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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데스크] 김원기 전 의장의 고별사 -다수결원칙 존중되어야

도깨비-1 2009. 8. 8. 07:29


[조선데스크] 김원기 전 의장의 고별사

김민철/ 사회정책부 차장대우 / 09년 08월 6일 / 조선일보
 

   민주당은 6일 국회를 떠나 호남에서 대규모 집회를 가졌고, 한나라당은 "거리정치 중단하고 국회로 돌아오라"고 비판했다. 지난달 22일 미디어법 통과의 후유증이다.
   당시 국회 본회의장 모습은 국회를 10여년 출입했던 기자에게도 충격이었다.
   의장석 주변에서 의원들이 승강이를 벌이고, 본회의장 입구에서 몸싸움을 벌이는 정도는 일상적인 풍경이라 놀랍지 않았다. 그러나 의원들이 표결 행위 자체를 막는 장면, 일반인들이 방청석에서 구호를 외치는 장면은 갈 데까지 간 국회 아니고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어쩌다 기자석이 꽉 차 방청석에서 취재할 때 소곤거리거나 일어서는 것조차 제지당한 기억이 있는 기자로서는 일반인들이 방청석을 점령한 장면은 충격 그 자체였다. 국회가 지켜온 최소한의 금기들을 너무 쉽게 무너뜨리고 있는 것 같다. 갈수록 장면이 험악해지고 있으니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그 장면들을 보면서 김원기 전 국회의장의 '고별사'가 다시 떠올랐다. 김 전 의장은 지난해 5월 30년 정치를 마감하면서 "정치 불신의 가장 큰 원인은 국회가 법치주의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회에서 여야가 인내를 갖고 대화하고 타협하는 것이 민주주의 태도지만, 끝내 합의도출을 못하면, 최종적으로는 다수결 원칙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고 절실히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이어 "참으로 미안한 심정으로 이제 야당인 민주당 여러분께 간곡한 호소를 드린다"며 "18대 국회에서는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물리적인 힘으로 단상을 점거하고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행태를 청산하겠다는 각오와 선언을 해달라"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야당이 최후 수단을 포기했을 때 정권의 독선·독주를 어떻게 막겠느냐는 염려는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국민을 믿고 결단을 해달라. 약한 야당을 각오하고 결단할 때, 국민은 여러분을 강한 야당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나라당 의원들에게도 "민주주의 본질이 소수자에 대한 존중임을 알고 실천할 때 민주주의와 정치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1979년 10대 국회에서 첫 금배지를 단 6선 의원으로, 13대 여소야대 시절 평민당 원내총무와 17대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여야 충돌을 누구보다 많이 겪은 김 전 의장이 던지는 충고라 가슴에 와 닿았다.
   30년 정치 중 20년을 야당 정치인으로 보낸 김 전 의장이 야당이 '무기력하게' 다수결 원칙에 따를 때 받을 역풍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국민을 믿고 해보라"고 고언한 것이다. 실제로 무턱대고 다수결로 밀어붙이다 민심 이반으로 몰락한 정치세력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1996년 12월 26일 새벽 신한국당 의원들은 몰래 본회의장에 입장해 노동법 등을 처리했다. 이때 돌아선 민심은 다음해 대선에서 정권을 교체했다. 2005년 8월 8일 일본 참의원은 당시 고이즈미 총리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우정 민영화 개혁법안을 부결시켰다. 즉각 의회를 해산해 치른 총선에서 우정 법안에 반대한 의원들은 추풍낙엽처럼 낙선했다.
   미디어법이 야당 주장대로 문제가 많은 악법이라면, 그래서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대폭 후퇴시키는 법안이라면, 국민은 다음 총선에서 아니 그전에 내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을 심판할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도 우리 국민이 그 정도 정치의식도 없는 국민이라고 보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여야 의원들은 요즘 각각 민생투어, 장외투쟁하느라 바쁘겠지만 잠시 시간을 내 노정객의 마지막 호소를 다시 한번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 2008년 5월 9일 국회 본회의 '의원신상발언' 형식으로 한 고별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