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큰애기/ 연밥 줄밥 내 따줄게/ 요 내 품에 잠들어라/ 잠들기는 늦잖아도/ 연밥 따기 한철일세.” 경북 상주지방에 구전돼 오는 채련요(採蓮謠)엔 연밥(蓮實·연 열매) 따는 처자와, 사랑을 호소하는 사내의 수작이 흥겹다. 천하절색 서시(西施)가 연밥 따는 자태를 노래한 이백(李白)의 ‘채련곡’도 이 노동요(勞動謠)에 넘치는 삶의 생명력은 따를 수 없다.
▶공갈못은 상주 공검지의 고유 이름이다. 학교에서 삼한시대 벼농사의 흔적으로 외우던 대형 저수지 중 하나다. ‘공갈’이라는 아이를 제물로 묻고 둑을 쌓았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 한다. 고려 때 사방 10리에 이르던 공갈못은 예부터 상주에 풍성한 오곡과 순후(淳厚)한 인심을 상징한다. 3000평 남짓하게 축소 복원된 공갈못엔 지금도 한여름이면 연꽃이 가득 피어 옛 영화(榮華)와 풍요를 전한다.
▶경상도라는 명칭을 경주와 상주의 머리글자에서 따왔듯 상주는 큰 고을이었다. 낙동강도 마찬가지다. 상주는 삼한시대에 사벌국(沙伐國) 도읍 낙양(洛陽·훗날의 上洛·상락)이었다. ‘낙동강’은 상락의 동쪽(洛東·낙동)에 와서야 강다운 강으로 흐른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유학자와 명가, 의병장의 고장 상주엔 기품 있는 고택(古宅)과 누각들도 많아 고장의 꼿꼿한 선비 기질을 누구든 쉽게 느낀다. 경부 철도와 고속도로가 비껴가면서 근대화와 산업화에서 처졌지만 그 덕에 옛 전통은 오롯이 남아 있다.
▶‘MBC 가요콘서트 참사’가 터진 상주에서 유족들이 아무런 승강이 없이 희생자 장례식을 제때 치렀다고 한다. 장례일에 모든 유흥업소가 문을 닫았고 합동분향소엔 시민 3만명이 다녀갔다. 상주지청장은 “상주시와 MBC가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것과 대조적으로 시민들 모습은 매우 감동적이다. 시신을 볼모로 보상금을 더 타내려는 다른 사고현장 모습과 다르다”고 대검에 보고했다. 그는 “상주를 양반의 고장이라 일컫는 이유를 알았다”고 감탄했다.
▶상주엔 400년 전 13개 문중이 계를 모아 세운 존애원(存愛院)이 있다. 이 사설 의료기관은 임진왜란 뒤 신음하던 백성의 병을 고쳐주고 음식을 나눠줬다. 시민들이 모으는 ‘가요콘서트 참사’ 성금이 목표액 3억원을 사흘 만에 넘기고 7억원에 이른다는 소식에서 살아있는 존애원의 정신을 본다. “연못과 구름이 있는 고향 상주에서 도시인들의 채워지지 않는 본능을 채워줄 정서를 키웠다.” 작가 성석제가 상주를 “글쓰기의 원 천”이라고 내세울 만하다.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tjoh@chosun.com ) 입력 : 2005.10.18 19:05 28' / 수정 : 2005.10.18 21:19 23'
** 상주 참사는 지난 2005년 10월3일 경북 상주에서 열릴 계획이었으나 사고로 무산된 MBC '가요 콘서트' 당시 녹화장에 입장하려던 주민들이 밀려 넘어지면서 11명의 사망자와 145명의 부상자를 낸 사고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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