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이슈

[시론] 정말 들(野)로 나간 야당

도깨비-1 2009. 8. 8. 07:21


[시론] 정말 들(野)로 나간 야당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교수 (09년 8월 5일) 조선일보

 

   말이 씨가 되나 보다. 여당과 야당이라는 당위적으로 부적절한 말이 정치현실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여당과 야당은 철저히 대통령의 관점에서 나온 말이다. 대통령이 속한 정당은 더불어 같은 무리라는 뜻의 여(與)를, 대통령에 반대하는 정당은 들판 혹은 바깥이라는 뜻의 야(野)를 당 앞에 붙인 것이다. 이런 대통령 중심적 표현은 권력분립형 민주주의 이상에 어긋나지만, 정치현실을 보면, 정말 한나라당은 대통령 편만 더불어(與) 좇고 있고 민주당과 민노당은 주로 들(野), 즉 장외에만 나가 있다.
   현 시점에 특히 논란을 낳는 것은 민주당의 장외투쟁이다. 민주당은 미디어법 개정안의 강행처리에 반발해 법안통과 자체의 원천무효를 외치며 가두홍보에 나섰고 국민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국민의 휴대전화 인터넷에 접속해 미디어법의 찬반투표를 하는 '모바일 국민투표'까지 계획하고 있다. 또한 국회 본회의 투표과정의 적법성 여부를 사법적으로 가려달라고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한나라당과 대화로써 사안을 해결하려는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하긴 정치권 내의 대화가 있을 것이라면 애당초 미디어법 개정을 둘러싼 정당 간 교착·공전·강행·파국이 생기지도 않았겠지만.
   원내 제2당인 민주당의 장외투쟁은 정당과 이익단체의 차이는 무엇인지 되짚어보게 한다. 정당은 제도정치권에서 활동하며 국민의 각종 요구를 국가정책에 반영시키는 존재이다. 즉, 정당은 시민사회 영역과 국가 영역에 한발씩 딛고 있는 교량이라 할 수 있다. 시민사회 영역에만 머무는 이익단체와 달리 정당은 싫든 좋든 제도정치권에 위치해 쉽든 어렵든 수많은 사회이익의 집성·조정·통합을 위해 힘써야 한다. 제도권에서의 노력을 포기한 채 장외로 나가 행인에 호소하고 소송을 남용한다면 정당은 이익단체와 비슷해질 수밖에 없다.
   "누군 원해서 장외로 나갔겠는가, 한나라당이 수(數)로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다"라고 장외투쟁 의원들은 하소연할 것이다. 물론 다수주의와 합의주의 사이의 균형이 모범정답이다. 그러나 소수당이 자기이익만 끝까지 내세우고 관철되지 않을 경우 아예 회의장 밖으로 나가면 대의민주주의가 유지될 수 있겠는가. 소수당으로서는 여러 면에서 양보를 얻어낸다면 대세에서는 다수당에 이끌리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과거 한나라당이 소수당이었던 당시 장외로 나가곤 할 때 대의체제를 부정한다고 비판받았듯이, 어떤 소수당도 자기 생각만 옳다고 우기며 판을 뒤엎어서는 안 된다.
   장외투쟁이 장기화하면 한국정치는 더욱 암담해질 것이다. 장외에서의 발언과 행동은 일방적·극단적·호전적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원내 회의보다 장외투쟁은 일방적 자기주장과 남에 대한 폄하를 감정적이고 과장된 투로 포장해 지지층을 흥분시키는 전략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정치인 간, 사회세력 간 적대심과 갈등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장외투쟁이 초기엔 일부 지지층 사이에서 상대 정당에 대한 반감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낼지 몰라도, 상대측 지지층도 결속시켜 쌍방적 호전성, 양극적 대립이 악순환하는 가운데 결국 정치권 전체에 대한 국민 불신감을 최악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정치권이 공멸할 때 국가 거버넌스는 어떻게 될까.
   들로 나간 정당이 빨리 원내로 돌아와야 한다. 이익표출과 여론형성은 이익단체와 시민에게 맡기고, 공당(公黨)으로서 원내 입법과정을 존중하며 온갖 사회이익의 조정 역할에 몰두해야 한다. 미디어법에 대한 고집 때문에 언제까지 장외에 머물려는가. 차제에 여당, 야당 등 잘못된 정치현실을 낳는 잘못된 표현 대신 다수당, 소수당 같은 표현을 쓰자는 캠페인도 고려해봄 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