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슈

[시론] 정신의학적으로 본 그의 죽음

도깨비-1 2009. 6. 4. 12:59


[시론] 정신의학적으로 본 그의 죽음


 신승철(정신과전문의/시인) 2009년 6월 3일 조선일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후, 국민 대부분은 그의 비극적 죽음 앞에 숙연한 마음으로 심심한 애도의 시간을 갖고 있다. 하나 요즘 사회적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일각에선 장례 과정에서 정권퇴진 시위를 꾀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여야가 정치적 공방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의 죽음이 정치적 타살이라는 말도 자주 나온다. 그의 자살이 개인적 의미 외에, 그 이상의 뜻이 함축돼 있다는 주장에서다. 현 정권의 '의도된 협박' 때문이란다.
   과연 그런 말에 타당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제대로 된 속사정이야 돌아가신 분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제일 잘 알 터이지만, 알 길이 없다. 자살 일반의 동인(動因)으로 추측되는 바가 없진 않을 것이다. 그 죽음의 즉각적인 원인으로서는 그의 '깨끗한, 청렴 이미지의 정치인'에 대한 타격이었을 것이다. 그처럼 자존심이 강했던 분이, 아무런 증거나 정황도 없는데, 소문이나 협박만으로 자살이란 극단적 선택을 했을 리가 없을 거란 추측이다. 기득권에 비판적이며, 쉽사리 타협을 모르고, 늘 '청년의 열정'을 불태웠던, 어찌 보면 순수했고, 반면에 독선적이었던 면도 적지 않았던 그였다.
   한데 그런 열정의, 공격적 특성이 거꾸로 자신 쪽으로 날을 세우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커다란 허탈감과 함께 우울감이 찾아온다. 그의 마음의 상처가 그랬으리라 보는 것이다. 수치심과 실망은 여느 사람들보다 훨씬 더 큰 독(毒)으로 작용했으리라. 그런 성향의 인물은 곧잘 자신을 책망하며, 주위 모든 일을 자기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일반적인 심리 분석이다. 물론 그의 자살에는 다른 복합적 요인도 깔려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현 정권의 정치적 협박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는가의 문제다.
   그의 측근이나 정치로 관련된 인물들은 그가 곤경에 처했을 무렵, 과연 그 '억울한 사정'을 제대로 변호하거나 지지해 주었는지 의심이 간다. 사람의 배신감은 평소 가깝게 지냈던 사람에게서 당했을 때, 그 충격의 도가 심하다. 기왕의 적대 관계에 있었던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는 훨씬 덜하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시 인기가 떨어지고, 퇴임 후 스트레스를 겪을 때, 그리고 자살에 이르기 전에 과연 어떤 상념들이 오갔을까. 그의 유서를 보면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의 이면에는, 그간 원망했던 여러 상념이 있었다는 소리로도 들려온다. 그 가운데는 타자(他者)에 대한 배신감, '협박'에 대한 분노의 감정도 있었을 터다. 그리고 그 부정적 감정의 동인에는,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실망의 감정도 상당히 있었으리라 본다. 원망치 말라는 말은 사실 자신에 대한 용서의 마음도 배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살아 있는 여러 사람에 대해서도 원망치 않겠다는 뜻도 있었으리라. 그는 관련된 사건의 모든 책임이나 '죄'를 혼자서 다 품고 떠나겠다는 비장한 각오도 있었던 것 같다.
   단순히 노 전 대통령 죽음의 의미를 헤아려보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나는 그의 죽음이 적대세력에 의한 정치적 타살이라는 주장에는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자살은 어느 자살이든 엄밀히 말해 이타적 자살은 없다. 모든 자살에는 도피적 성격이 다분하다.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은 분명 국민적 비극이다. 하나 어떤 자살이든 그것에 숭고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미화가 돼선 곤란하다. 사회적으로 지나친 동정도 사실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사회적·정치적이란 수식어가 붙어, 자살이 합리화되는 것도 국민 정신건강을 위해서 좋지 않다. 분명 노 전 대통령도 그런 것을 원하지 않았을 거다. 유서에 담긴 고인의 뜻을 받들어 화해와 용서의 분위기에서 조용히 애도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좋을 듯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