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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좌파시대 단절은 가능한가? - 조선일보

도깨비-1 2009. 11. 4. 15:38

[시론] 좌파시대 단절은 가능한가? 

        - 김영봉 중앙대 명예교수 / 조선일보-입력 : 2009.11.01 22:08 / 수정 : 2009.11.01 23:26

쓰레기더미를 제때 못 치우면
국가 망조적 좌파사상도 절대 청산 못한다
이때 보수쪽 양비론은
좌파의 결사적 저항보다 더욱 해로울 수 있다

얼마 전 김제동이라는 개그맨이 방송프로그램에서 하차하자 여론이 아주 시끄러워졌다. 그저 방송MC 하나가 바뀌는 문제인데 좌파언론은 물론 한국의 대표 보수일간지들까지 비판대열에 끼었다. 엊그제에는 청와대 관계자도 "김제동씨 하차 등이 수도권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친 게 뼈아팠다"고 말했다고 한다.

연예인 하나 교체를 하는데 이렇게 야단스럽고 정부가 눈치를 보는 나라에서 도대체 어떤 원칙 있는 국정이 가능할까?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2년 가까이 지났지만 무엇 하나 화끈하게 이룬 것이 없다. 실상 이 정권의 돌파력 부재는 민주당, 민노당의 생떼보다 안에서 바짓가랑이 잡아당기는 여당 정치인 탓이 컸을 것이다. 절차와 경우를 따지는 우파언론은 고비 때마다 김을 뺐다고 할 수 있다. 소위 식자(識者)들이 잘 쓰는 문자를 빌리자면 "속수무책(束手無策)", 자기들 스스로 손을 묶어 꼼짝 못하는 형국을 만든 것이다.

우파 식자들은 이렇게 격조 있게 양비론을 펴고 반성하는 모습을 좋아한다. 양비론은 좌파 우파 양쪽이 모두 선하고 모두 악하다는 주장이다. 보수언론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이런 자기부정(自己否定)을 할 때 우파 논제는 본질을 잃고 국민은 우파 잘못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 맹자는 그의 제자에게 왜 공자가 향원(鄕愿·고을의 점잖은 사람)을 "덕(德)의 적(敵)"이라고 했는지를 설명한다.

지난 10년 좌파정권이 들어서자 요직에 있던 점잖은 우파들은 더러워 피하거나 스스로 알아서 물러났다. 정부, 연구소, 공영방송국, 문화예술단체, 기타 온갖 조직은 위로부터 바닥까지 좌파들로 채워졌고 불순물을 용납하지 않는 이른바 "그들만의 리그"가 창설된 것이다. 처음부터 좌파에게는 양비론 같은 패배주의가 존재하지 않았고 염치나 절제도 없었다. 이런 10년간의 좌파공세를 경우 바르고 점잖은 보신주의 우파가 어찌 당하겠는가. 보수주의자들은 건국 이래 유지한 국가정체성과 국민정신을 지킬 수가 없었다.

전교조가 득세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미래인 청소년의 머리는 반미 친북 계급투쟁사상으로 빠르게 물들여졌다. 보수적 교사나 교수들은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특정 정치사회 이념을 강의하기를 주저한다. 교육자의 양심상 자기의 주관을 백지처럼 깨끗한 청소년의 머리에 주입시키기 망설여지고 그런 오해를 받기 싫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전교조에게는 이런 일이 좌파세상을 도래시킬 "역사적 사명"을 수행하는 성스러운 과업이니 주저할 바가 없다. 그들의 교육 모토는 민족, 민주, 인간화의 교육이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민족은 외세, 곧 미국을 몰아내고 남북이 합작하는 것, 민주는 노동자·농민·빈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 인간화는 수월성 교육과 서열화를 없애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이 자유기업, 시장경제와 산업개방의 저격자가 되는 동안 대기업들은 이들에게 굴복하고 사외 이사와 기부금으로 매수하기를 선택했다. KBS, MBC, SBS, EBS 등이 금년 7월 말까지 3년 6개월간 방영한 35개의 기업관련 시사프로그램을 살펴보니 33개가 삼성특검, 대기업 횡포, 산업재해, 탈세 등 반기업적 행위만 보도했고, 기업의 긍정적 활동을 다룬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결국 기업이 자승자박(自繩自縛)한 꼴이다. 오늘날 한국의 대기업들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지만 노조의 횡포, 기업의 해외탈출, 외국인 투자의 외면, FTA 지연, 서비스 개방 반대, 기타 온갖 규제와 반기업 풍토로 한국경제는 성장잠재력 탈진과 고용 없는 성장의 부담을 무겁게 지고 있다. 기업이 민주주의 시장기반을 지키지 않는데 어떻게 자유기업 시장경제가 유지되겠는가?

지난 8월 말 정연주 전 KBS 사장은 엄기영 MBC 사장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개인적으로 힘들고 온갖 모욕과 비난과 인신공격이 당신에게 가해지겠지만 그것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 MBC 사장이 이 시점 역사 앞에 감당해야 할 책무다. 그들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결코 스스로 물러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좌파들은 이런 순교자적 정신으로 한 발짝 후퇴도 결사적 저항을 한다. 보수가 따지는 절차와 경우가 어떻게 이들에게 통하겠는가.

쓰레기더미는 치울 때 치워야 한다. 이것이 쌓이고 냄새를 피우면 국가 망조(亡兆)적 좌파사상은 절대로 청산할 수 없다. 이 일을 방해함에 있어 보수의 탈을 쓴 양비론은 좌파의 결사적 저항보다 더욱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