의 다양함, 노랫말 속에 숨어있는 저항성 등 참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난다. 그러나 그 어느 것 하나 ‘아리랑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아리랑을 노래하거나 읊조리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른 생각이나 느낌을 가지고 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비록 분명하지는 않더라도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생각은 한 번 쯤 해 봄직 하다. 그러다가 아리랑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전문가 몇 분의 글을 접하면서 막연했던 아리랑이 그나마 ‘그렇구나’하고 조금은 선명한 모습으로 다가 왔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아리랑에는 어김없이 ‘고개’가 등장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 아라리요 /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

 ‘문경 새재는 무슨 고갠고/구비야 굽이굽이 눈물이 난다.’

 이 고개에 대하여 김열규 씨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고개의 뜻은 뭣보다 이 ‘넘음’을 실마리로 풀어가야 한다. ‘넘음’은 너머가 없고서는 불가능하다. 저 너머, 그 너머로 가는 것이 곧 넘음이다. 고개를 가름으로 해서 이쪽과 저쪽은 서로 너머가 된다.”-중략

 “민요 아리랑이 이 고개의 노래요 재의 소리인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괴롭고 쓰라리게, 한스럽고도 서럽게 살아간 사람들, 해서 구겨지고 찌든 목숨들이, 그래도 그냥이야 차마 주저앉아 버릴 수 없어 되짚고 일어나 넘어서려는 의지를 담은 노래다. 그러기에 우리들의 ‘소리의 소리’요 ‘노래의 노래’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들은 아리랑이 노래하는 고개의 진상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작게는 한 개인의 꿈과 소망과 꺾임이 엇갈린 삶의 고개요, 크게는 온 겨레의 의지와 절망이 교차하는 역사의 고개였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 우리들은 아리랑을 지도나 지리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 우리들의 삶에서 찾아야 하고 역사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삶에 고비가 있고 역사에 난관이 있다면, 그 고비며 난관들이 다름 아닌 ‘아리랑 고개’ 바로 그것이다. ‘아리랑 고개’란 아무데도 없고 아무데나 있는 고개다. ‘아리랑 고개’는 우리들 삶과 역사에 솟은 절망의 절정이고 동시에 소망의 절정인 고개 바로 그것이다.”5)

 김열규 씨는 이어 “아리랑은 노래라기보다 역시 소리였다. 소리를 단순히 노래와 같은 값의 말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소리는 그야말로 육성(肉聲)이다.

 아리랑을 결코 한 종류의 노래라고 부를 수는 없다. 아리랑은 사뭇 복합적이다. 그것은 한국인의 모든 것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서민들이 그들 삶의 안팎의 모든 것을 그들 각각의 육성에 담아 소리하는 것이 아리랑이다.

 아리랑은 결국 우리들 삶의 혈맥과 같은 것이었다. 우리들 몸 구석구석 핏줄이 뻗치고 또  스며 있듯이 우리들 삶 구석구석에 아리랑은 뻗어 있고 또 스며서 울리고 있었다. 아니면, 그것은 우리들 생활과 문화의 지각(地殼) 밑에 고루 번져 간 수맥과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6) 라며 고개로서의 아리랑과 소리로서의 아리랑을 말하고 있다.

 한편 김연갑 씨는 그의 편저 ‘아리랑 서설(序說)’에서

 “아리랑은 통곡이다. 아리랑은 피다. 아리랑은 분노이다. 아리랑은 항변이며, 절규이며, 반란이다.

 아리랑은 깃발이다. 아리랑은 소화제다. 아리랑은 이정표다. 아리랑은 잘 여문 아주까리이다. 아리랑은 슬픈 화냥질이며, 한없는 그리움이다.

 아리랑은 이 땅에 있는 유일한 국산이다. 그래서 아리랑은 곧 흙이요, 쌀이다. 아리랑은 한 복이다.

 아리랑은 곧 이 땅의 소리다. 아리랑은 외침이며, 참말(眞言)이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소리를 듣지 못할 때 아리랑은 웃는다.

 아리랑은 풍자하고, 아리랑은 힐난하고, 아리랑은 비아냥거린다. 아리랑은 자지러지고, 흐늘거리고, 능청스럽다가 은근해지기도 한다. 아리랑은 증언할 뿐이다. 언제나 그 고개를 넘어가며 증언할 뿐이다. 그것은 아리랑이 힘이 있기 때문이다. 숱한 왜곡과 수난의 고개를 넘어 오늘도 이 땅의 바람소리처럼 들려오는 것은 바로 그러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아리랑은 바로 우리 민족의 힘인 것이다.”7)라고 하여 아리랑을 다양한 의미로 표현하였다.

 또한 신찬균 씨는 다음과 같이 아리랑을 노래로서 풀어내었다.

 “노래는 남는다. 그 노래가 민중의 입에서 입으로 끊이지 않고 불리는 까닭은 그 안에 담긴 민족의 정한(情恨)이 가슴 가슴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아리랑은 한민족의 넋이다. 어느 날 갑자기 부르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노래가 아니라 한민족 삶의 자취이다. 우리 민족이 사는 곳이면 어김없이 부활되어 고단한 삶을 달래주고 민족적 합의를 이끌어내어 한민족이면 누구나 부르게 만드는 것이다.”8)

 


2. 아리랑의 신비

 

 아리랑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아리랑은 불려 지기까지 사연도 많고 시간도 길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아리랑은 우리에게서 신비한 소리임에는 틀림이 없다.

 아리랑이 불리어지는 곳에는 장소 불문하고 남녀와 노소가 구별이 없이 같은 감정으로 부르고 듣게 된다. “ 하나의 감정으로!” 이를 연대감 또는 동질성이라고 한다. 노래로서 하나 되게 하는 연대감. 이 연대감이 아리랑의 신비이다.

 아리랑에게는 하나의 노래가 강원도에도 서너 가지가 있고 경상도에도 있고, 전라도에도 있고, 당연히 북한에도 있고, 멀리는 우리 교민들이 살고 있는 러시아, 중국, 미국, 일본에까지도 있다. 제각각 제 음색 제 노래 말로. 아마도 하나의 노래가 이렇게 여러 갈래로 존재하는 것은 아리랑뿐일 것이다.  이도 아리랑의 신비의 하나이다.

 또 하나 세상 어느 나라 노래가 가르치지 않고 또 배우지 않고 전승될 수가 있는가. 한국  사람 누가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악보를 놓고 아리랑을 배워서 부르는가. 그저 어느 결엔가 부르려 하니 입에서 그냥 나와 부르게 된 것이다. 이것 또한 아리랑의 신비이다.

 또 하나 정선아라리의 형태는 세 가지, 엮음, 일반, 잦은 아라리 이렇게..... 거기다 노래 말은 보통 말할 때 700여 수, 어느 나라 어떤 노래가 노랫말을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는가. 이것이 아리랑이 가진 신비로움이다.9)


3. 아리랑의 보편성 및 특징

 아리랑이라고 말할 때 대략 세 가지 개념으로 불려진다. 그 한 가지는 모든 아리랑을 총칭하는 의미, 또 한 가지는 일반적으로 서울․경기․본조아리랑이라고 하는 통속아리랑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세 번째 의미로 각각의 개별적 아리랑으로 보통 지명을 붙여 부르거나 성격을 붙여 부르는 것을 말하는데 예를 들면 진도아리랑이거나 잦은 아리랑이란 이름이 그것이다. 모든 아리랑이 공통으로 지니는 보편적인 성질, 달리 말하며 아리랑의 보편성이 될 것이고 다른 민요에 대해서는 아리랑의 특징이라 말할 수 있다.

 첫째, 다양성이다. 하나의 노래가 여러 모양으로 갈라져 결국 같으면서도 다른 것들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본래는 어떤 한 지역의 아리랑이 분화되어 진도, 밀양, 제주, 해주아리랑 등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둘째, 노래 말의 적층성일 것이다. 퇴적층이 땅의 역사를 말해 주듯 아리랑의 역사도 노래 말의 적층성으로 견줄 수 있을 것이다. 정선아라리는 700여 수, 울릉도 아리랑은 단 7수, 이런 적층성의 비교에서 주종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형식의 용이성이다. 이는 아리랑이 어찌하여 그 수많은 종류와 노래 말을 지닐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하나의 답이기도 한데, 그것은 2행- 1연- 1구라는 쉬운 형식을 말하는 것이다. 두 줄을 만들고 거기에 후렴을 붙이거나 아니면 그냥 또 두 줄을 붙이면 아리랑이 되는 것이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고정부인 후렴만 두고 유동부인 두 줄 시만 지어 부르면 되는 것이다. 얼마나 들어 기억하기 쉽고 그래서 역시 지어 내기 쉬운가.

 넷째, 다기능성이다. 이 말은 쓰임새가 여럿이라는 말인데, 논에서는 논매기소리로, 산에서는 지게 목발소리로, 뗏꾼들의 쉼터인 보매기 여울에서는 썩장이 노래로, 들병장이나 젓가락 장단의 작부집에서는 권주가로, 광복군들에게는 군가로...

 이런 아리랑을 일러 어떤 이는 ‘아리랑은 다면체의 얼굴을 한 노래’라 하기도 하고 ‘아리랑은 한국인의 만다라’라고 하기도 한다. 바로 위의 특징들을 모두 함축한 말로 아리랑은 각각 곳곳에 맞게 그 역할을 해 내는 노래라는 사실이다.10)


4. 아리랑의 어원

아리랑의 역사성이나 어원에 관해서는 학자마다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간단하게 정리 된 ‘정선아리랑학교’ 홈페이지에 나타난 어원을 소개하고자 한다.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멋과 얼이 담겨있는 상징적인 어휘다. 이렇게 오랜 세월 구전된 아리랑의 뜻은 무엇인가. 아리랑을 제 아무리 잘 부른다는 사람도 이런 질문에는 설왕설래한다. 아리랑을 한민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노래로 여기면서도 그 뜻조차 알지 못하기에 '아리랑'은 매혹적인 연구 대상이 되어왔다.

 1930년대부터 미미하게나마 연구되기 시작한 아리랑의 뜻을 찾기 위해 최근까지 수많은 학자들이 다양 한 접근을 시도해왔다.

 고어(古語)에 의한 유추 방법, 전설에 의한 유추 방법, 문헌을 근거로 한 유추 방법 등 온갖 노력을 하며 아리랑의 뜻을 끄집어내려고 했으나 어느 것 하나 설득력 있는 정설(定說)로 평가받지 못했다.

오히려 아리랑의 뜻에 너무 집착을 하다 보니 아리랑과 비슷한 어휘들을 아리랑에 결부시켜 구구한 설만 나오게 했다. 그러나 ‘아리랑’이라는 낱말이 뜻을 나타낸다고 하기보다는 음악적으로 리듬을 이루고 흥을 돋우는 무의미한 사설(nonsense verse)에 가깝다.

 지금까지 논의된 아리랑의 어원 가운데 대표적인 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가. 삼국사기(三國史記)』와『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타난 전설 근거

삼국사기(三國史記)』와『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타난 전설을 근거로 한 학설로 알영정(閼英井)과 알영천(閼英川)에서 유래된 박혁거세(朴赫居世)의 비(妃) '알영'의 덕을 찬미하는 것으로, ‘알영’이 후에 아리랑으로 변했다고 하는 설이다.


나. 전설의 주인공 '아랑'을 추모하면서

 밀양 아리랑의 배경이 되는 전설의 주인공 '아랑'을 추모하면서 아낙네들이 부른 노래 ‘아랑가’가 아리랑으로 변했다고 하는 설이다.


  다. 대원군의 경복궁을 중수에서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무렵(1865~1872) 전국에서 선발된 부역꾼들이 고향을 떠난 외로움과 사랑하는 아내, 연인과 떨어져 있음을 한탄하면서 "나는 님을 이별하네"라고 부른 아이랑(我離娘)에서 유추하고 있는 설이다.

 한편으로는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하면서 발행한 원납전(願納錢)의 강제 유통으로 인해 백성들은 그 소리에 귀가 멀 정도였다. 백성들 사이에서는 "내 귀가 먹어서 원납전 내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는 '但願我耳聾 不聞願我耳聾'이라는 말이 떠돌 정도였는데, 여기서 '아이롱(我耳聾)'이 변해 아리랑이 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진시황제가 만리장성을 쌓을 때 부역민들이 쉬지도 못하고 혹사당하자 자탄조로 '魚河 我多苦'라고 했다.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시기에도 부역민들이 이를 모방해 "나는 떠나고 싶어도 못 떠난다"는 뜻인 '어하 아난이(魚河 我難離)'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아난이'가 후에 '아라리'로 되었다고 한다.


라. 일제 착취에 대하여 생겨났다는 설

 한일 합방 후 노골적으로 심해져 가는 일제의 착취에 대해 감히 맞서지 말고 못 본 척 하라는 '아이롱'이 아리랑으로 되었다는 설이다.


마. 구한말에 널리 유포되었던 풍요(風謠)에서 생겼다는 설

 구한말에 널리 유포되었던 “일본아 일어난다. 미국은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라….”는 풍요(風謠)의 내용과 뜻이 통하는 설로 아미일영(俄美日英)을 경계해야 한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바. 상량문(上樑文)에 '아랑위(兒郞偉)'란 글에서 생겼다는 설

 옛날부터 가옥을 신축할 때 상량문(上樑文)에 '아랑위(兒郞偉)'란 글을 검게 쓰는데서 연유했다고 한다. 이상운(李尙云)의 설을 이능화가 소개한 것이다.


사. 고유어와 한자의 혼합적 해석을 통해 규명한 설

 아리랑을 고유어와 한자의 혼합적 해석을 통해 규명한 설로, '광명(光明)을 찾아옴'에서 연유한 고개를 '아리령(嶺)'이라고 밝히고 아리·어리·오리·우리에 관한 지명을 전국적으로 분포된 고개로 대동여지도에 찾아 문헌적으로 고증하고 있다.


아. 낙랑(樂浪) 교통로의 관문인 자비령(慈悲嶺)의 이름 '아라'에서

 역사적 사실에 의한 유추설로 낙랑(樂浪)에서 남하하는 교통로의 관문인 자비령(慈悲嶺)의 이름을 '아라'로 보고 있다. 역사적 변동기에 유민들이 남하하면서 넘던 고개를 낙랑과 진번의 경계선인 자비령으로 생각해 낙랑-자비령-아리령 관계를 정립시킨 것이다.


자. 기타

 이밖에도 여진어의 ‘아린’(고향)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아리고 쓰리다'에서 연유되었다는 설, 인도의 신(神)인 '아리람 쓰리람' 신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생겨났다는 설 등 무려 40여 가지 설에 이른다.

 '아리랑'이란 매혹적인 용어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백인백색의 다양한 주장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는 아리랑에 대한 애정이 그만큼 각별하다는 반증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아리랑의 정확 한 어원에 대한 규명 없이도 그 가락과 그 노래에 무한한 포근함을 느낀다.

 입으로 전해 내려오던 아리랑을 처음으로 서양식 기보법으로 기록한 것은 1896년 당시 선교사 로 활동하던 미국인 헐버트 (Homer B Hulbert : 1863~1949)박사에 의해서였다. 헐버트는 『Korea Repository』라는 잡지에 ‘ Korea Vocal Music'이란 제목으로 아리랑의 영문 가사를 싣고 있다. 이 악보의 끝에 아리랑이 1883년부터 대중적인 애호를 받게 되었으며, 제각각 다른 내용이지만 후렴은 변하지 않고 쓰인다고 해설과 함께 조선 사람들에게 “아리랑은 쌀이다”라는 의미 있는 말을 덧붙여 놓았다.11)

 이 외에도 신용하 교수는 ‘고개의 노래로서 아리랑’이란 제하에서 다음과 같이 아리랑의 의미를 풀어내고 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또는 서리 서리랑) 아라리가 났네/아리랑고개로 날 넘겨주소”

 밀양 아리랑, 진도 아리랑, 정선 아리랑 등 에서 나오는 ‘아리랑’, ‘쓰리랑’, ‘아라리’, ‘아리랑고개’의 뜻을 알아본다.

 첫째, ‘아리’의 뜻

‘아리’가 고대 한국어에서 ‘고운’, ‘곱다’로 쓰인 흔적을 현대 한국어(아리다운=아리+다운)에서 찾아 볼 수 있고,

몽골에서 ‘아리’는 아직도 ‘고운’, ‘곱다’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으므로 첫째 ‘아리’의 뜻은 ‘고운’을 뜻한다.

 그리고 현대 한국어에서 ‘아리다(마음이)’의 동사는 사랑에 빠져 상사병에 걸렸을 때나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때의 표현이다. 이것이 형용사가 되면 ‘아리’는 상사병이 나도록 ‘사무치게 그리움’을 표현하는 뜻이 되어 이때의 ‘아리’는 ‘사무치게 그리운’의 뜻이 된다.

 셋째, ‘랑’의 뜻

 ‘랑’은 한자로 삼국시대에는‘낭(郞 )’자를 써서 젊은 남녀를 모두 표현 했다. 통일신라시대 이후 조선시대에는 남녀를 구분하여 남자는 주로 ‘郞’자를, 여자는 ‘娘’자로 표시했다. 발음은 모두 ‘랑’이며, 뜻은 ‘임’이다. 이는 신라향가의 죽지랑(竹旨郞), 기파랑(耆婆郞) 등이 좋은 예이다.

 넷째, ‘아라리’의 뜻

 ‘아라리’는 근 현대에 뜻을 몰라 잃어버린 말인데, 이는 ‘상사병’의 고대 한국어라고 판단된다. 현대 한국어에서는 상사병을 나타내는 ‘가슴아리(가슴앓이)’에서 그 흔적이 어렴풋이 보인다. ‘쓰리다’를 강조할 때 ‘쓰라리다’  라고 강조사를 넣는 것처럼

‘가슴 아리’는 ‘가슴아라리’, ‘아라리’와 같다.

 삼국유사 등에는 상사병에 걸린 사랑 이야기가 몇 개 나오는데, 상사병에 해당하는 순수 고대 한국어를 한자가 수입된 뒤 언젠가 그만 잃어버린 것이다. 민요 ‘아리랑’에 들어있는 ‘아라리’가 바로 상사병’의 순수 한국어 인 것이다.

 다섯째, ‘쓰리랑’의 뜻

 ‘쓰리랑’은 ‘아리랑’ 둘째의 뜻과 동의어 또는 유사어 이다. 마음이 ‘쓰리다’는 마음이 ‘아리다’와 유사어 이다. 즉 ‘쓰리랑’은 마음이 아리고 ‘쓰리도록 그리운 임’을 뜻한다.


‘아리랑’의 가사를 현대 한국어로 리듬을 접어두고 번역하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곱고 그리운 임/곱고 그리운 임 사무치게 그리워 상사병이 났네. 의 뜻이 된다.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 ‘아리랑(이) 고개를 넘어 간다’ 라는 표현을 운율에 맞추고자 ‘아리랑’ 다음의 토씨 ‘이’를 생략 한 것으로서, 번역하면 ‘곱고 그리운 임이 고개를 넘어 간다’ 는 뜻이다.

 한국 전통사회에서 마을 공동체의 활동범위를 차단하는 것은 ‘고개’ 였다. 고개를 넘어가는 것은 다시 만나기 어려운 공간으로서 ‘이별’ 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리랑이 고개를 넘어 간다’는 ‘곱고 그리운 임과의 이별’을 뜻하는 것이다.

 위에서의 의미를 유추해 볼 때 ‘아리랑’이 뜻도 모른 채(알았더라도) 일천수백 년을 내려온 것은 이 고대어 속에 현대어로는 치환할 수 없는 절묘한 뜻과 멋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12)



5. 아리랑의 종류

 민요 아리랑은 ‘아리랑 또는 이와 유사한 음성이 후렴에 들어있는 민요의 총칭’으로 남북을 통틀어 약 60여종 3천6백여 수에 이른다. 우리나라에는 평안도에 '서도 아리랑', 강원도에 '강원도 아리랑', '정선아리랑' 함경도에 '함경도 아리랑', '단천 아리랑', ‘어랑 타령’ 경상도에 '밀양 아리랑', 전라도에 '진도 아리랑', 경기도에 '긴 아리랑' 등이 대표성을 띈 아리랑이고 그 밖에 지역마다 각기 다른 아리랑이 있다. 나라 밖으로도 우리민족이 사는 중국 땅에 ‘독립군 아리랑’, 러시아 땅에 ‘사할린 아리랑’ 등이 있다.

 각 지역마다 독특한 정서를 담은 이들 아리랑 가운데 정선 아리랑, 진도 아리랑, 밀양 아리랑은 우리나라 3대 아리랑으로 평가되고 있다.13)

 한편 경기도지방의 아리랑이 전국에 전파되면서 아리랑에는 많은 변이형이 생겨났다. 아리랑의 변이형에는 ‘신(新)아리랑’, ‘별조(別調)아리랑’, ‘긴아리랑’, ‘아리랑 세상’ 등이 있으며, 이들 변이형과 구별하기 위해 본래의 아리랑을 ‘본조(本調)아리랑’이라고 한다. ‘아리랑’ 중에서 유일하게 ‘정선아리랑’은 지방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외에 특수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아리랑이 있다. 천연두 예방주사를 보급시키기 위한 《종두(種痘)아리랑》, 문맹퇴치를 위한 《한글아리랑》 등이 그 예이다. 또한 아리랑은 민요에만 머물지 않고 대중가요와 접목되면서 많은 창작아리랑이 만들어졌다14)


가. 정선아리랑(1)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후렴) 눈이 올려나 비가 올려나 억수 장마 질려나 / 만수산 검은 구름이 다 모여든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좀 건네주게 / 싸리골 울동백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 / 사시장철 임 그리워서 나는 못살겠네



나. 정선 아리랑(2)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 주오(후렴) 강원도 금강산 일만이천봉 / 팔만구암자 유점사 법당뒤 칠성단 / 모두 모고 /팔자에 없는 아들딸 나달라고 / 섣달 열흘 녹음에 / 정성을 말고 / 타관객리 외로히 난 사람 / 괄시를 마라 세파에 시달린 몸 만사에 뜻이없어 / 홀연히 다 떨치고 청려를 의지하여 / 지향없이 가노라 니/풍광은 예와달라 만물이 소연한데 / 해저무는 저녁노을 무심히 바라보며/옛일을 추억하 고 시름없이 있노라니 / 눈앞에 왼갖 것이 모다 시름뿐이라


다. 강원도 아리랑

아리아리 쓰리쓰리 / 아라리요 /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후렴) 아주까리 정자는 구경자리 / 살구나무 정자로만 만나보세 열라는 콩팥은 왜 아니 열고 / 아주까리 동백은 왜 여는가 / 아리랑 고개다 주막집을 짓고 / 정든님 오기만 기다린다


라. 밀양아리랑

아리당다꿍 쓰리당다꿍 아라리가났네/아리랑고개로 날넘겨주소 (후렴) 날좀보소 날좀보소 날좀보소 / 동지섣달 꽃본 듯이 날좀보소 정든임 오셨는데 인사를 못해 / 행주치마 입에물고 입만벙긋 저건네 저집이 정든네 집인데 / 지안가고 내안가니 수천리로다 밀양아 영남루 경치가 좋아 / 시상아 끝날까지 다보아준다 물길러 가는체 술길러 이고 / 오동나무 수풀속에 임찾아간다 우수야 경칩에 대동강 풀리고/ 서방님 말씀에 내마음 풀린다 솔가치 담장은 높아야 좋고 / 술아주머씨 고와야 좋다 일본아 대판아 얼매나 좋아 / 꽃같은 날두고 연락선을 타는냐 꽃같은 날두고 왜한번도 안오나 / 아이구야 보고파서 환장을 하네 서산에 지는해는 지고싶어 지나 / 날두고 가신임은 가고싶어 가나 청천에 하늘엔 잔별도 많고 / 요내야 가슴엔 희망도 많다 세월아 봄철아 오고가지 말어라 / 사뜰한 내청춘 다늙어진다.


마. 진도아리랑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 아라리가 났네 / 아리랑 응응응응 / 아라리가 났네(후렴) 왜왔던고 왜왔던고 / 울리고 갈 길을 /왜왔던고 청천 하늘에 / 잔별도 많고 / 요내 가슴속에 / 수심도 많다 간다간다 내 돌아가요 / 정든님 따라서 / 내 돌아간다 문경세재는 왠 고갠가 / 굽이야 굽이굽이 / 눈물이로구나 만남이 반가우나 / 이별을 하네 / 이별을 할라면 / 왜 이리 왔나


바. 경기아리랑

아리령 아리령 아라리요 / 아리령 띄여라 노다가게(후렴) 문경세재 박달나무 / 홍두깨 방망이 다나간다 남산우에 고목나무 / 나와갓치만 속썩는다.


사. 상주아리랑

<중모리> (뒷소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앞소리) 개나리 봇짐을 짊어지고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버지 어머니 어서와요 북간도 벌판이 좋답니다 쓰라린 가슴을 움켜쥐고 백두산 고개를 넘어간다 <엇모리> (뒷소리)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앞소리) 1. 문전에 옥토는 어찌되고 쪽박의 신세가 웬일인고 2. 원수로다 원수로다 원수로다 총 가진 포수가 원수로다 3. 말께나 하는 놈 재판소 가고 일께나 하는 놈 공동산 간다 <중모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 광복군 아리랑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요 / 광복군 아리랑 불러나 보세(후렴) 우리네 부모가 날 찾으시거던 / 광복군 갔다고 말 전해주소 광풍이 불어요 광풍이 불어요 / 삼천만 가슴에 광풍이 불어요 바다에 두둥실 떠오는 배는 / 광복군 싣고서 오시는배래요 동실령 고개서 북소리 둥둥 나더니 / 한양성 복판에 택극기 날리네


 6. 아리랑의 세계화

 요즘 우리 문화제 중 여러 가지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우리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드러낼 뿐 아니라 ‘우리문화의 세계화’에 기여하고 있다. 이에 걸맞게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으로서 아리랑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인정받데 되었음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아리랑상’(Arirang Prize)은 세계 유네스코의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 선포제도’(Proclamation of the Masterpieces of the Oral and Intangible Heritage of Humanity)의 일환으로 1998년 세계유네스코가 가치 있는 세계 구비문화유산의 전승을 위해 지원하는 제도이다. 제1회 수상은 필리핀의 ‘후드후드 송가’(Hudhud Chants of the Ifugao)와 기니의 ‘소소발라 공연단’(Cultural Space of Sosso-Bala in Niagassola)이, 제2회는 2003년 11월 남서 태평양 바누아투 공화국의 ‘모래 그림’(Sand Drawings)과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피그미 춤’이 수상했다. 이로서 ‘아리랑’은 가치 있는 세계구비문화 유산의 상징어가 되었다. 제3회 2005년 3차 선포식에서는 이번에 무형유산으로 선정된 유산 중 부탄과 모잠비크의 민속춤인 '가면 춤(The Mask Dance of the Drums from Drametse)'과 '초피 팀빌라(Chopi Timbila)'에 대해  '아리랑상'이 수여되었다.

 이렇게 유네스코가 ‘아리랑’을 구비문화유산 지원제도의 상징어로 채택한 것은 아리랑의 자생력, 바로 시공을 초월하여 전승되는 질기디 질긴 생명력을 표본으로 삼고자 함이다. 또한 각각의 아리랑마다 특징적인 토리를 지닌 사실을 민족음악학적인 측면에서 가치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아리랑의 세계성에 대한 구체적인 실증으로서 거의 유일한 세계적인 브랜이며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세계적인 것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아리랑의 역사성과 강인한 전승력을 세계가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2002년 독일에서는 유럽의 작곡가들이 모여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 선정 위원회>를 열어 절대적인 지지로 아리랑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로 선정했다. 이로써 아리랑은 세계 구비문화유산의 상징어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음악적인 차원에서도 세계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아마도 우리 것의 세계화에 있어 아리랑만큼 구체성과 현재성을 갖고 있는 것도 드물 것이다. 이 말의 뜻은 어느 정도는 이미 세계화 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서 국내에서는 위상과 가치에서 고유성을. 해외에서는 한국의 상징(symbol)으로서의 국제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아리랑의 세계화는 단순하게 브랜드 파워를 발휘하여 경제적인 경쟁력을 얻는 것에서만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인 국경 개념이 희박한 오늘날에 문화영토(文化領土) 개념이 중요하게 대두되는데, 어쩌면 가장 상징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인 아리랑을 ‘민족의노래’로 공인하는 147개국 동포사회를 ‘아리랑영토’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아리랑의 세계화는 매우 바람직한 아리랑의 미래상인 동시에 우리의 책무인 것이다. 15)



Ⅱ. 상주 아리랑

  민요 아리랑은 ‘아리랑 또는 이와 유사한 음성이 후렴에 들어있는 민요의 총칭’으로 남북을 통틀어 약 60여종 3천6백여 수에 이른다는 것을 아리랑의 종류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뿐만 아니라 각 지역마다 대표성을 띈 아리랑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볼 때 우리 고장처럼 고도(古都)요 삼한 시대부터 조성된 공갈못을 배경으로 한 ‘연밥노래’라는 귀중한 민요가 전해지는 고장에서 상주다운 아리랑 한 곡조가 없을 리는 만무하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찾아보지도 못했고 또한 이곳저곳을 방문하는 노력도 하지 못하여 우리 고장 아리랑에대해 조사가 미흡하였지 만 그래도 이만큼의 수확을 얻었음은 다행이라 여기며 각종 문헌상에 나타난 내용과 인터넷에 올려있는 상주 지역의 아리랑에 대한 내용을 단편적이나마 살펴보고자 한다.


1. 상주아리랑의 종류와 유형

  

  가. 문헌상에 나타 난 상주아리랑


  1) 아리랑

1. 아리랑 고개다 집은 짓고 동모야 오기만 기다린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얼씨구 아라리요

2. 여보게 쇠꼴을 밧비 비오 저건너 저집에 연기 난다

3. 실실아 동풍에 구진비 오고 동모야 오기만 기다린다.


*每日申報(1930. 5. 23) *諺文朝鮮口傳民謠集(1933) *朝鮮文學全集(상)1936

*朝鮮民謠集成(1948 


 2) 아리랑 타령

도라지 병풍 연다지 안에 잠든 큰 애기 문 열어라

바람 불면 비 올 줄 알고 내 올밤은 왜 모르나

시집가던 심일 만에 본 가장은 귀양 가고

귀양 가던 일주일에 객사했다 통지 왔네

두자 두치 잣 비게는 어느 낭군 비어주며

오동장농 객개수는 어느 자식 물려줄꼬

가자는 서방도 열셋이요 죽자는 서방도 열셋이요

살자는 서방도 열셋이라

일삼은 삼 삼삼은 구하니 서를 아홉 번 호강하니

여중에 일생은 나뿐일세16)


* 韓國民謠集 ⑤(1979) 17) * 상주시사 * 상주이야기* 상주시사. * 상주이야기18)


 위 두 곡의 아리랑은 가사만 전해 올 뿐 가락이 어떤 것인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금 어디엔가 이 아리랑을 노래하는 분이 계시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하지만 이소라 씨가 채보하여 집필한 ‘상주의 민요집’에도 나타나 있지 않은 걸 보면 정말 막연한 희망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3) 상주아리롱-상주 아라리(강원도 아라리의 곡조로 불려진다)


가세 가세 모도 가세

백골 명산에 산나물을 가세

아리롱 아리롱 아라리야

백골 명산에 모도모도 산나물을 가세


가메 바우 뒤에 묵밭띠기 작년에도 묵었는데

금년에도 날과 같이 또 묵었구나

아리롱 아리롱 아라리야

백골 명산에 모도모도 산나물을 가세


갈대 밭골 발대 밭이 곱다 해도

백골산 밑에 노총각 만은 나는 영 못하여

아리롱 아리롱 아라리야

백골 명산에 모도 모도 산나물을 가세


* 기미양의 아리랑 기행 2007/07/03/02:3419)


  나. 채보한 아리랑(상주민요집)


   1) 나무꾼 소리(엮음아리랑곡) 중동면 금당리 송유흡


아리-랑 응 아리-랑 아라리가-났--네 이에-

아리라---랑 고개-고개로-날만-넘기주-소-

강원도 금강산 일만이천봉

(말하듯이) 팔만구암자 유종탕(유정사) 법당위에

           칠성단에 모여앉아서

(선율부문) 아들딸을 낳라서

          백일정성을 말고-

          타관객지에 외로이 있는 낭군을

          당신이 괄시를 말어라


2) 엮음아리랑 은척면 봉중리 이재학


(반복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고넘어간다.

(본문)  -촘촘히 엮음 - 강원도 금강산 일만이천봉

                      팔만구암자에다가

       -선율부문 - 칠성단을 놓고

                   팔자에 없는 아들딸 놔달라고

                   삼십번 절을 말고

                   타관객지 외로이 오신 손님

                   괄시를 마소


3) 엮음아리랑 내서면 노류2리 김팔기


아리롱 아리롱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말하듯이- 강원도 금강산 일만이천봉 팔만구암자

           우정사(유정사) 법당뒤에 모도모도 모여앉어

           팔자에 없는 아들 딸 낳기 해돌라고

           백이에 정성을 말고서

           타관객지에 외로이 떠난 사람

           괄세를 마라

아리롱 아리롱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넌거주게

-말하듯이- 곽곡산이 고고대는 싱글뱅글 빙글뱅글

           물거품만 안고 사시삼천

           요리조리 요리조리 잘도 돌아가는데

우리집 그 사람은 돌아올줄 모르나

아리롱 아리롱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넌거주게


  4) 강원도아리랑곡풍. 엮음아리랑. 화서면 율림리 최재근


1. 강원도 아리랑곡 풍

오는새 가는새는 덤불덤불이 놀고요

우리겉은 사삼자는 골방안데서 논다.


영월영천에 수수풍년은 년년해마다 오건만

우리집에 임풍년은 어느때나 올까


(후렴)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어떤 사람은 팔자 좋아서

고대광실 높은 집에서 희희낙락 잘도 노는데

우리 농부야 낫으로야 김매고  밤으로는 새끼 꼬면서

있는정 없는 정 싹싹 씰어다 한강변에 버리고

어덕더덕 멍석자리에 깊은 잠이나 자세


(후렴)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헤에에


2. 엮음아리랑

-말하듯이 엮는 부분- 강원도라 금강산에 일만이청봉에

                     팔만구암자에다 칠성당에다 탑을 모아놓고호

                     아들딸을 놓라구서 백일기도를 말고

타관객지에 오시는 손님을 괄세를 마소호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헤


  5) 나무꾼 소리(강원도아리랑) 내서면 신촌1리 김창식


1. 헤이 봄철인지 갈철인지 나는 몰라더니

   산에 행화초가 봄으을 알려 주네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라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2. 헤이 양달틈에 노랑나비는 팔랑팔랑 허는데 헤

   음달쪽에 수절과부는 밤보따리만 싸네헤


 6) 나무꾼소리 화북면 장암리 이창우


한치 뒷산에 곤두레 딱지가

나지미 맛만 같으면

그놈만 뜯어다 먹어도

봄은 살아 나겠네


  7) 지게목발소리 내서면 능암리 성덕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라앙 고개로 내가 넘어 간다

나를 버리고 가는 님은

심리도 못가서 발병이 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8) 강원도 아리랑 내서면 서만1구 김봉덕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히랑

고개로- 넘어-가네


  9) 강원도 아리랑곡풍 이안면 양범리 우용준


1. 한많은 요세상아 야속한 님아

  정을 두고 몸만가니 야속합니다.

  고런기사 고런기사 고렇고 말고

  담당일세 요내간장 저절절 녹네


2. 아리아리랑 아리아리랑 아라리요

   아리아리랑 고개 저쪽에 날만 넘겨주소


3. 서마지기 논재리에 모숩굽니다-

   여게 꼽고 저게 꼽고

   영감 쥔네 할마시 눈아래도 꼽소


  10) 강원도아리랑 모동면 이동1구 박명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오오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비가 올라나 눈이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11) 나무꾼소리(강원도아리랑곡풍) 중동면 신암리 안삼정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날 넨겨주소

석탄 백탄은 타는데 연게만 톡톡 나건마는

이내 가슴 타는데는(0000)아니 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날 넨겨주소20)

 


 다. 김소희 명창의 작창 상주아리랑

 

 ‘상주아리랑’에 대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많은 이들에게 불려지고 알려진 아리랑은 김소희 명창이 작창한 상주아리랑이다.


  1). 김소희 작창의 배경

 김소희 작창의 상주아리랑에 대해서는 2008년 8월15일(금) 대구 시민회관에서 열린 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가 주최한『대구아리랑제』(DaeGu Arirang Festival)에서 김연갑 씨는  다음과 같은 해설하였다.

 “이 아리랑은 50년대 김소희 선생 작창으로 불려 지기 시작한 작품으로 남도 육자배기제에 경상도 목으로 구성된 특이한 작품이다. 기본 곡조가 상주 민요 ‘상주 함창 공갈 못’과 같아 ‘상주아리랑’ 이라고도 하지만 김소희 선생의 뜻은 사설에 역점을 두어 ‘통일아리랑’으로 불려 지길 바랬다. 때문에 ‘통일아리랑’으로도 불린다.” 21)라고 말하고 있음을 볼 때 상주아리랑으로 이름 지어진 배경을 어느 정도는 가늠할 수 있다.


  2) 가사의 형성

 김소희 작창의 ‘상주아리랑’의 가사가 작창을 했을 때는 어떤 의도였는지 필자로서는 위 배경 외에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다만 이 가사가 꼭 상주지방만의 특색을 본 따서 탄생한 가사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김연갑 씨의 해설에서도 드러나 보인다. ‘상주아리랑’이란 이름을 붙인 연유에서 ‘기본 곡조가 상주 민요『상주 함창 공갈 못』과 같아 ‘상주아리랑’ 이라고 했음을 보면 그러하다. 하지만 김의철 씨가 작곡한 ‘상주아리랑’ 해설에는 ‘상주아리랑’은 ‘청개구리’공연 팀이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마을에서 공연을 준비하면서 그곳에서 처절한 삶의 절규 속에 살아남은 상주인의 후예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연히 상주아리랑을 통해 가사내용과 그들의 삶이 너무 흡사해 놀랐다고 하며 가사를 접한 즉시 부른 것이 지금의 현대적인 곡이 되었다고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리랑 가사들을 살펴보노라면 각 지역마다 같은 가사들이 중복되어 들어있음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각 지역의 아리랑에서 보여주는 가사는 각 지역마다 독특한 특색이 있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후렴구나 가사들이 서로 섞여져 있음을 자주 보게 된다.

 김소희 작창의 ‘상주아리랑’에 나오는 가사가 다른 지방 아리랑에도 자주 등장하는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창원 아리랑’의 15절

“말께나 하는 놈 재판소 가고 일깨나 하는 놈 공동산 가고”

‘경기아리랑’ 13절

 “쓰라린 가슴을 움켜잡고 백두산 고개로 넘어 간다.”

‘신 아리랑’ 6절 “괴나리 봇짐을 짊어지고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7절에 “아버지 어머니 어서 오소 북간도 벌판이 좋다더라.”

 8절 “쓰라린 가슴을 움켜쥐고 백두산 고개로 넘어 간다.”

 10절 “원수로다 원수로다 총 갖은 포수가 원수로다”

‘본조아리랑’ 4절

“문전의 옥토는 어찌되고 쪽박의 신세가 왼 말인가.”

 6절 “말 깨나 하는 놈 재판소 가고 일깨나 하는 놈 공동산 간다.”22)

‘서도지방 신 아리랑’(2)

 4절. “아버지 어머니 어서 오소 북간도 벌판이 좋다드라.”

10절. “괴나리 봇짐을 짊어지고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11절. “쓰라린 가슴을 움켜쥐고 백두산 고개로 넘어간다”

12절. “원쑤로다 원쑤로다 총갖은 포수가 원쑤로다”23)


  3) 김소희 작창 상주아리랑

(중모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1. 괴나리 봇짐을 짊어지고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2. 아버지 어머니 어서와요 북간도 벌판이 좋답디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3. 쓰라린 가슴을 움켜쥐고 백두산 고개로 넘어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엇모리)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4. 문전의 옥토는 어찌되고 쪽박의 신세가 웬일인가.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5. 원수로다 원수로다 원수로다 총 가진 포수가 원수로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6. 말 꽤나 허는 놈 재판소 가고 일 꽤나 허는 놈 공동산 간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24)


  4) 가사의 변형

 

 김소희 명창이 직접 부른 영상을 중심으로 위 가사가 원형이라면 상주아리랑을 부른 사람에 따라 각각 그 가사의 내용이 조금씩 달라진 것이 발견되었다. 원인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부른 이들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 가사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이명희 명창이 부른 ‘상주 아리랑’

    

(중모리 장단)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1. 개나리 봇짐을 짊어지고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2. 쓰라린 가슴을 움켜쥐고 백두산 고개로 넘어 간다.

3. 아버지 어머니 어서 와요 북간도 벌판이 좋답디다.

4. 울 넘고 담 넘어 호박꽃 피고 저 고개 넘으로 님 소식 온다.


(엇모리 장단)


후렴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1. 문전옥토는 어찌되고 쪽박의 신세가 웬 일인고

2. 말깨나 허는 놈은 재판소 가고 일깨나 허는 놈은 공동산 간다.

3. 원수로다 원수로다 원수로다 총 가진 포수가 원수로다.

4. 팔자로다 팔자로다 팔자로다 문전걸식 하는 것도 팔자로다.

5. 간다네 간다네 내 돌아간다 저 멀리 임 따라 내 돌아 간다.

6. 근심걱정 허느라 세월만 가고 몸 따라 마음도 늙어 간다.

7. 저 산 넘어 저 멀리 임 보내 놓고 뜰아래 앉아서 탄식만 한다.

8. 팔자로다 팔자로다 팔자로다 팔자타령 허느라고 세월만 간다.

9. 낙동강 굽이굽이 물결따라 노젖는 뱃사공아 쉬었다 가세

10. 상주함창 공갈못에 연밥따는 처녀야 연밥만 따지말고 저총각 보소25)


 한편 송옥숙 원장이 제공한 ‘거리 예술단’ 채보 악보에는 이명희 명창이 부른 가사 가운데 9절과 10절은 생략되어 있다.


   (2) 중모리 장단에 가사 4절 첨가.


울 넘고 담 넘어 호박 꽃피고

저 고개 너머로 님 소식 온다. .26)


   (3) 가사의 절 순서가 바뀐 경우

누구의 노래인지는 모르지만 역시 다음과 같이 변형된 가사도 있다.


아리랑- 아리랑-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1. 쓰라린 가슴을 움켜 쥐고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아리랑- 아리랑-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2. 아버지 어머니 어서와요 북간도 벌판이 좋답디다

   아리랑- 아리랑-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3. 개나리 봇짐을 짊어지고 백두산 고개를 넘어 간다

   아리랑- 아리랑-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4. 문전의 옥답은 어찌되고 쪽박어 신세가 왠말인가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5. 말께나 허는 놈은 재판소 가고 일께나 허는 놈은 공동산 간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6. 간다네 간다네 내가 간다네 정든 임 따라서 내가 간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7. 원수로다 원수로다 원수로다 총가진 포수가 원수로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8. 팔자로다 팔자로다 팔자로다 문전의 걸식이 팔자로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27)


   (4) 반주를 곁들인 가사

반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라랑 고개를 넘어 간다

1. 아버지 어머니 어서 와요 서보들 벌판이 좋답디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라랑 고개를 넘어 간다

2. 울 넘고 담넘어 호박꽃 피고 저 고개 넘어로 님 소식 온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라랑 고개를 넘어 간다

3. 간다네 간다네 내 돌아간다 정든 님 따라서 내 돌아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반주-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

4. 간다네 간다네 내 돌아간다 정든 님 따라서 내 돌아간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

5. 원수로다 원수로다 총가진 포수가 원수로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라랑 고개를 넘어 간다28)


   (5)  박수관님의 상주아리랑

 김옥숙의 천년의 멋과 흥에 특별 출연한 박수관 님의 상주 아리랑으로 김소희 명창의 가락과 가사가 조금 다르게 표현되고 있다.


1. 개나리 봇짐을 짊어 지고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2. 쓰라린 가슴을 움켜쥐고 아리랑 고개를 넘어 넘어 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 간다


3. 문전 옥토는 어찌하고 쪽박의 신세는 웬일인고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얼씨구 넘어 간다

4. 근심걱정 하느라고 세월만 가더니 몸따라 마음도 다 늙어 간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얼씨구 내가 돌아 간다

5. 돌아간다 돌아간다 내 돌아 간다 --------- 내가 돌아 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29)


   (6) 임동창의 상주아리랑

 상주아리랑 편곡, 피아노/임동창 소리, 전인삼/ 뒷소리, 더불어 앙상블 아쟁, 김영길/

사물놀이, 한울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1. 쓰라린 가슴을 움켜 쥐고 백두산 고개로 넘어 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2. 아버지 어머니 어서 와요 북간도 벌판이 좋답디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3. 개나리 봇짐을 짊어지고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30)


   (7) 서명희 명창의 상주 아리랑

신영희 명창으로부터 사사 남도민요보존협회 이사로 활약 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1. 개나리 봇짐을 짊어지고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2. 아버지 어머니 어서 와요 북간도 벌판이 좋답디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3. 허- 허 - 허 허 - 허- 허 - 허 - 허 -허 - 허31)


가사가 매우 생략되었고 3절 부문이 독특이한 것이 특징이다.


   (8) 소리꾼 꽃봉이  콘서트에 나타난 상주아리랑

엇모리 장단에 다음과 같은 가사가 첨부되어 부르기도 한다.

 

 아깨나 낳을 년은 갈보질 하고  목도깨나 메는 놈은 부역을 간다

 이씨의 사촌은 되지 말고 민씨의 팔촌이 되려무나

 밭은 헐려서 신작로 되고 집은 헐려서  정거장 되네



5) 판소리 명창 김소희(金素姬) 여사에 대하여

1917년 전남 고창에서 태어나 1995년 별세. 명창. 본명은 순옥(順玉). 호는 만정(晩汀). 전라북도 고창(高敞)에서 출생. 15세에 흥덕(興德)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그해부터 명창 송만갑(宋萬甲)에게 《심청가》와 《흥보가》를 배웠다. 그 후 명창 정정렬(丁貞烈)에게 《춘향가》와 《수궁가》를 배웠고 김종기(金鍾基)에게 가야금 산조를 배웠다. 1937년 창극좌에 입단하였고 1939년에 화랑창극단에 가입하였다가 1942년 화랑창극단이 해산되자 창극계를 잠시 떠났다. 1945년 8·15가 되자 여성국악동호회를 조직하여 한국민속예술학원을 창설하였고 오로지 판소리에 전념하면서 후배 양성에 심혈을 기울여 국악예술고등학교를 설립하는 데 공이 컸다. 고운 음색과 명확한 창법으로 해외공연에서 찬탄을 받았다.그녀는 일세를 풍미했던 여류명창 박녹주(朴錄珠)· 박초월(朴初月)여사 타계 이후 남성 일색이던 판소리계에 남아 있던 유일한 여성 기능보유자이기도 했다. 73년 국민훈장 동백상, 82년 제1회 한국국악대상, 문화예술상, 한미여성회 주최 장한 어머니상을 수상했으며 91년 동리(棟里)대상을 수상. 음반으로는 74년의 『심청가』전곡, 78년의 『춘향가』전곡, 구음과 메나리제의 상주 아리랑 등이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기능보유자.


라. 편곡으로 본 ‘상주아리랑’ - 이기경 편곡

 김소희 명창의 작창인 ‘상주아리랑’은 어린이들의 합창곡으로 편곡되어 각종 합창경연대회 주요 곡목이 되었다. 다음은 경기도에 있는 황룡초등학교 합창부가 2008. 11. 6. 고양시 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린 제5회 고양시 푸른 청소년 음악제 초등부문에 출전한 상주아리랑이다.

 초등학교 합창곡으로 편곡 된 이 아리랑은 초등학교 학생들 수준에 맞도록 일부 가사가    ‘희망을 안고--희망을 안고---안고 희망을 안고-’

‘문전에 옥토는- 풍-년이-요---우리의-신-세는-희망일세-’ 등과 같이 개작되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개나리 봇짐을 짊-어-지-고--아리랑--고개-를-넘어-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고개--로-넘어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고개--를-넘어간다

희망을 안고--희망을 안고---안고 희망을 안고-

백두산 고-개로- 백두산고-개로 넘어-간다-

아리아리 스리-스리 아-라리-요--아리랑-고개-를-넘겨 간다-

문전에 옥토는- 풍-년이-요---우리의-신-세는-희망일세-

아리--랑 스리스리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스리스리-아리랑-스리스리- 아라리요 아리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32)


 

마. 창작곡으로 김의철의 상주아리랑

     1. 개나리 봇짐을 짊어지고 백두산 고개를 넘어 간다

      

     2. 아버지 어머니 어서 와 북간도 벌판이 좋답디다


     3. 쓰라린 가슴을 움켜지고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4. 문전에 옥토는 어찌 되고 쪽박의 신세가 웬말인고  

     

     5. 말께나 허는 놈은 재판소 가고 일에나 허는 놈 공동산 간다  

     

     6. 원수다 원수다 원수로다 총가진 포수가 원수로다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아리 아리 스리스리 아라리요 아리 아리 아리 아리33)

       

 김의철의 창작곡 ‘상주 아리랑’에 대해서는 이 곡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상주아리랑’이 2008년 10월 ‘동화나라상주이야기축제’에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이 음반을 녹음했던 당시 ‘청개구리’ 음악감독 문지환 씨가 밝힌 뒷이야기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문지환 씨가 밝힌 ‘상주아리랑’이 수록된 CD 재킷에 밝힌 글이다.

 

 “2008년 5월 어느 쯤에 선가 한창 공연 중인 틈을 타서 수더분하게 생긴 지인을 소개 받았다. 자유롭게 풀어 헤쳐진 머리카락 사이로 반짝이는 맑은 눈망울을 가진 뚝배기 같은 느낌의 건장한 청년.

바로 상주이야기를 꺼내들었고, 그 자리에서 상주 아리랑이라는 곡이 있는데....하며 시작된 이야기가 그 자리에서 녹음까지 연결되며 그토록 오랫동안 누군가가 했어야 했고 꼭 있어야 할 무언가가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원래부터 있어E다는 느낌의 곡을 받고 연주자들도 너무나 친숙하게 연주해 나갔다. 마치 흔히 아리랑을 부르듯 너무나 쉽게, 그리고 모든 것이 너무나 순조롭게, 녹음을 마치고 이거 정말 녹음이 다 끝난 건가? 일부러 이렇게 하려고 해도 이것저것 걸리는 일이 많아서 될 일도 안 될 판에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그렇게 금방 끝나버렸다.

 무언가 새로운 어떤 것이 탄생할 때 마치 우주의 빅뱅현상이라도 벌어진 것처럼 그렇게 만남은 충돌을 일으켰고 그 충돌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라도 된 듯 우리 앞에 새로운 상주아리랑이라는 곡을 만들게 했다.

 누가 시켰을까?

 마침 우리 공연 팀은 우즈배키스탄에 있는 고려인 마을에서 할 공연에 온갖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을 때였다. 그 공연 준비를 하면서 그 곳에서 처절한 삶의 절규 속에 살아남은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했고, 그 속에서 우연히 상주아리랑을 만나게 되었다.

 그 먼 우즈배키스탄에서 상주아리랑이라니.....

그냥 흔한 민요 한 자락으로 생각하다 그네들의 삶과 그 곡이 담고 있는 가사 내용과 이런 저런 얘기들을 듣고 온몸에 전율이 일면서 아!


 괴나리 봇짐을 짊어지고 백두산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어버지 어머니 어서와요. 북간도 벌판이 좋답디다.

 아리랑 아리랑....

 

 하면서 이어지는 노랫말 중 특히 찡했던 부분은

 

 문전의 옥토는 어찌되고 쪽박의 신세가 웬 말이냐(후렴 생략)

 말 깨나 하는 놈 재판가고 일깨나 하는 놈 공산 간다

 원수다 원수다 원수로다 총 가진 포수가 원수로다


 하면서 그 당시의 처절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구구절절 들려오는데 연주하는 내내 울컥했던 감정을 숨기기가 쉽지 않았다.

 일제에 나라를 뺏기고 그 울분에 몸서리치며 멀리 저 멀리 북간도를 거쳐 그 먼 동토의 땅에 얼음 밭을 일구고 서로의 체온으로 어린 생명들을 녹이고 살리면서 넌 꼭 살아 남거라 하며 강강수월레를 하듯 원으로 둘러싸고 나이 많은 노인들부터 바깥쪽에서, 또 그가 쓰러지면 다음 노인이 그렇게 그렇게 어린 생명들을 지키면서 희생하면서 살아온 그들의 애환이 그대로 이 곡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 불려지고 있는 이 ‘상주아리랑’을 상주가 아닌 중앙아시아에서 만나게 된 것도 희한한 일이지만 유 감독님을 만나게 된 것도 희한한 일이었다. 그냥 그 노래 한 번 불러 주세요로 시작되어서 이렇게 음반으로까지 진행되는 과정에서 서로 서로 엄청난 신뢰와 믿음 속에서 진실 되게 모든 일이 잘 진행되었고 실제로 뵌 적은 딱 한 번 밖에 없었지만 마치 너무나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사이인양 그렇게 편하게 만날 수 있었다는 것도 그리 쉬운 이른 아니라고 본다.

 상주아리랑이 녹음되면서 이제 있어야 할 곳에 무엇인가 제대로 자리를 찾아 갔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직도 중앙아시아뿐만 아니라 그 어딘가에서 떠돌고 있을 그 많은 한과 설움들을 조금이나마 진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맘이다. 그 영혼들이 이런 만남을 주선했고 그 영혼들이 이 곡을 만들었고 그 영혼들이 이 노래를 불러서 오늘 이렇게 음반으로 들을 수 있게 되었다고 믿는다.

 하기 사 고향을 등지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 중에 한을 품은 채 생을 마쳐야 했던 분들이 어디 상주 분들 뿐이겠는가. 우리 민족의 서러운 역사요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이이며, 앞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굳게 다져야 하는 역사적 사실이며 교훈이리라.

 아무튼 이 음반을 계기로 ‘상주아리랑’이라는 곡이 새롭게 재탄생한 것에 대해 너무나 기쁜 마음이 든다. 새로운 국악, 전통과 현대 속에서 자꾸 대중의 흐름 속에서 꾸준히  변해갔을 우리의 노래들, 원형을 알 수도 없는 정작 민초들의 평범한 우리 노래들이 어딘가 계속해서 들려오는데 이러한 정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노래가 우리나라의 진정한 포크송이고 그러한 노력을 계속해왔던 우리 팀으로서도 너무나 흥분되고 감동스러웠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리--아리--아리--스리스리 아라리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힘에 겨워 아리랑을 끝까지 못 부르는 아낙에의 숨소리...

 아리----랑 아리---랑

 녹음을 마치며....청개구리 음악감독 문지환”34)

 아울러 새롭게 탄생된 김의철의 ‘상주아리랑’을 통해 새로운 아리랑의 창작과 계승이라는 점에 대해 (사)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 김연갑 씨의 글을 통해 창작 아리랑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이 말은 맞는 말일 수도 있고, 맞지 않는 말 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말은 특수성을 강조한 것이니 세계가 우리의 것을 이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지 않는 한 보편성이 그들에게는 더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이 논리에 적용되는 우리의 ‘세계적인 것’, 그것은  있는가?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것일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두 가지가 충족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는 가장 우리적인 것이어야 하고, 다음은 이미 어느 정도는 세계성에 접근해 있을 만큼 보편성을 공인 받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아리랑 말고 어떤 것이 이에 적용될 수 있겠는가?

친근한 3음절의 아-리-랑, 우리 시가의 한 전통인 3음보격의 후렴,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ㅏ’·‘ㅣ’·‘ㄹ’·‘ㅇ’이란 음소의 결정체, 2행 1연의 사설에 후렴이란 단순한 형식, 여기에 근원(根源)까지를 함축한 역사성, 그에 담긴 민족사적 원상성(原傷性), 그리고 듣거나 부를 때 같은 마음으로 동화하는 연대감, 이런 것들로 하여 아리랑은 남과 북은 물론 세계 135개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민족 구성원 모두가 ‘민족의 노래’로 꼽는 ‘민요 그 이상의 노래’이다. 이로써 아리랑은 가장 우리다운 것임이 입증되고 특수성이 인정된 셈이다. -중략-

 <대구아리랑>은 분명 창작 아리랑이다. 그러나 따진다면 창작 아닌 아리랑이 강원도 아리랑(긴아라리·자진아라리)말고 어떤 것이 있는가. 밀양아리랑이 1920년대, 진도아리랑이 30년대, 하물며 아리랑의 대표라는 의미로 불려지는 본조아리랑(서울·경기아리랑)이 1926년 개봉된 영화<아리랑>의 주제가 이고 보면 거의 모든 아리랑이 창작 아리랑인 것임을 알게 된다. 바로 여기에서 시사 받을 수 있는 것은 전통이란 반드시 옛 것이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정체성을 유지하고 공동체에 의해 전승될 수 있는 내외적인 요건을 지니고 있느냐의 여부가 문제일 뿐인 것이다.

‘아리랑’이라고 할 때는 명칭에서 ‘아리랑’을 쓰며 여음에서 ‘아리랑’ 또는 ‘아라리’를 쓸 경우, 그리고 아리랑으로 인식하고 부를 경우만을 한정한다. 이것이 아리랑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요소인데, 창작의 경우 작사자나 작곡(작창)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미 아리랑의 정체성을 따르게 된다. 이는 자기 동일화의 장치이기도 하다. 이것은 전승 요건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중략-

 역사상 아리랑 주제 첫 창작곡은 1929년 김석송의 시에 안기영이 곡을 붙인 <그리운江南>으로 1938년 김천애의 독창으로 빅터레코드사가 음반화 한 것으로, 최근 북한과 장사익에 의해 다시 불려진 것이다. 이후 수많은 유행가와 지역 명을 단 아리랑들이 명멸했다. 여기에서 확인 할 수 있는 것은 본조아리랑이나 밀양아리랑과 진도아리랑에서의 경우와 같이 특별한 계기에 의해 탄생되거나 지역정서에 들어맞아 공동체에 의해 채택, 전승되면 그 지역을 초월하여 대표적인 민요의 하나로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번의 <대구아리랑>을 대비하면 여러 면에서 부합되어 가능성을 확인케 된다. 우선 세계를 기념하여 탄생되었고 형식과 내용에서 지역정서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고, 두 차례의 대중공연과 음반화 과정에서 전 분야의 공동 작업으로 이뤄져 보급에 주체적이고 적극적이라는 점이 주목되기 때문이다.35)


Ⅱ. 지역화 시대 ‘상주아리랑’의 보급과 활성화

 문화는 한 시대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이들에 의해 창조되고 발전되며 또한 계승되어 간다. 이 때 창조와 계승은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가지는데 계승이 없으면 새로운 문화의 창조는 어려워진다. 계승이란 자기 문화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애착과 관심에서 출발한다.

 다시 말하면 모든 문화는 관심과 사랑을 자양분으로 생성되고 발전하며 이어진다. 이 말은 아무리 좋은 문화라고 하더라도 관심과 사랑이 없으면 한 때의 유행에 불과할 뿐 문화로서의 생명력은 잃게 마련다. 지역문화도 문화라는 측면에서는 다르지 않다. 앞서 밝힌바 있지만 우리 지역의 아리랑으로 문헌상에만 나타나 있을 뿐 그 가락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아리랑이 있음을 보았다. 그 이유는 세월이 지나면서 그 가락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이 식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상주를 대표할 만한 민요로 ‘연밥노래’와 ‘상주서보가’ 그리고 ‘모심기 노래’가 명목을 유지하고 있음은 이에 대한 관심을 가진 이들이 이 노래를 보급하고 소개하기에 노력하고 있음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러나 상주를 대표로 한다는 ‘연밥노래’와 ‘상주서보가’ 조차도 실상을 보면 그렇게 활성화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상주아리랑’에 대해 설문조사를 하면서 위 두 노래에 대해서도 얼마나 알고 있으며 또한 노래로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솔직히 말해 ‘상주아리랑’은 아니어도 위의 두 노래는 많이 알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초․중․고 학생들의 85%가 모른다고 답했고, 혼자서 부를 수 있다는 응답은 겨우 5% 미만이었다. 잘 알 것이라고 믿었던 위 두 노래가 그렇다면 ‘상주아리랑’이야 물어 무엇 하겠는가.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지난 축제를 통해 방송을 통해 여러 번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음반도 배포되어 들어 본 기억이 있다는 응답이 예상 밖에 많이 나와서 기뻤다.

 지금은 지역화 시대이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자기 지역의 문화를 브랜드화 하기 위해 총력을 쏟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심지어 이웃 자치단체들끼리는 발견되거나 생성된 전설, 민담, 유물, 유적 등을 서로 자기네 것이라 다투는 현상도 생기고, 조그마한 내용이 있으면 침소봉대를 하더라도 서로 내세우려고 앞장서고 있는 실정이다.

 흔히 상주는 고도(古都)요 역사적 문화 도시라고 말한다. 우리 지역에는 경주처럼 드러난 문화재보다는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문화재가 많은 도시라고 말한다. ‘구슬이 서 말 이라도 꾀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아무리 드러나지 않은 문화재가 많이 있다고 하더라도 더러 내지 않으면 구두선(口頭禪)에 불과하다. 이미 앞에서 밝혔듯 ‘더러 내는 일’에 소홀했던 까닭에 상주아리랑 몇 편은 사라지고 있음, 아니 죽어 버린 사실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상주아리랑’을 찾아 나서다 보니 어떤 이들은 ‘상주아리랑’과 상주와의 연관성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어찌되었던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가 관심을 주지 않았음에도 ‘상주아리랑’은 홀로서기에 성공하였고 ‘상주 곶감’이 상주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된 것처럼 이미 상주를 대표하는 ‘문화브랜드’가 되어 전국에서 그 명성을 높이고 있음이 사실이다. 우리로서는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들이 우리의 노래가 생명력을 지닐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앞서 밝혔듯 우리 상주 인들이 이에 관한 관심과 애정을 쏟는 일이다. ‘연밥노래’와 ‘서보가’가 그래도 상주를 대표하는 민요가 된 것은 노래를 현대적인 기보법으로 채보하여 악보를 만들고 각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바라기는 행정은 행정으로의  뒷받침을 하고 학교는 교육의 장으로서 보급에 앞장서며 이와 관련이 있는 문화예술단체들은 공연을 통해 지역문화와 예술을 알리는 일에 앞장서야 하겠다.

 이 일이 급선무라는 생각에서 김소희 작창의 ‘상주아리랑’과 김의철 작곡의 ‘상주아리랑’을 채보하여 악보로 만드는 일을 해 보았다. 음악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소리로서의 아리랑을 바르게 채보 하였는지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이 분야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으니  그리 소홀하진 않았으리라 확신한다. 이 악보가 문화원이나 시문화담당자, 그리고 각 학교와 관련 문화예술단체에 보급되어 활용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다음은 ‘상주아리랑’의 보급과 발전에 힘을 쏟고 있는 몇몇 모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가. 모정(慕汀) 이명희(李明姬) 명창의 (사)영남판소리보존회

 모정 이명희 명창(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제8호)은 1946년 경북 상주시 낙동면 출생으로 김소희 선생으로부터 단가, 판소리, 살풀이, 승무를 배우고 원옥화 선생에게서 가야금 산조,를 박녹주 선생에게서 흥부가를 배웠다. 1990년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명창부 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36) 지금은 사단법인 영남판소리보존회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상주시 계산동에 판소리 보존회 사무실을 열고 후학들에게 ‘상주아리랑’을 보급하고 상주문화원에서 주최하는 전국민요경창대회를 개최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다.


나. (사)영남민요아리랑보존 상주지회

 (사)영남민요아리랑보존 상주지회(지회장 김동숙)는 (사)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대표 정은하)와 함께 상주아리랑의 보급에 힘써오고 있다. 이들은 대구아리랑제, 문경아리랑제 등 지역 아리랑제가 열릴 때마다 ‘상주아리랑’을 프로그램에 삽입하여 그 지역 아리랑과 함께 상주아리랑을 홍보하는 일에 힘쓰고 있고, 아울러 지역에서 열리는 각종 민요 행사나 경로대학 등의 초청 때에도 상주아리랑을 불러 지역민에게 보급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이들은 지난 2008년 (사)영남민요아리랑보존 상주지회가 주최하고 상주문화원, (사)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대표 정은하), (사)한민족아리랑연합회가 후원한 '2008상주 아리랑축제'를 12월 17일 상주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열기도 했다.

 이날 김동숙 지회장은 인사말에서 "상주아리랑의 보급과 홍보를 위해 10여년을 하루같이 민요봉사를 하면서 어디에서나 당당히 아리랑을 불렀던 우리 단원들, 오늘 여러분 앞에서 마음껏 목청이 터져라 함께 불러 보고자 하오니 오늘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특히 이날은 (사)한민족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씨의 각 지역 아리랑에 대한  해설을 맡아 참석한 이들이 아리랑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37)

      2008 상주아리랑축제 공연


다. 상주거리문화예술단

 지역사회 공연문화의 확산을 위해 탄생한 ‘상주거리문화예술단(단장:김현배)’은 지난 2004년 지역문화 발전과 공연문화의 활성화라는 목표로 창단되었다. 그동안 이들은 열악한 지방의 공연문화를 위해 땀 흘렸다. 창단부터 몇 년간 관객이라고는 스텝의 수만큼도 안 되는 이들을 모셔두고 리허설부터 본 무대공연까지 참으로 성실하게 공연을 했다. 관객인 내가 보기에도 미안할 정도로. 이들의 정성은 이제 서서히 열매를 맺고 있다. 횟수가 거듭될 수록 객석과 무대가 한 마음이 되어 뜨거워지는 걸 보면 말이다.

 이 상주거리문화예술단이 ‘상주아리랑’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명희 명창이 부른 ‘상주아리랑’을 채보하는 노력을 보이더니 지난 2009년 7월 21일 토요일에는 마침내 첫 번째 ‘열 두 고개 상주 아리랑축제’를 상주문화회관 앞마당에서 열었다. 그동안 상주거리문화예술단이 거리예술 한 마당을 펼쳐 시민들의 문화와 공연의식을 일깨워 왔지만 ‘상주아리랑’이란 표제를 달고 이런 행사를 한 것은 첨 있는 일이다.

 이날 공연에서 ‘고경가야금병창단’이 연주한 ‘상주아리랑’과 필자가 5분간에 걸쳐 ‘상주아리랑’에 대해 단편적이나마 해설을 겸한 안내를 했고, 황구하 시인이 아리랑 시낭송을 통해 지역주민들에게 ‘상주아리랑’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이 예술단은 앞으로 ‘2009년 9월이나 10월쯤에 한 번 더 상주시 계산마을 ‘아리랑 고개’에서 두 번째 ‘열 두 고개 상주 아리랑축제’를 열 계획을 가지고 준비에 한창이다. 이들의 이러한 활동들로 통해 아리랑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에 큰 영향을 주리라고 기대가 된다. 이번 행사는 상주아리랑축제준비위원회가 주최하고 상주거리문화예술단이 주관하며 행정적으로는 상주시가 후원할 계획이다.38)         

     ‘열두 고개 상주 아리랑’ 공연모습









라. 상주문화원 문화학교 민요반

상주문화원 부설 문화학교 민요반(회장 : )은 상주문화원에서 매주 요일 ---선생을 모시고 민요를 공부하고 있다. 이들은 민요를 공부하면서 ‘상주아리랑’의 보급에 힘쓰고 있는데 지난 2008년 12월 26일에 열린 2008 송년시민위안잔치에서도 ‘상주아리랑’을 불러 관객들에게 칭찬을 받았다.

      상주문화원 문화학교 민요반

 

마. 고경가야금병창단

 고경가야금병창단(회장:전정자)은 2001년 윤정애 선생을 지도교사로 초빙하여 이 지역에 가야금병창단을 구성하여 자신들의 소질개발은 물론 연주를 통해 지역사회에 봉사하여 왔다. 지난해부터는 김초희 선생을 지도교사로 모시고 모두 8명의 단원들이 모여 가야금을 익히면서 상주노인복지회관이나 각 면단위 노인정에서 노인위안잔치가 열릴 때 마다 초청을 받기도하고 자원봉사로 참여하면서 이들에게 ‘상주아리랑’을 공연하고 있다. 2009년 7월 21일에 열린 ‘열두 고개 상주아리랑’(상주거리문화예술단 주최)공연장에서 가야금 병창과 ‘상주아리랑’을 불러 상주아리랑의 보급에 노력하고 있다.

    상주아리랑을 부르는 고경가야금병창단


바. 송옥숙 풍물놀이


Ⅱ. 전국단위 공연에 대한 ‘상주아리랑’ 기사 보기


 상주아리랑에 대한 자료는 가까이 있는 도립상주도서관에서 참고 될 만한 문헌 몇 권을 찾았고, 인터넷상에서는 상주아리랑과 관계되는 소리꾼이나 가사들, 그리고 저마다 조금씩 다른 유형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감명 깊은 것은 전국적인 각종 음악회나 콘서트에 약방의 감초처럼 ‘상주아리랑’이 프로그램 속에 들어 있음을 발견한 일이다. 다음은 인터넷 여행도중 만난 ‘상주아리랑’ 보도 기사를 순서 없이 소개함으로 ‘상주아리랑’의 인기도를 실감해 보고자 한다.

1. 군산교육청 '학부모 음악제' 개최

 뉴시스 기사전송 2008-12-04 15:54

 전북 군산교육청 군산시민문화회관에서 노래와 함께하는 교육가족 공동체 구현을 위한 '제4회 학부모 음악제'를 3일 오후 성황리에 개최됐다.-중략-

 특히 공연무대에서 교육청 소속의 에듀코러스어머니합창단의 '예쁜 세상을 노래해요' 등 연이은 3곡을 시작으로 군산부설초등학교 어린이 합창단의 상주 아리랑 등 6 개 팀의 아름다운 하모니가 연주 홀에 울려 펴지며 관중과 호흡을 함께하는 환희의 무대로 펼쳐졌다.

고석중기자 k9900@newsis.com


2. 홍천, 23일 찾아가는 국악공연

뉴시스 기사전송 2008-08-22 13:18

 강원 홍천군은 문화소외지역 및 계층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문화활동사업을 실시한다. -중략-

 이번 찾아가는 문화활동 국악공연은 최종민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교수의 사회로 변기영씨의 강원도 아리랑, 한오백년, 상주아리랑, 신고산타령, 궁초댕기, 상여소리, 이별가 등 동부민요를 중심으로 구성진 가락을 담아낸다. -후략-

한윤식기자 ysh@newsis.com


3. 서울시합창단 제111회 정기연주회

- 봄이 오는 소리(우리가곡과 합창의 밤)

 http://www.sejongpac.or.kr/performance?code=smpv2009040215001 

 2009년 4월 2일(목)-3일(금), 저녁 7시30분

 서울시합창단이 2009년 봄을 맞이하여 4월 2일(목)-3일(금), 오후7시30분 세종M 씨어터 에서 제111회 정기연주회 “봄이 오는 소리(부제-우리가곡과 합창의 밤)” 공연을 무대에 올린다.

 서울시합창단은 “봄이 오는 소리”의 레파토리로 봄의 정취가 묻어나는 한국가곡과 우리가락들을 연주하게 된다. 한국가곡으로는 우리 귀에 잘 알려진 가곡들로 이흥렬 님의 “꽃구름 속에”, 정덕기 님의 “산”, 김동진 님의 “저 구름 흘러가는 곳”, 김순애 님의 “사월의 노래”, 김동환 님의 “바람 부는 언덕에”, 최영섭 님의 “그리운 금강산” 등이 연주 되며 더불어 더욱 흥을 돋을 우리가락으로는 “거문고 뱃노래”, “상주아리랑”, “진도아리랑”, “물레타령”을 연주 하여 봄이 주는 신선함과 따뜻함을 합창과 독창을 통해 전달할 예정이다.  특히 대금소리와 함께 울릴 “상주아리랑”을 통해 봄밤의 정취가 가슴을 흠뻑 적실 것이다.

□ 네 편의 우리가락

ㆍ거문고 뱃노래 --------------------------------------------- 이범석

ㆍ상주아리랑 ----------------------------------------------- 이기경

ㆍ진도아리랑 ----------------------------------------------- 안재성

ㆍ물레타령 ------------------------------------------------- 진규영


4. 김옥숙의 상주아리랑

07 창원 토요야외 어울림마당 '우리소리 한마당'

주최 : 창원시 주관 : 경상도소리보존회

2007.07.28(토)19:00 창원 용지공원 야외무대


5. 겨울날의 국악여정 - 남산에서 놀다  

기간 : 2009/01/24 ~ 2009/01/24

장소 : 서울남산국악당

티켓요금 : 일반 2만원/ 청소년 1만원

문의처 : 2261-0514~5

 - 관객과 호흡하는 현대적인 국악무대

 - 자유로운 새에게

1.몽환

2. 따북네

3. 그대마음

4. 천안삼거리

5. 송인

6. 취해볼거나

7. 상주아리랑

8. 진주난봉가

9. Missing

(영화 ‘워낭소리’ost삽입곡)

10. 서우제

11. 신사랑가2

 

6. 2008 대구아리랑제 (DaeGu Arirang Festival)

일시 : 2008년 8월15일 (금) 19:30

장소 : 대구시민회관

주최.주관 : (사)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

후원 : 대구광역시

해설 : 김연갑


프로그램 

제1부

■ 독도아리랑 (솔로무용) - 박현미 외 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원

■ 울릉도아리랑 - 박숙경, 곽동현 “

제2부

■ 서도아리랑 - 오은비 외 9명 “ 영상 : 조수제

■ 해주아리랑 - 박현성 외 9명 " 무대 : 조영익

■ 본조아리랑 - 이호연 중요무형문화재 57호 전수조교 음향 : 송장익

■ 경기긴아리랑 - 이춘희 중요무형문화재 57호 보유자 조명 : 이대우

■ 정선아리랑 - 김길자 강원무형문화재 1호 보유자 진행 : 최석민

■ 경상도아리랑 - 정은하 영남민요아리랑 보존회장 음악 :고봉혁 영남민요아리랑민속합주단

■ 문경아리랑 - 허윤도 외 “

상주아리랑 - 김동숙 외 영남민요아리랑 상주지회 회원

제3부

■ 독립군. 광복군아리랑 - 이 깐딴띠

■ 영천아리랑 (군무) - 최화진 외 대구 흥춤 보존회

■ 영천아리랑 - 류정임 외 영남민요아리랑 보존회원

제4부

■ 밀양아리랑 - 신수진 외 영남민요아리랑 보존회원

■ 진도아리랑 - 강송대 전남무형문화재 13호 보유자

■ 대구아리랑 - 도민정 외 영남민요아리랑 보존회원

■ 본조아리랑 - 전성희 외 전체 출연진


7."중장년 위한 공연도 많아요"

2008. 05.02. 08:37

조영남·심수봉 디너콘서트 등

한편, 어버이날을 맞아 의미있는 국악공연도 함께 한다. '부산시민과 함께 하는 웰빙콘서트-부모송(父母頌)'이 8일 오전 11시 을숙도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다양한 레퍼토리로 열린다.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이 창작관현악 '아름다운 인생'(김선재 작곡)을 연주하고 부산시립국악단 부수석 박성희 명창이 고향 어촌의 삶을 그리는 '나나니'(박범훈 작곡)를 정겹게 부른다. 박수관 동부민요보존회 회장은 경상도지역 소리를 대표하는 '상주아리랑' '한오백년' '치이아칭칭나네' 등으로 흥을 돋우고, 김태곤은 대중가요인 망부석과 국악편국의 신강강술래를 부른다. 김수진·최혜규 기자 kscii@busanilbo.com 


8. 이태원 국악 작곡 <고물고물> 

 일시 : 2007-12-11 ~ 2007-12-14

 장소 : 대학로 아리랑 소극장

 시간 : 저녁 8시

 주요스텝 : 작곡.음악감독 : 이태원

 연출 : 김지후

 - 연주곡

고물고물 : 나레이션과 시김새를 위한 인트로

토리놀이4 : 시나위를 위한 전조

쇠별꽃 : 김형태의 시 한 잎

마당에 고인 물 : 피아노와 경토리의 통로

앉은뱅이 - 가곡 : 한 답변

넘어 - 상주아리랑을 꾼 꿈

꽁트 - 기억을 위한 실내악

 

Ⅱ. 상주아리랑 악보

 소리로서의 아리랑이 노래가 되기 위해서는 소리로 전수하던 방법으로는 대량 보급이나 확산이 어렵다. 더구나 요즘처럼 서양악보에 익숙한 우리네이고 보면 악보가 없이 소리로 아리랑을 익히기에는 지도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에게도 무리가 있다.

 이에 필자는 상주아리랑의 보급은 악보에 있다고 보고 조금은 무리수를 두었지만 김소희 작창의 ‘상주아리랑’과 음반으로만 나온 김의철 작곡의 ‘상주아리랑’을 기보하였다. 필자는 국악에 대해 전문가적인 식견이 없어 어떤 오류를 범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혹여 잘못된 내용은 전문가들의 다스림으로 고쳐 가리라 여기며 기보 악보를 첨부하기로 하였다.

 한편 이기경 작곡의 합창곡 ‘상주아리랑’의 경우 작곡자의 저작권에 관련이 있어 전곡을 수록하지 못한 점이 아쉽기는 하나 관심 있는 분들은 작곡자와 협의하여 악보를 구할 수 있기에 소개만 하기로 한다. 


 


                   1. 상주 아리랑

                                                   김소희 명창 작창   정동식 기보

            아리    랑      아 리   랑          아-  라- 리-      요   -

         아리   -   랑 -   고  개  -    를 -    넘 어     간         다

           개나     리       봇 짐    을        짊 -  어 -  지 -  고   -         

         아리    랑    -    고  개     를       넘  어       간     다

            아리    랑      아 리   랑          아-  라- 리-      요   -

         아리   -   랑 -   고  개  -    를 -    넘 어     간         다

          아 버    지        어 머    니        어- 서- 와-      요 -

           북 간  도   -      벌 -  판 -  이 -   좋  답    디         다.

            아리    랑      아 리   랑          아-  라- 리-      요   -

         아리    랑    -    고  개     를       넘  어       간     다

          쓰라      린       가 슴    을       움  -   켜-  지-   고   -

         백 두   산    -    고  개     를       넘  어 -     간     다

            아리    랑      아 리   랑          아-  라- 리-      요   -

         아리   -   랑 -   고  개  -    를 -    넘 어     간         다

 (후렴)

                아리 아 리  쓰  리 -  쓰  리     아  -  라 리 -     요   - 

 (1절후렴)

          아 리    랑   -    고 개  -   를       넘   어     간      다.

 (2절후렴)

         아 리   랑   -      고  개  -    를    넘   어     간      다.


      

      (1절)문 - 전  에        옥-  토   는      어 -  찌  되 -    고  -

      (2절)원수로  다         원수로   다     원 -  수  로 -    다  -

      (3절)말 - 깨  나        허-  는   놈     재 판 소  -    고  -

         쪽  박    의        신 -   세  가 -    웬   일     인      가

         총  가    진        포 -   수  가 -    원   수     로      다

         일  깨    나        허 -   는  놈 -    공   동산   간      다     

 (3절후렴)

              아리 아 리   쓰  리 -  쓰  리     아  -  라 리 -     요   - 

         아 리   랑   -      고  개  -    로    넘   어     간      다.

 

 a tempo(slow)

            아리    랑      아 리   랑          아-  라- 리-      요   -

         아리   -   랑 -   고  개  -    를 -    넘 어     간         다




         2. 상주 아리랑            

김의철 곡

                         전래민요

  

      1. 괴   나   리        봇    짐    을      짊   어    지         고

      2. 아   버   지        어    머    니      어   서    와         요

      3. 쓰   라   린        가    슴    을      움   켜    지         고

      4. 문   전   에        옥    토    는      어   찌    되         고

      5. 말   께   나        허    는    놈      재판 소    가         고

      6. 원   수   다        원    수    다      원   수    로         다


         


         백    두  산        고    개    를      넘    어   간          다

         북    간  도        벌    판    이      좋    답   니          다

         아    리  랑        고    개    를      넘    어   간          다

         쪽    박  의        신    세    가      웬    말   인          고

         일    께  나        허    는    놈      공(동) 산   간          다

         총    가  진        포    수    가      원    수   로          다

(후렴)

        

         아    리   랑        아   리    랑      아    라   리           요

       아     리    랑       고    개    를      넘    어   간          다



      아      리                                  아     리


      스 리 스 리 아 라 -    리    요

      아        리                                아    리        


      아        리                      아        리

















3. 상주민요집에 채보된 아리랑의 악보





4. 이기경 곡의 상주아리랑







































Ⅱ. 글을 맺으며

 ‘상주아리랑’에 관심을 가진지 이제 겨우 1년. 그 1년 동안 온통 머리에슨 ‘상주아리랑’으로 가득 찼었다. 도립상주도서관에 도서대출증도 만들고 몇 권의 책도 빌려와 자료를 찾았다. 사실 찾으려면 ‘아리랑’에 관계된 도서와 연구 논문만도 엄청나게 많았다. 그러나 우리 상주와 관계된 자료만 찾기로 한정을 하였다. 이러는 동안 정선아리랑학교 진용선 님과 메일도 주고받았고 (사)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 홈페이지에 회원가입도 했으며, 이명희 명창이 운영하는 판소리 상주 전수관도 찾아갔다. 뿐만 아니라 문화원 민요반이 공부하는 날은 뒷자리에 참석하여 한 시간 공부도 하면서 그분들에게 ‘상주아리랑’ 한 곡조 불러 달래서 동영상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이런 저런 사연으로 고경가야금병창단도 알게 되고 (사)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 상주지회가 있음도 알았다. 아울러 이분들이 ‘상주아리랑’을 위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수고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용기를 얻어 설문지를 만들어 난생 첨으로 초․중․고등학교를 찾아 설문조사 흉내도 내어봤다. 이러다 보니 상주거리문화예술단이 공연하는 ‘열 두 고개 상주아리랑 한마당’에도 초청을 받아 공연무대에 난생 처음으로 서기도 했다.  내가 몰랐던 분야에 대해 조금씩 눈이 뜨이고 알게 되는 즐거움에 바쁜 나날이었지만 보람이 있었다.

 이러다 보니 상주문화원에서 발간하는 ‘상주문화’ 19집에 ‘상주아리랑’이란 제하의 원고를 쓸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내게는 퍽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도 내가 하는 일이 지역문화의 발전과 계승이라는 중요한 과제에 얼마나 보탬이 될 수 있을까 솔직히 의문이 든다. 앞서도 말했지만 지역문화는 지역인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만 발전하고 계승되는데, 다양한 현대사회를 사는 오늘에 얼마나 우리 고전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할 것인가가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렵고 힘들지라도 이러한 기회를 통해 분명히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생겨나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본고를 통해 ‘상주아리랑’이 더 널리 더 많이 더 관심 있게 불려 지기를 소망해본다.

 







 

 

출처 : 빛마당 산책
글쓴이 : 빛마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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