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스크랩] 의성 탑리 오층석탑

도깨비-1 2008. 6. 15. 16:21


 

 

 

     국보 77호 

     의성탑리오층석탑

            (義城塔里 五層石塔)

     석탑

높   이   9.56m, 폭 4.5m

      1기
지정일   1962.12.20 

소재지   경북 의성군 금성면 탑리리 1383-1

      통일신라시대

소유자   국유

관리자   의성군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탑리동에 위치하고 있는 탑리 오층석탑은 현존하는 신라 석탑 가운데 분황사 ‘모전석탑‘에 이어 두 번째로 건립된 석탑이다. 통일 초기의 석탑에 있어서도 신라적인 요소와 백제적인 요소가 결합된 새로운 스타일이 등장했다. 이러한 과도기적 절충 양식을 보여 주는 석탑으로는 단연 의성 탑리 5층 석찹이다.

탑리 마을에 세워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5층 석탑이다. 낮은 1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올린 전탑(塼塔)양식과 목조건축의 수법을 동시에 보여주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제1층 탑신에 목조건물의 수법을 따라 배흘림(엔타시스)이 있는 네모기둥을 세우고 남면에 감실을 두었으며 기둥위에는 주두의 형태를 본떠서 조각하였다.

기단은 여러 개의 돌로 바닥을 깐 뒤, 목조건축을 본떠 가운데기둥과 모서리기둥 모두를 각각 다른 돌로 구성하였다. 탑신은 1층이 높으며 2층부터는 높이가 급격히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는데, 1층 몸돌에는 불상을 모시는 방인 감실(龕室)을 설치하였다. 지붕돌은 전탑에서 보이는 모습처럼 밑면 뿐만 아니라 윗면까지도 층을 이루고 있는데 윗면이 6단, 아랫면이 5단이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있어 목조건축의 지붕 끝을 떠올리게 한다.

 

석탑을 이리저리 자세히 살펴보면 1층 탑신 북쪽 면석에 글자들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일본 연호인 대정(大正) 15년6월, 곧 서기1926년6월에 유촌정치(有村正治)라는 일본인과 신기섭(申基燮)이라는 한국인등 8명이 `석탑보존회`를 만들어 이 석탑을 고쳐 세웠음을 기념하여 새긴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이러한 탑들이 `문화재`라는 인식을 얻어 수리되었던 한 예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시기에 탑이나 집들이 원형과는 다르게 고쳐진 경우도 많아서 그때 어떤 변형은 없었는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또 고쳐지었더라도 탑에 이러한 글귀를 새겨 넣었다는 것은 문화재의 원형을 훼손하는 일이다.


각 부분에서 목조건축의 양식을 응용하는 한편, 곳곳에서 전탑의 조성기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러한 독특한 특징으로 인해 분황사석탑(국보 제30호)과 함께 통일신라 전기의 석탑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출처 : 흔적(痕迹)
글쓴이 : 보통사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