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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사법부 독립은 사법부 위한 것 아니다.-조선일보

도깨비-1 2010. 1. 23. 16:25


[시론] 사법부 독립은 사법부 위한 것 아니다

   이효원/서울대교수-법학과/2010년 1월 22일
 

   공무원의 시국사건에 대한 처벌이 지방법원마다 다르고, 지방법원 판사가 고등법원의 MBC PD수첩 판결과 다른 내용의 판결을 해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 아동 성폭행이나 국회 폭력 사건에서 법관에 따라서 피고인이 다른 처벌을 받는다는 지적도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여 재판의 독립을 보장하고 있다. 이는 사법권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보장해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헌법이 인정하는 사법의 독립은 다음의 두 가지 전제조건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유념하여야 한다.
   첫째, 사법권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행사되어야 한다. 우리 헌법은 법치주의를 이념적 기초로 하고 있고, 법치국가의 핵심은 특정 개인과 세력이 국가권력을 자의로 행사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이 국가권력에 사법부는 당연히 포함된다. 법이란 개인과 공동체의 삶의 질서에 안정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즉, 과거의 행위에 대하여 법을 소급하여 적용하지 않고, 현재의 신뢰를 법적으로 보호하며, 미래의 법적 판단과 적용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법권도 이러한 법적 안정성을 구현하여야 하는 헌법적 책임을 지며, 사법의 독립도 이를 바탕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법의 독립이 법관의 전횡이나 자의적인 재판을 허용하는 것으로 이해되거나 사법관료주의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둘째, 법관은 '그 양심에 따라서' 재판하여야 한다. 이때 법관에게 요구되는 양심은 법관의 개인적 양심이 아니라 법관으로서의 직업적 양심을 말한다. 헌법과 법률이 법관자격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사법권을 독점적으로 맡긴 것은 법관의 직업적 양심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법치주의는 인간불신을 전제로 하고 있다. 즉, '인간에 의한 자의적 지배'를 배제하고, 그 대신 규칙으로서의 '헌법과 법률에 의한 이성적 지배'를 선택한 것이다. 법관이 직업적 양심이 아니라 개인의 가변적인 주관적 의사와 판단에 따라서 재판을 하게 되면, 동일한 성질의 사안에 대하여 유무죄나 구속 여부가 다르게 되고, 선고형량도 크게 차이가 날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재판으로서의 정당성과 공정성을 상실하게 하고, 법원의 재판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법관 개인의 주관적인 양심에 따른 재판은 법치주의를 위반한 것으로 헌법적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
   형사재판에서 국민의 사법 참여를 인정하는 것도 사법의 공정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는 법원의 영장기각에 대하여 불복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되어 있지 않고, 국가 공권력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에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법원의 재판에 대해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재판 결과에 대하여 논란이 있는 것 자체가 사법의 독립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특정한 사건에 대한 간섭과 비난이 아닌 사법작용과 제도에 대한 비판은 당연히 허용된다. 재판은 공정해야 하고, 공정한 재판만이 사건 당사자를 설득할 수 있는 것이다. 형사사법에서 사법의 독립이 그 헌법적 책임성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구속 여부나 양형에 대하여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이 요구된다. 또한 통상적인 상소제도를 통한 불복절차 이외에 사법절차를 합리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보완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것은 사법의 독립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강화하는 것이며, 국민도 사법부를 더욱 신뢰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