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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론 깨끗한 척, 뒤론 호박씨 깐 '노씨 패밀리'"

도깨비-1 2009. 4. 16. 22:35

[중앙시평] 지킬 & 하이드 [중앙일보] 오피니언

 겉으론 깨끗한 척, 뒤론 호박씨 깐 '노씨 패밀리'"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 하이드’가 뮤지컬로 만들어져 인기를 끌더니 요즘엔 아예 극장을 뛰쳐나와 한국 사회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오랜 자선사업과 엄격한 도덕적 생활로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의사 지킬 박사. 그는 자신이 개발한 약을 복용하면 전혀 다른 인물 하이드로 변신한다. 쾌락에 팀닉하고 무자비한 살인 행각을 벌이면서도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사회적 명망가에서 폭력 살인범으로 변신을 거듭하며 전개되는 사건들. ‘지킬 & 하이드’는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선과 악, 도덕률과 폭력성 등 이중성을 극명하게 표현한 걸작으로 19세기 영국 상류사회의 위선을 통렬하게 꼬집고 있다. ‘노씨네 패밀리’들로 주인공이 바뀐 한국판 버전도 선악을 넘나드는 인간의 이중성과 위선이 주요 줄거리다.

일부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둘러싼 비리 액수가 앞선 정부들의 그것과 견줄 때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을 내세워 두둔한다. “그래도 깨끗한 대통령”이란다. 솔직히 비리 액수가 수십억대 정도라면, 노 전 대통령의 깊은 반성과 진정 어린 사과의 선에서 대충 덮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고 수긍했다. 그러나 청와대 경내에서 달러 뭉치가 건네졌는데도 ‘집사람’을 핑계로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고, 증거를 대라는 식으로 교묘하게 빠져나가려는 행태는 작은 동정심마저 달아나게 만든다. 특히 청렴과 도덕성을 내세우던 청와대 시절을 떠올리면 배신감이 더욱 커진다. 혼자만 깨끗한 척하던 모습이야말로 ‘지킬 & 하이드’의 이중인격을 극적으로 부각시키는 핵심 요소다.

자기만 깨끗한 척, 자기만 옳은 척하던 그 팀들이 집권하던 시절 도덕 교과서 같은 법률이 많이 만들어졌다. 인권과 평등을 존중하고 청정사회를 만들자는 데 감히 반대론을 펴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현실 여건을 무시한 채 이상론만 쫓아 만들어진 법들은 그 뒤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아 실효성 논란을 빚고 있다. 정치자금법이 그중 하나다. 2004년 3월 ‘깨끗한 정치’를 구현하겠다며 개정한 게 현행 법이다. 투명성을 높이고 돈 들어오는 목줄을 꽉 조여 놓았다.

하지만 지금 그 법을 만든 국회의원들부터 아우성이다. 아무리 용을 써도 대차대조표를 맞출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돈 모으기도 힘들지만 들어가는 정치비용에 비해 현재의 상한선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결국 장부에 기재하지 않는 돈이 등장하게 된다. 기업은 후원금을 낼 수 없도록 했지만 그렇다고 손 벌리는 나리들에게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생긴 편법이 여러 명의 회사 임직원 명의로 쪼개서 돈을 건넨다.

같은 해 등장한 성매매 방지법도 마찬가지다. 그게 어디 법으로 막아질 수 있는 행위인가. 그에 따른 사회적 폐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유사 이래 많은 폐단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번성해온 건 역설적으로 현실적 필요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덕군자들은 그러한 현실을 아예 외면해버린다.

집창촌을 몰아내고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는 등 철퇴를 휘둘렀지만 지금 결과가 어떤가. 줄어들기는커녕 특정 지역에서 전 지역으로 널리 퍼지고 다양한 유형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엔 점조직으로 은밀하게 연결해가며 아파트나 오피스텔에까지 침투했다는 소문도 있다. 청와대 행정관의 성매매 사건이 적발된 뒤 경찰의 집중 단속이 벌어져 지난 한 주 동안 전국에서 1500명이 걸렸다. 5월 말까지 단속한다는데 그럼 근절될까. 천만의 말씀이다. 업자들은 잠시 숨거나 간판을 바꾸는 등 새 길을 만들어 낼 게 틀림없다.

법이 겉돌면서 부작용이 크고 편법·탈법만 춤춘다. 인간 내면에 잠재된 본능적 욕구와 충동, 사회 저변의 복잡다단한 현실적 구도 등 하이드적 요소를 도외시한 결과다. 이런 법들은 그 자체가 위선이요, 그런 허위의 법률들이 모여 사회 전체를 거대한 ‘지킬 & 하이드’의 이중 사회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국판 ‘지킬 & 하이드’에서 드러난 노씨 패밀리의 잘못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겉으론 깨끗한 척하면서 뒤론 호박씨를 깐 위선적 행태 그 자체요, 다른 하나는 감당하지도 못할 청정·평등·인권의 구호를 남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를 위선의 늪에 빠트렸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