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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무나 전문가 행세하는 시대

도깨비-1 2010. 6. 9. 14:28

[기고] 아무나 전문가 행세하는 시대

  ㅡ 이무하 / 한국식품연구원장/조선일보 2010. 06. 09

 

   우리는 미래 국가 비전과 경쟁력 강화라는 측면에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자라나는 세대가 이공계(理工系) 분야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하는 방법의 하나로 과학의 대중화(大衆化)를 거론한다. 국민이 좀 더 과학을 쉽게 이해하면 과학기술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어 이공계 분야에 진출하는 학생들이 그만큼 많아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광우병 사태나 천안함 사태, 혹은 4대강 정비사업 같은 국가의 큰 사회적 이슈를 경험할 때마다 우리는 일반인들이 전문가로 등장하여 여론을 오도(誤導)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심지어 매스컴에서 전문 의견을 제시하는 학자들조차도 자기 전공분야가 아닌 사람들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것은 선진국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아주 독특한 상황이다. 아무리 시대가 참여의 시대이고 인터넷 정보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해도 분야마다 전문가는 필요하다.
   천안함 사태에서 갖가지 의문을 제기한 많은 사람 중에 해당 분야 전문가가 얼마나 되며, 광우병 사태 당시 토론회나 조사에 참여하여 끊임없이 논란을 일으켰던 사람 중에 광우병이나 도축(屠畜) 공정에 대해 공부를 했거나 연구를 해본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를 우리 국민은 곱씹어봐야 한다.
   이건 아마도 TV에서 특정 식품이 몸에 좋다고 하면 그날 저녁으로 시장에서 바로 그 식품이 동나는 현상과 같다. 이는 과학적인 사고보다는 감정적인 사고에 익숙한 우리 국민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인터넷에서 너무나 쉽게 과학 정보를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과학은 쉽게 대중화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학은 자연현상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다. 과학 기술인들은 그런 지식을 활용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한다.
   현대 선진국은 과학문명에 기초하여 확립되었고 사람들은 과학에 근거한 합리성과 객관성을 기본으로 사물을 판단하는 데에 익숙하다.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에서 쓴 대로 인류의 역사가 원시사회에서 농경사회, 산업사회, 그리고 현재의 지식정보사회로 변천되어 오는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과학기술이다. 우리가 선진국 대열에 동참하려면 일반 대중의 과학에 대한 인식(認識)이 변해야 한다. 일반 대중이 인터넷에서 제공되는 지식 정보를 주워 모았다고 과학기술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회 신부 마크 링크는 "인터넷에 정보가 아무리 많아도 우리가 그것을 수집하여 자기 지식으로 만들지 않으면 소용이 없고, 아무리 많은 지식을 축적하였다 하여도 그것을 지혜로 만들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라는 말로 인터넷 정보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충고한다.
   우리가 국민 통합을 위해 필요한 것은 과학을 대중화시켜 사안마다 누구나 다 한마디씩 하게 만들어 혼란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중을 과학화시켜 국민이 합리성과 객관성에 근거하여 과학적 사고를 하게 만듦으로써 힘을 결집시키는 노력이 절실한 때이다. 그래야만 지식기반 경제 시대에 걸맞게 전문가가 대접받고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화로운 사회가 이뤄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