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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인공댐이 삼킨 고래무늬 흙으로 부서질 위기에…

도깨비-1 2010. 7. 6. 17:35
인공댐이 삼킨 고래무늬 흙으로 부서질 위기에…
http://newslink.media.daum.net/news/20100706170912388

출처 :  [미디어다음] 문화생활 
글쓴이 : 경향신문 원글보기
메모 : 지난달 18일 울산광역시는 최근 10여년간 문화재 보존의 가장 첨예한 이슈가 돼온 국보 제285호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이하 반구대 암각화) 보존에 전기가 될 획기적인 결정을 내렸다. 사연댐 상류 표고 52.5~56.5m에 걸쳐 있어, 1년에 절반 이상 물에 잠기던 반구대 암각화가 더 이상 물에 잠기지 않도록 수문을 설치하고 댐 수위를 52m 이하로 낮추겠다는 내용이었다. 반구대 암각화는 그동안 문화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반구대 암각화를 보존하는 최선책은 수위를 낮추는 것이라는 데 합의를 이뤘지만 각론을 두고 울산시와 문화재청, 한국수자원공사가 이견을 조정하느라 10여년을 흘려보냈다. 차일피일 보존대책 마련이 늦춰지는 동안 암각화의 훼손이 진행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번 결정을 계기로, 지난했던 반구대 암각화의 역사를 더듬어보기로 했다. 현장답사가 우선이었다. 사연댐 상류 절벽면에 새겨진 반구대 암각화를 보기 위해선 배를 타고 물을 건너야 한다. 특히 장마가 시작되기 이전은 갈수기여서 반구대 암각화가 온전히 물 위에 드러나 살펴보기 좋은 적기다.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대곡천변 북쪽 암벽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국가 지정 문화재다. 관리는 해당 지자체인 울주군에 위임돼있지만 울주군이 울산광역시에 편입되면서 울산시에서 관리한다. 그러나 사연댐은 한국수자원공사에서 관리하는 등 관리체계가 복잡하다. 지루하게 암각화 보존 논쟁이 계속된 이유다.

고래와 표범, 호랑이, 멧돼지, 사슴 등 다양한 육지 및 해양 동물을 쪼고 긁어 제작한 반구대 암각화는 문자가 없던 시대 한반도 거주인들의 생활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들의 무지와 무관심으로 인해 현재 반구대 암각화는 흙으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지난달 25일, 문화재청 및 한국수자원공사와 협의해 배를 타고 반구대 암각화에 접근할 수 있다는 허가를 받았다. 물이 빠져 암각화는 제 모습을 온전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바위면에 새겨진 무늬는 육안으로 관찰이 불가능했다.

보트를 타고 암각화에 접근했다. 암각화 앞 암반에 성인 예닐곱명이 서 있을 수 있었다. 북향인 반구대 암각화는 여름철 오후 3~4시 무렵이면 서쪽 하늘에서 해가 들어 고래와 호랑이, 사슴, 사람 등의 무늬가 선명하게 보이지만, 이날은 날씨가 흐려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암각화 상단에 있는 고래무늬는 한참을 바라봐야 겨우 형체가 보였고, 사슴과 호랑이 무늬도 흐릿했다.

지난달 25일 촬영한 반구대 암각화 좌측 절벽면의 훼손 부위(붉은 원).
동행한 김호석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의 설명에 몇몇 무늬들이 눈에 들어왔다. 확실히 이전에 촬영된 사진자료나 박물관에서 본 복제품에 비해 각종 무늬는 흐릿해졌고 암각화 벽면 및 좌측 절벽면에 물이 샌 흔적이 보였다. 김교수는 암각화가 새겨진 암벽과 암반이 분리된 지점을 가리키며 물이 계속 들고차면서 10㎝이상 떨어져나갔다고 설명했다. 2003년 '반구대 암각화 보존대책 연구'를 수행한 서울대 김수진 교수는 암벽이 파열될 위험이 있으며 암석 탈락현상이 가속화되면 암각화를 파열시킬 수도 있다고 지적했는데, 실제로 둘러보니 암각화가 조각된 얇은 이암층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갔으며 암각화를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암각화를 둘러본 뒤 보트를 10여분간 타고 사연댐 입구로 이동했다. 1965년 건설된 문제의 사연댐은 수위조절 기능이 없는 '멍텅구리' 댐이다. 사연댐의 만수위는 60m로, 방문한 25일 수위는 52m였다. 취수탑에는 두 개의 취수구가 있는데 댐의 물은 오직 이 취수구를 통해서만 배출된다. 취수구를 통해 배출돼 울산시민에게 공급되는 물은 하루 15만t. 관계자들은 수문이 여수로에 설치될 가능성이 크며, 올 가을부터 설계에 들어가면 완공까지 약 2년이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취수구로 물 빠지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착잡했다. 수문 설치는 반구대 암각화의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한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방책일 뿐이다. 수문이 완공되기까지, 암각화는 별 수 없이 장마철이 되면 다시 물에 침수됐다가 갈수기가 되면 물 위로 드러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보다 적극적이고 본질적인 차원의 보존책을 모색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물을 뿜는 고래를 묘사한 암각화(흰색 원). 왼쪽은 1980년대초, 오른쪽 사진은 2009년 김호석 교수가 촬영한 사진이다, '반구대 암각화' 발견부터 논쟁까지

반구대 암각화가 학계에 공식 보고된 것은 1971년이다. 그해 12월25일 문명대, 김정배, 이융조 교수 등이 마을 주민의 안내로 사연댐 상류에서 암각화를 발견했다. 높이 3m, 너비 10m의 수직면에 고래를 비롯해 호랑이와 사슴, 사람 등 약 300점의 도상이 새겨져있는데, 이들 도상은 신석기시대 후기에서부터 철기시대 초기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종 구분이 가능할 정도로 각기 다른 외형의 고래를 묘사하고 있으며 인간이 고래를 잡는 포경장면도 묘사한 점이 주목된다. 고래를 새긴 암각화는 반구대 암각화와 스칸디나비아반도 청동기 유적이 보고돼 있을 뿐이어서 세계적으로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발견 이후 10년 넘게 반구대 암각화는 방치됐다. 83년 7월에야 지방문화재로 지정됐으며, 95년 6월 비로소 국보로 지정됐다. 이웃한 천전리 암각화가 발견된 지 3년 뒤인 73년 국보로 지정된 것과 대비된다. 무방비 상태로 방치되던 암각화에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2001년 울산시가 암각화와 불과 1.3㎞ 거리에 선사문화전시관을 세우고 산책로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부터. 학계에서는 반구대 암각화의 훼손이 가속화되고 일대의 환경오염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경주~언양간 국도변에 자리를 옮겨 짓자고 제안했지만 울산시는 2003년 일대 개발공사를 추진하고, 2006년 암각화전시관(현 울산암각화박물관) 건립을 강행했다.

암각화는 흐릿해졌고 짙은 암회색 표면은 30여년 뒤 황토색으로 변색됐다. 김 교수는 이러한 변화가 자연 풍화 뿐 아니라 연구자들의 부주의로 인해 달라진 것이라고 주장했다.잘 알려져있다시피 암각화 훼손의 가장 큰 원인은 암각화 발견 이전인 65년 세워진 사연댐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매년 7월 장마가 시작되면 물에 잠기기 시작해 이듬해 3~4월까지 잠긴다. 울산시 관계자는 2005년 사연댐 상류에 대곡댐이 완성되면서 물에 잠기는 기간이 5개월로 줄어들었다고 했지만, 전문가들은 암각화 보존을 위한 최선의 방책은 무조건 암각화가 물에 잠기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수위조절안은 이미 2003년 발표된 보존방안이다. 당시 반구대 암각화 보존대책 조사를 시행한 서울대 석조문화재연구소는 사연댐 수위 조절, 수로 변경, 암각화 앞 차수벽 설치 등 3개 안을 제시했다. 학계와 문화재청은 수위조절안을 주장했지만 울산시는 이를 반대해왔다.

이 사이 반구대 암각화는 멸실 직전에 놓이게 됐다. 지난해 문화재청이 마련한 '반구대 암각화 보존대책 마련 공청회' 발표자료에 따르면, 반구대 암각화의 풍화단계는 현재 6단계 중 5단계인 '흙 상태 직전'에 진입했다. 2008년 이수곤 서울시립대 교수(토목공학)는 서울대 석조문화연구소가 2000년대초 암각화의 풍화상태를 진단하기 위해 슈미트 해머로 암각화 표면 189곳을 두드려 이로 인해 심각한 손상이 이뤄졌다고 발표했었다. 충격적인 보고에 놀란 문화재청과 학계는 다시금 반구대 암각화를 수장 위기에서 구해내기 위해 움직였다. 사연댐의 수위조절을 해도 현재 물공급량에는 문제가 없다고 지난해 국무총리실이 조정을 중재했지만 울산시는 2025년이면 물이 부족하다며 대체수원 확보를 주장하며 버텼다.

그러던 울산시가 수문설치를 발표한 것은 전향적인 결정이다. 그러나 반구대 암각화 보존운동을 벌여온 학계와 시민단체들은 대체수원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울산시가 결정을 철회하는 것 아닐까 우려하고 있다. 조충렬 울산시 행정부시장은 지난 1일 경향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정부에서 대체수원 확보를 약속했기에 믿고 진행하는 일인데, 약속을 믿지 않으면 어떻게 (일이) 진행되겠느냐"고 민감하게 반응했다. 김창준 문화재청 문화재보존국장은 "현재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대구·경북권 광역상수원 확보에 대한 타당성을 조사 중이며 울산권 물공급대책에 대한 타당성 조사도 다뤄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결과가 나오는 대로 국토해양부에서 의지를 갖고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수문 설치가 확정됐다는 얘기다.

수문 설치 결정으로 침수문제는 해결의 가닥이 잡혔지만 심각하게 훼손이 진행된 부위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 앞으로 모니터링과 유지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는 남아있다. 울산시는 공주대 산학협력단이 '반구대 암각화 암면 보존 방안 학술조사'를 진행 중이라면서, 오는 9월 구체적 보존대책안을 다룬 보고서가 나오면 이에 따라 최선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반구대 암각화에 관한 종합적 차원의 조사와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보존대책 마련을 위한 조사는 2000~2003년 서울대 석조문화재연구소가, 현재는 공주대 산학협력단에서 진행하고 있다고 치자. 이에 앞서 선행돼야 할 반구대 암각화 및 일대에 대한 기초적·종합적 차원의 조사는 이뤄진 적이 없다. 이러한 지적에 울산시 관계자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석조문화재로서는 관리인력이 상주하고 폐쇄회로(CC)TV도 설치했다. 매일 아침 사연댐 수위도 보고받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태양열로 발전하는 CCTV는 낮시간 동안만 가동되며 촬영화면은 인근 울산암각화박물관 모니터로 전송되지만 녹화는 불가능하다. 녹화 및 밤시간 동안 CCTV가 가동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 묻자 울산시 관계자는 "물을 건너야 하고 밤에 깜깜한데 누가 저기를 건너가서 암각화를 훼손하겠느냐"고 했다.

암각화의 상태를 사진으로나마 주기적으로 기록하고 DB화할 필요성은 없는지 물었다. 울산시 관계자는 "주기적 촬영은 필요없다"고 했다. "우리가 지금도 보존대책 조사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정밀한 도구 없이는 훼손 정도가 안 보입니다. 1년중 절반은 물에 잠겨있거나 물이끼가 끼어있는데 찍어봤자 안 나옵니다." 그러나 학자들은 이 같은 기록이야말로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암각화가 물에 잠기지 않도록 사연댐 물을 빼는 문제에 매달려왔기 때문에 울산시가 상세한 관리를 신경쓰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사실 모든 책임을 울산시에 떠넘길 수는 없다. 현재 국가소유 문화재 관리는 해당 지자체 위임사항이지만 문화재 보존·관리 책임은 문화재청장과 시·도지사가 함께 지게 되어 있다. 특히 내년부터 시행되는 문화재보호법 개정안에 따르면 문화재청장과 시·도지사는 문화재 보존 및 보수·정비·복원, 안전관리 및 기록정보화 관련 사항이 포함된 종합적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현존 문화재 현황과 관리실태를 조사하고 기록해야 한다.

반구대 암각화가 멸실 직전에 놓이게 된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문화재청과 울산시, 학계는 물론 시선을 돌리지 않은 시민들까지.

< 울산 | 윤민용 기자 vista@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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