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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임의 음악여행(3) 자작나무, 그 하얀 속삭임

도깨비-1 2007. 10. 31. 14:24
우상임의 음악여행(3) 자작나무, 그 하얀 속삭임
2007년 10월 31일 (수) 10:21:53 우상임 cafe.daum.net/ACCMPANISTWOO
   
  러시아 로망스-자작나무  

얼마 전 모스크바에서 걸려온 한 통의 국제전화.
첫 눈이 내렸다고. 온통 하얀 세상이라고.

첫 눈...지구 저 편에서 첫 눈이 내렸다는데 괜히 내 마음이 설렌다.

아직은 10월의 끝에 서 있는 내게, 하얀 기운이 온 몸을 훑고 지나간다.
하얀 눈... 하얀 세상... 그리고 하얀 자작나무...

점점 쌀쌀해지는 날씨에 옷깃이 여며진다. 추위가 다가오면 더욱 돋보이는 나무가 자작나무다.
매서운 추위를 견디기 위함인지 수천 수만 그루가 서로 얼싸안고 숲을 이룬다.
러시아에서는 가을이면 황금색으로 물든 잎으로 황색 바다를 이루고, 눈처럼 하얀 껍질로 감싸인 자작나무가 하늘을 향해 죽죽 뻗어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사랑하는 이에게 자작나무 껍질에 편지를 써 보내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얘기가 있다. 그 얘기를 듣고 난 후부터 산책길에서 만나는 자작나무의 하얀 표피가, 낙엽 되어 밟히는 바스락거림이, 내게는 한 겹 한 겹 하얗게 쏟아내는 속삭임으로 들렸던 기억이 있다.
 
러시아의 시나 소설 등의 문학작품과 노래에서 자작나무를 자주 만나게 된다. 광활한 대지와 가도 가도 끝없는 자작나무숲길을... 오늘은 '자작나무'라는 러시아 로망스로 대신해본다. 

자작나무는 알고 있을까?
왜 우리는 모든 것을 떠나보내야 하는 건지
바람에 몸을 기댄 채
우수수 나뭇잎을 떠나보내듯
때가 되면
서글프지만 왜 우리는 뒤척이며 헤어져야 하는 건지

자작나무는 알고 있을까?
그것들이 비록 슬픈 몸짓으로 떠나지만,
때가 되면
다시는 누구도 만나지 않을 것처럼
그것들은 떠나지만
왜 우리는 많은 밤을 지나 다시 만나야 하는지,
우리를 증거 하는 것이 비록 고통뿐이어도
왜 우리는 사랑해야 하는지

그래서 슬픔과 기쁨은
불륜처럼 함께하는 것이지만
외로웠으므로 그래서
내 가슴은 다시 뜨거워지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사랑하는 그대여.
돌아보면 언제나 나는 돌아오고 있을 테니
헤어진 것과 헤어지는 것들 틈에서
그토록 바스락거리는 자작나무처럼
비로소 귀 열고
목 뻗어, 오늘도 나를 기다려주오.

문득, 멋들어지게 시를 낭송할 줄 알았던 한 러시아 친구가 생각난다.

올 겨울에는 하얀 눈이 내리는 추운 겨울날, 꼿꼿한 자태로 서 있는 하얀 자작나무 한 그루와 꼭 마주하고 싶다.


   
   
▲ 우상임씨는 제주대학교음악학과와 경희대학교 음악대학원을 졸업했다.  러시아 성페테르부르크음악원 마스터클래스를 연수하고 러시아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음악원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제주 MBC FM 모닝쇼 '우상임의 모닝 클래식'을 진행하고 있다. 한라대학교 음악과 출강하고 있으며 문화공간 자작나무숲지기.
출처: 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425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