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이슈

[동서남북] 아직도 괴담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도깨비-1 2010. 6. 2. 11:00

 강인선/정치부차장대우/ 2010년6월2일  조선일보

 

  지난 5월 말 국회에서 열린 천안함특위에 참석한 윤덕용 KAIST 명예교수는 '외계인' 같았다. 천안함 민·군 합동조사단 공동 단장으로 국내외의 전문가들과 함께 천안함 침몰원인 조사에 참여했던 윤 교수는 이날 국회에서 의원들의 몰아세우는 듯한 질문에 적잖이 곤혹스러운 모습이었다. 국회의원들의 '정치적인 언어'는 윤 교수에게 너무 낯선 것 같았고, 윤 교수의 '과학적인 언어'는 정치인들에게 잘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며칠 후 인터뷰를 위해 만났을 때 윤 교수는 당시 정치인들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해서 할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았던 적은 있지만 그들의 거친 태도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조사결과에 자신이 있었고, 정치인들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 있다는 걸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 과학자는 몇개 웹사이트의 주소를 쓴 종이를 한 장 들고 왔다. 그 웹사이트엔 천안함을 격침시킨 것과 비슷한 어뢰가 어떻게 버블효과를 만들어 군함을 두 동강 냈는지 보여주는 동영상이 있었다. 그는 동영상과 이 과정을 그린 그래픽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강의에 가까운 설명을 했다. 그는 굳이 북한이 어뢰로 공격했네, 안 했네를 설명하려 들지 않았다. 괴담에 일일이 대응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가 드는 과학적 증거와 논리의 나침반은 자연스럽게 북한의 어뢰를 가리켰다.
   사실 그는 민간 단장으로 조사에 참여하기 전까지 이 사건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한다. 조사를 시작한 후에야 인터넷에서 관련 정보와 논문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토론을 벌이는 몇몇 영문 사이트들도 찾아냈다. 세계 각국 사람들이 참여하는 토론은 전문가 수준이었다고 한다. 괴담이 아니라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논쟁을 벌이는 데다 터무니없는 주장을 했다간 쫓겨나기 때문에 다들 진지하게 의견을 교환하고 있더란 것이다.
   물리학을 전공한 윤 교수에게 각국에서 온 조사단과 전문가 수준의 토론을 벌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반면 '비결정체의 산화알루미늄', '버블효과' 등 보통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거의 쓰지 않는 생소한 용어로 조사결과를 쉽게 설명하는 일은 어려웠다고 한다. 실제로 사람들은 사실이라 해도 쉽게 이해할 수 없으면 믿으려 하지 않고, 틀린 이야기인데도 당장 그럴듯하면 더 솔깃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사에 참여한 스웨덴측 대표의 태도는 신선했다고 한다. 그들은 모르는 분야의 문제가 나오면 의견을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알든 모르든 무턱대고 아무 의견이나 말해보는 식이 아니었다. 윤 교수는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필요하면 공부를 해서 알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르는 걸 안다고 착각하면 그건 희망이 없는 일이라고 했다. 윤 교수는 "자신들이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 보면 안타깝다"고 했다.
   천안함 사건이 이제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지금까지가 침몰원인을 조사해 그 결과에 대해 국제사회의 인정과 지지를 받는 단계였다면 이젠 더 적극적인 지지와 지원을 바탕으로 북한에 책임을 묻고 재발을 방지해야 하는 단계로 넘어갔다. 한때 북한과 가장 가까웠던 캄보디아도 최근 한국 지지 입장을 밝혔다. 유엔 등 국제기구들도 한국을 지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괴담을 만드는 데 골몰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부터 알아야 한다"는 이 과학자의 말을 전해주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