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고님이 아고라서 퍼온 <이순신장군과 배용준>을 읽고 아고라 토론방베스트에서 퍼온 챔피온님의 글입니다.
^^;뿌듯!
나머지 2편의 글도 좀전에 퍼왔으니 보세효~ 으쓱~으쓱~
<일본인이 이순신을 묻는다면(1)>
몇달 전 일본 동경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온 사람입니다.
일본에서는 4년 정도 있었구요.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에서 식당, 유흥업소 서빙 등등
안해본 게 없습니다.
한번은 일식당에서 서빙을 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전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난생 처음으로
민망하고 부끄럽고 죄스럽기까지했던 경험을 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겪었던 그때의 경험을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흔히 일본인들을 가리켜 족보도 전통도 없는 민족이라
말합니다. 일본이 오늘날 경제대국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를
그저 남의 것을 잘 베끼는 능력 때문으로 폄하해 버리기도 합니다.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전통이
훌륭하든 보잘 것이 없든 그것을 받들고 존중하고
계승해 나가려고 하는 자세만큼은 세계 제일의 수준이라고
봅니다.
일본의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거리들을
지나다 보면
조상으로부터 3대, 5대, 심지어는 10대에 이르기까지
가업으로 이어지고 있는 가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알바를 했던 일식당 사장님(주방장) 역시 3대째 식당을
경영해오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원래는 사장의 형님이 가업을
물려받아 식당을 경영했는데 12년 전 형님이 사고로
돌아가시게 되어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가업을 잇게 되었답니다.
우리는 식당을 명퇴를 당했거나 할 것이 없을 경우
"만만한 게 음식장사"라는 생각에서 식당을 하거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죠.
저도 일본에 가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장은 명문 게이오대 출신으로 글로벌 기업 소니사의
일원으로서 남부러울 게 없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사람이었습니다.
외모는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일본인의 모습(작고 왜소하며
안경을 쓰고 뻐드럭니로 인해 입이 튀어나온... 절대 그 분과
일본인을
비하하려고 하는 것이 아님)이었죠.
저도 사장의 이력을 처음부터 알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제부터 말씀드리고자 하는
하나의 사건을 통해서 알게 됐죠.
열달 좀 안됐네요.
식당 문을 닫을 무렵이었는데 사장이 불쑥 역사에 관심이 있느냐고
묻더군요. 그것도 임진왜란에 대해서요.
그렇다고 했죠. 역사를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전 관심 정도가
아니라 많이 안다고
자부했던 쪽이었습니다. 특히 전쟁사, 영웅전기 같은
책들을 많이 봤었고, 그래서 사장의 물음에 대해
속으로는 "일본의 역사도 아마
당신보다 내가 더 많이 알 걸"이라고
생각했었고요.
내가 역사에 관심이 있다고 하자 사장이 다짜고짜 "이순신에 대해서
잘 아느냐"고 하더군요. 안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우쭐해지는 게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더군요.
저는 사장이 어디서 이순신 이야기를 듣고 자세히 알고 싶어서
그러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얼마든지 대답해 줄 용의가 있었죠.
밤이 새도록 말이죠. 그래서 그의 다음 질문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의 질문은 뜻밖의 것이었습니다.
"이순신이
구사한 해전술의 핵심이 무엇이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거북선은 실제로 어떻게 생겼느냐, 복원은 언제 되느냐"고
하더군요.
질문을 받고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핵심 해전술?"
"거북선의 복원?"
뭐 하나 제대로
답해 줄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위의 두 가지 질문 외에도 바로 이어서 몇 가지가 더 있었던
것 같았는데 너무 당황했던 나머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자, 여러분이 제 입장이었다고 합시다.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답변을 할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또 그 답변이
정답이고 오답이고를 떠나서 아마 대부분의 분들은
저처럼 당황해 하셨을 겁니다.
왜냐하면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해전술에 대해서야 누구라도 학익진이 어쩌고 저쩌고
이야기합니다만, 그
전술의 원리, 그리고
그 전술이 해전장별로 어떻게 응용되어졌는지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설명하실 수 있는 분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거북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솔직히 저는 거북선이 2층인지 3층인지,
머리가 유황을 뿜는 굴뚝용인지
대포를 쏘는
포탑용인지
선수 하단부체 충돌용 돌기가 있는지 없는지
몰랐습니다.
저는 그날의 기억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순신에 대해서라면 이를 갈며 증오심과 적개심을 드러내리라고
생각했던 일본인을 통해서 제가 모르고 있었던 사실들을
알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사장은 나에게서 자신이 원했던 것을 얻기 힘들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이 알고 있는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해 주더군요.
"이순신은 중세기 세계 최강의 군력을 보유하고 있던 일본군을
꺽었다. 만약 이순신이 없었다면 일본은 그 군력으로
중국은 물론 아랍까지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순신의 정신과
해전술은 우리 근세 일본해군의 동력이 되었다.
생각해 보라. 임진왜란은 조선과 중국 대 일본의 싸움이 아니었다.
이순신과 일본의
전쟁이었다. 일본의 지식인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고 말이죠.
사장은 어렸을 적부터 일본 전국시대를 풍미한 영웅전기들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고 하더군요(사실 일본사람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특히 전국시대 3대영웅이라고 일컬어지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는 일본인들이라면 누구나 존경하는 인물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의 우익과 성인남자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입니다. 일본이 개국한 이후, 처음으로
섬을 벗어나 대륙으로 눈을
돌린 인물이기 때문이랍니다.
아울러 평민출신으로 최고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점도 일본인들에게 영향을 줬겠죠.
사장은 대학시절 이순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바다의 맹장들이 왜 하나같이 맥을 추지 못하고
연거푸
패해야 했는지, 천하의 용장들이 총출동한 전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일본군은 조선에서 철수해야 했는지....
일본
자위대는 물론 정계의 정점으로 추앙받고 있는 도고 헤이하치로는
무엇 때문에 이순신을 칭송했는지.... 말이죠.
관련 서적,
논문 같은 것도 많이 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많다고 하더군요.
일본인의 시각으로는 아무래도 연구에
한계가 있지 않겠냐면서 말이죠.
그러면서 "한국인은 세계적인 영웅을 배출한 민족이면서도
그 가치를 제대로 구현해 내지 못하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만약 이순신 같은 인물이 일본에서 배출되었다면
징키즈칸
못지않은 세계적인 인물로 부각되었을 거라면서....
그날 숙소에 돌아온 저는 마치 무엇에 홀린 것
마냥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뜬눈으로 아침을 맞았죠.
그리고는 서울 형님에게 전화를 걸어 이순신 장군에 관한
책을 좀 사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형님이 보내주신 몇권의 책이 왔습니다.
소설류에서부터 해전에 대해 기술해 놓은
전문 서적류까지...
모두 읽었습니다.
그런데 공허해 지더군요.
너무 막연했고 황당했으며 거기서 거기였습니다. 또 이미
알고 있던
얘기들이었구요.
그리고 한달 전,
금년 5월에 나온 <이순신과 임진왜란>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울면서 봤습니다.
새로운 사실들, 그리고 지금껏 그 어디에서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얘기들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됐습니다.
책의 머릿글을 보니 작가들은 이 책을 쓰기 위해 무려 20년이 넘게
집필에 전념해 왔다고 하더군요. 어떤 분은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 두면서 말입니다.
또 서문에는 사카모토 사장이 제게 물었던 이순신의 해전술의 원리와
거북선의
실체를 밝혀주는 글이 들어 있었습니다. 전율을 느끼며
책장을 넘기고 넘겼죠. 거짓말 않고 꼬박 밤을 세워 1권의 반을
읽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까지 나는 이순신과 임진왜란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구나'
하는 생각 말입니다.
도대체 제도권 교육에서 우리가 배웠던 것은 무었이었을까요.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말로는 5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문화민족이라고 하면서
우리의 교육이 문화민족의 일원들에게 무엇을 가르쳤던
것일까요.
대한민국의 해군과 군사학회는 그동안 무엇을 했던 것일까요.
제가 지금까지 배웠던 교육이
12000원 짜리
단행본 1권보다도 충실하지 못했다면
이것은 큰 문제입니다.
<이순신과 임진왜란> 1권 서문의 한 대목을
인용합니다.
이것이 많은 분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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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에 지각변동을 가져온 충무공의 해전원리
20세기 일본 해군은 직충(直衝,ramming) 등을 오역하지 않았기에
충무공의
'거북선+학익진의 해전원리'를 제대로 해독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일본은 20세기 초 세계사의 지각변동을 가져온
청일해전과
러일해전에서 승리했고, 한반도는 일본에 합방되었으며,
청나라와 러시아는 차례로 문을 닫는다.
그 후 일본 해군의
학익진(丁자진) 해전원리를 승계한 영국 해군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해군을 분쇄했고, 2차 세계대전에서는
미국 해군이
레이테만(스리가오)에서 학익진(T자진)으로
일본의 태평양 함대를 궤멸시켰다.
미국 해군의 학익진 원리에서 맥아더의 (도쿄를 향한)
개구리 뜀뛰기 상륙작전과 란체스타 공군전술이 개발되었다.
그런데 기존의 서적에서는 세계 해군들의 학익진 연구사가
빠져
있기에 지금까지 우리의 이순신 연구는
우물안 수준에 머물러 있음이다.
<일본인이 이순신을 묻는다면(2)>
얼마 전, 「일본인이 이순신에 대해 묻는다면?」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사람입니다.
두서없이 정리되지 않은 저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신 여러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며칠 전 댓글을 통해 말씀드린 대로
제가 왜, 무슨 이유로 보잘 것 없는
경험담을 늘어놓으며
<이순신과 임진왜란>이라는 책을 소개하게 되었는지 말씀드리려 합니다.
제가 일본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왔을 때 TV에서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드라마를 하고 있더군요. 관심을 가지고 시청했죠.
종영이 임박한
상태라 마지막 몇 회 분만 볼 수 있었습니다.
넋이 빠져나갈 정도로 훌륭한 드라마였습니다. 특히 이순신 장군 역을
맡아 열연하신
김명민님의 연기는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런데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께서 전사하시는
장면(마치 의도된 죽음임을 암시하는
듯한)은 짧았지만 그동안
이 드라마를 애청하며 허전한 가슴을 달래던 저에게 적지 않은 실망감을
주었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의문은
‘장군께서 갑옷을 벗으시고 함교 아래로 내려오셔서까지 위험을 자초하실
이유가
있으셨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드라마라 하더라도
매우 지나친 설정이었다는 게 노량해전 편을 본 저의 소견입니다.
창작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고, 적극 권장되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상식과 이치에 맞지 않는 창작은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제일의 해군제독,
필승의 해군 제독의 명성과는 결코 어울리지 설정이었습니다.
때문에
적어도 불멸의 이순신 노량해전 편에서 만큼은
이순신 장군은 없었다고 봅니다.
이순신 장군님의 전사 장면은
상식(장군의 인품)과 이치(병법의 이치)를
고려하지 않은 실수에서 빚어진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장군님에게 노량해전은
이기기 위해 혼신을 바쳐 출전하신
전투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드라마에서의 설정이
창작이 아닌 400년 전, 노량해전장에서 있었던
실제의 사실이었다면
임진왜란의 역사는 전혀 달라졌을 거라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최고 지휘관의 죽음은 전투의 승패를 좌우합니다.
병법의
이치대로라면 전사하셨어도 전사하지 않으셨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순신 장군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명장이십니다.
그런 분이 병법의
이치에 역행하는 일을 하셨을 리가 만무합니다.
이기기 위해 출전하셨다는 것이죠.
자칫 이야기가 논점에서 벗어날 소지가 있을
것 같아
혹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이 이야기는 그때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심난한 기분에 불멸의 이순신 게시판에 올려진 다른
분들의
글을 보다가 저는 아주 감명 깊은 글 하나를 보게 되었죠.
김세명이란 분이 올린 글인데요, 이 글이 바로 저로 하여금
이곳 토론방에 글을 올리게 만들었고
저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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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자
: 2005/08/30 22:28 작성자 : 김세명 ()
제목 : 한국인의 필독도서..이순신과임진왜란
20년을
넘게 충무공에 관해서 연구한 성광수님을 위시한 회원들이 낸 총4권인데
현재 2권까지 발간이 되있읍니다.. 성광수님은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시고
이순신역사연구회를 이끄시고 계시더군요...책 내용의 깊이는 정말 최고입니다..
여태껏 나왔던 허접한 김탁환의 불멸하고는
비교가 안되게 충무공과 임진왜란에
대해서 적었더군요...보니까 연구에 몰두한 나머지 연구회 사정이 무척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여러분도 구입하셔서 꼭보세요..이런 연구회가 재정난 때문에
사라진다면 그건 대한민국의 수치라고 생각합니다..
자녀에게
친구에게 선물해도 돈아깝지 않은 최고의 불멸책입니다..
-불멸의 이순신 시청자게시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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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보신 님들의 소감은 어떠신가요.
전 글을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울컥하더군요.
짧고 투박해 보이는 글이었지만 저는 김세명님이란
분의 글에서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강한 외침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바로 책을 구입해 밤새워 읽었습니다.
그렇게 읽으려고 읽은 것이
아니었죠. 보는 순간부터
책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책을 보면서 엄청난 책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알고 있던 상식의 틀은 부서졌고
그 자리에 자랑스럽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지식과 체험,
그리고 새로운 임진왜란 해전사가
꿈틀대기 시작했죠.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가 알고 싶었던 것,
사카모토(식당 사장)로부터 받은 의문부호들이
비로소 느낌표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난중일기를 통해서
징비록을 통해서
소설들을 통해서
전문서를 통해서조차 이해할 수 없었던
모든 의문들이
이 책을 통해서 거의 한꺼번에 해결되었죠.
어떻게 보면 이점이 이 책의 가장 훌륭한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속된 표현일지는 모르지만
'한 큐로 꿰뚫는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책입니다.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자기 자신이
독자가 아닌 장군이 이끄시는
조선 함대의 일원이 되어 남해안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니는듯한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때로는 해상 숙영지에서...
때로는 격랑의 바다 위에서 기동하며....
때로는 적을 맞아 싸우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 어떤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소설이나 책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현장감을 이 책은 너무도 실감나게 보여주었죠.
태산과 같은 감동이 파도를 타고 가슴으로 가슴으로 사정없이
부닥쳐옵니다. 쉬지 않고 계속해서... 진짜 파도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온 몸으로 전율을 느끼게 될 즈음 저는 불현듯
이런 자문을 하게 되었죠.
“왜 이런 책이 이제야 나왔을까?”
“지금까지 내가 배우고 알았던 것들은 뭐지?”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저는 머리말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죠.
작가분들이 회고하듯 써놓은 두 페이지 분량의 기록에서 말입니다.
몇 대목만 인용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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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내기까지
2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은
책을 만드는 과정이기도 했지만 필자들에게는 충무공을
닮아가기 위한 실천적 여정이자 깨달음의
장이기도 했다.
충무공을 연구하면서 크게 느낀 점이 있다면 우리의 모습
속에도 이순신과 같은 모습이 있다는 사실이다.
충무공의 말씀(언어, 글) 속에서 이러한 닮은 모습을
스스로 찾아내고 자율적으로 계발해 간다면 독자들 또한
값진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을 내는 필자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이순신과 임진왜란> 1권 머리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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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25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금년 5월에 나온 책이구요.
그러니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책이었죠.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알았던
지식들은 충무공의 말씀(언어, 글)이 아닌
대개가 작가나 학자분들의 시각에서 쓰여진 주관적인 기록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철저하게 이순신 장군의 기록(난중일기, 장계)을 바탕으로
스토리를 전개해 나갑니다. 작가의 상상과 추론이 아닌
어디까지나
장군의 시각에서 임진왜란의 역사를 탐방하듯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이 책에서 작가들은 역사 탐방을 위한
안내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죠.
제가 처음 올렸던 글에 달린 댓글들을 보니
어떤 분들은 제가 식당 사장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해서
부끄러워한 것으로 아시더군요.
왜 그것도 몰라서 답변을 못했느냐는 질타와
전문적인 분야이므로 모를 수도 있다는
동정,
중요한 것은 충무공의 정신이지 그같은 물리적 결과물은
중요하지 않다는 반박의 말씀까지.....
물론 모두
옳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제가 미처 설명 드리지
못했지만 그날 전 사장을 통해 엄청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도고의 일본 해군이 이순신 장군에게 배워간 것은
해전술(소프트웨어)이나 거북선(하드웨어)만이
아니라는 거였죠.
이순신 장군의 해전술과 거북선 속에는 장군님의 철학과 정신이
들어있다는 거예요. 따라서 도고의 일본 해군이
배워간 것은
‘소프트웨어+하드웨어+이순신의 철학/정신’이라는 겁니다.
1906년, 미국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이 도고를 방문했을 때
생도들이 도고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각하께서 가장 존경하는 분은
누구입니까?”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도고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은 16세기 조선왕국의
이순신 제독일세. 그 분의 무훈과 인품을
따를만한 제독은
아직 없네.”라고 했다는 일화는 다들 아실 겁니다.
도고의 이 말에 대해서 어떤 분들은 일본인
특유의 겸손, 겸양의
덕목이 발휘되었을 뿐이지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하셨는데요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도고가
이렇게 발언한 때는 을사보호조약(1905년)이 있은
다음해였다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을사보호조약은
아시다시피 일제가
“조선은 스스로를 방어할 힘이 없으므로
일본이 보호해준다”면서 강압적으로 맺은 조약입니다.
천하의 도고라 하더라도 그러한
미묘한 시점에서
그러한 발언을 하기란 쉽지 않았을 겁니다.
도고는 진심으로 이순신 장군의 ‘무훈과 인품’을 존경했고,
그것을 학습했을 거라는 것이죠.
전에 말씀 드렸듯이 도고는 현재 일본 자위대와 정계의 정점에
위치해 있는 군국
영웅입니다. 그러한 인물이 이순신 장군을
대놓고 칭송했구요.
사카모토 사장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순신의 정신은
오늘날 일본 속에 살아계시다”고 말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뼈져리게
부끄러웠고, 죄스러웠고, 민망했습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함대에 참패한 일본-
300년 후 일본 해군의 이순신
연구-
일본의 청일/러일해전에서의 승리-
일제에 의한 식민통치....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그저 역사의 아이러니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너무도 많은 것이 되새겨지지 않습니까?
이것은 우리의 정신력 자본, 우리의 지식자산이
남의 나라에 유출되면서 빚어진
통한의 역사인 것입니다.
학익진과 거북선은 그냥 지식으로 알아서
해결하는
차원의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 속에 충무공의 혼과 정신이 있다는 겁니다.
대한민국, 5천년 문화민족의 자긍심과 역량과 민족의 혼이
응집되어 완성된 정신력 자본의 총화라는
것입니다.
김세명님 또한 저와 같은 생각을 하셨을 겁니다.
그래서 글을 올리셨겠지요.
그 글은 저를 움직였습니다. 저의 글 또한
다른 분들에게 어떤 외침과 울림으로
작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제가
글을 올린 이유입니다.
이야기가 또 두서없이 전개되었네요.
제 글에 욕설이나 비방 모두모두 환영합니다.
공감은 아니더라고 그러한 교감만으로도
저는 큰 에너지를 얻으니까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첫번째
글에 대해 빚어진 오해와 의혹들에 대한 저의 이번 해명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네요. 시간이 없어서 짧게 말씀드리고 그래도
충분하지가 않다면 다음에 다시 글 올리겠습니다. 양해해 주세요.
먼저 책홍보인가?라는 의문에 대해서는 이번 글에서 나름대로
충분히 설명드렸다고 생각합니다.
두번째로 많은 논쟁의 빌미가 되었던 '챔피온이 존경한건 충무공이
아니라 일본인
사장인가?'라는 의혹에 대해서 말씀드린다면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립니다. 부족한 저의 표현력 때문에
생긴 오해였던 것
같습니다. 카아악툇엣님을 비롯한 많은 님들께
이 짧은 답변이 먹힐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진심이라는 것을
믿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세번째, '일본군이 당시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그러한 군세로 중국은 물론 아랍까지 쳐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이
챔피온의 소견인지 아니면 일본인 사장의 생각인가?'에 대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그럴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뿐 그렇다고 확신하지는
못합니다. 그렇게 생각한 것도 일본인 사장님의 얘기를 듣고
그럴수도 있었지 않았나 생각한
것이구요.
네번째, 이순신 장군님의 전사와 관련된 저의 소견 부분인데요...
이것은 지금 말씀드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군요. 며칠 안으로
못다한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관심 많이 가져주시길...
짧지만 일단 이 정도로 저의 답변을 마무리하죠. 잠깐 짬이 나서
인터넷을 보다가 로긴 하고 글을 남깁니다.
모두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일본인이 이순신을 묻는다면(3)>
“일본인이 이순신에 대해 묻는다면?” 세 번째 글입니다.
두 번째로 올린 글을 통해서 님들이 가지고 계신 오해를 풀어드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전의 댓글들을 자세히 보니
식당 사장에 대한 오해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것 같군요.
글 한번
잘못 올렸다가 욕먹어서는 안되는 분이 욕을 먹게 된것같아
해명 차원에서 다시 글을 올립니다.
적지 않은 분들께서 일본인
사장의 의도가 자신들의 침략근성을
무마하고 본질을 흐리려는 의도가 아니냐고 생각하셨던 것 같네요.
하지만 사카모토 사장은 님들이
생각하시는 그런 파렴치한 인간이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그는 진심으로 충무공을 존경했고
그 인품에 감화되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더구나 이순신 장군이 왜 세계인, 특히 동아시아 3국(한국, 일본, 중국)의
국민들로부터 존경받아야 할
인물인지에 대해서 나름대로
뚜렷한 견해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기도 했죠.
다른 나라 사람들은 몰라도 적어도 한국인,
일본인들만은
장군의 업적과 장군으로 인해 수습된 임진왜란이라는 역사를 통해
많이 배워야 한다고 말하더군요.
“이순신
장군이 아니셨다면 도쿠가와 바쿠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도쿠가와 바쿠후의 문치시대(평화의 270년)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임진왜란을 통해서 얻은 값진 교훈의
결과물이었다. 누가 감히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욕을
꺾을 수 있었겠는가?”
사카모토 사장이 한 말입니다. 100년 내전의 소용돌이에서 처참하게
망가져버린 일본인들의 삶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욕으로
인해
또다시 짓밟혔지만 히데요시의 꺾일 줄 몰랐던 야욕이
이순신 장군이 지킨 바다에서 수장되어 버렸다고 하더군요.
그
덕택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패권을 잡을 수 있었고,
일본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평화로왔던 문치시대가
열릴 수 있었다고 말이죠.
히데요시 사후(사장은 화병으로 죽었다고 보더군요. 최고의 지략가였고
수싸움에 있어서는 거의 한번도 져본 적이 없는 히데요시
입장에서도
불세출의 명장 이순신 장군의 수를 넘어서기는커녕 읽을 수조차
없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한 마음의 응어리가 화로
전이되었다는게
일본 역사학계의 시각이라네요. 한산도해전에서 사실상
끝장이 났다고 해요. 그런데 이순신의 수를 읽지 못한 조선의 조정과
반 이순신 세력들이 작당해 장군을 감옥에 가두는 패착을 두면서
꺼져가던 히데요시의 야욕이 살짝 되살아났다고...)
히데요시 파의 다이묘들에 맞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축으로 한
반 히데요시 파의 단판승부가 펼쳐졌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세키가하라 전투(1600년)입니다.
이 싸움에서 이에야스는 승리를 거두고 도쿠가와 막부를
세우게
되죠. 이순신 장군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세키가하라 전투 같은 건 있지도 않았을 거라는게
사카모토 사장의 견해입니다.
사장은 이에야스를 일본의 역사 인물 중 아주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하더군요(일본 성인 남자들의 대부분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존경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카모토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번 글에서
이것 때문에 오해가 빚어진거 같아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다소 놀라웠습니다. 흔히 이에야스를 말할 때
인내, 용이주도함, 냉정함... 일본에서는 뭐 이런 덕목과 처세들을
이야기
합니다. 또 그런 것과 관련된 서적들도 아주 많구요.
그런데 사장이 이에야스를 존경하는 이유는 정말 뜻밖이었죠.
“그(이에야스)는 단순한 사무라이가 아니라 역사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히데요시의 칼이 이순신에게 전혀 통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았고 거기서 큰 교훈을 얻었다. 그 결과 피의 시대가
종식될 수 있었다. 그러나 메이지 시대의 리더들은 그 역사를
진지하게 분석하기는 했지만 존중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결과 여러 나라에 씻지 못할 죄를 지었고 일본에게도 파국을 가져왔다.”
사장이 울분을 토하듯 제게 한 말입니다.
이제 사장에 대한 오해는 풀리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그날 사장으로부터 들었던 아주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해전술과 거북선에 대한 질문으로 제가 당황해했다는 얘기는
이미
말씀드렸는데요, 제가 아주아주 중요한 내용을 빠뜨린 게 있습니다.
저를 화들짝 놀라게 했던....
저는
거북선을 돌격선, 혹은 특수 임무를 수행한 다용도의 전술무기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사장은 거북선을 일컬어
인류 역사상
위험관리(방지) 시스템이 구현된
최고, 최상의 모델이라고 하더군요.
때문에 일찍이 일본과 서구의 군관계 연구소나
기업체들에서는
거북선을 리스크 매니즈먼트(Risk Management)의 표상으로 보고
많은 연구들을 해왔다고 합니다(첫번째 올린
댓글들 중에도 어떤 분께서
비슷한 말씀을 써놓으셨더군요. 그런데 그 댓글을 쓰신 분의 말씀처럼
거북선은 단지 보험회사에서만
연구되었던 게 아니라는 겁니다).
더 나아가서 일본의 경우는 이것을 많은 기업들이 기업 경영전략의
차원에서, 그리고 국가
경영의 차원에서도 연구를 해왔다고
해요(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는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장 자신도 들은 이야기라고
하더군요. 나중에라도 우리가 꼭 한번
알아봐야 할 분야인 것 같습니다).
태평양전쟁 때는 거북선이 선제 기습공격의 수단,
즉 카미카제로
응용되었답니다. 카미카제는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었던 자살특공대가
아니라는 거죠. 카미카제는 공군뿐 아니라 해군에도
있었는데
철저히 비밀에 붙여진 조직이었다고 합니다. 이름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유인(1인용) 어뢰정(그 자체가
폭탄)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것이 미군의 항공모함이나 군함으로 돌진해서 일격에 침몰시켰다고 해요.
거북선에 철저히
농락당한 왜군의 역사를 일본 군부가 미군을 상대로
그대로 써먹은 거죠. 왜군들에게 거북선이 공포의 대상이었듯이
미군들에게도 이
어뢰정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답니다(참고로
말씀드리면 진주만 공격도 이순신 장군의 정박중인 왜선단에 대한
신출기몰했던 기습
선제공격전략을 응용한 것이랍니다).
그런데 사장은 여기서 하나 중요한 지적을 하더군요.
이순신의 거북선 수병들은 똑같은
돌격대였지만 안전한 여건 속에서
싸웠던 반면, 카미카제 요원들은 그야말로 자살 특공대였다는 거예요.
일본이 이순신을 연구한다고
했지만 결국 성웅의 면모,
진정한 리더의 면모만은 모방할 수 없었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이순신 장군은 진정으로 위대한
영웅이라고 하더군요.
이순신 장군께서는 평소부터 필사즉생이 실천되고 체험되도록 했다는 것이죠.
그러니 그런 체험을 한 병사들은
최강의 전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출전하면 죽는 것이 아닌, 반드시 이긴다는 체험....
사카모토는 이 대목에서
얼굴이 붉게 상기될 정도로 힘을 주어 말하더군요.
“이것이야 말로 정말 위대한 승리가 아닌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생사가
걸린 전장에서 그같은 리더십이 발현되었던 적이 있었는가?
백전백승이 위대한 것이 아니다.
승리를 보장해준다는 그 시스템의 철학!”
그러면서 하는 말이 한국도 역사를 존중했다면
이순신 장군을 통해서 많이 배웠을 것이고,
그랬다면 일제 식민통치같은
역사는 없었지 않았겠냐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무슨 소린지 좀 이해가 안됐는데 재차 설명을 듣고서야
깜짝 놀랐습니다. 국가
경영을 위한 하나의 시스템으로 정착시켜도
시원찮을 판에 왜 한국은 리스크 매니즈먼트의 상징인 거북선을
아직까지도 복원하지 못하고
있느냐는 거였죠.
일본의 역사에 대한 인식도 대단히 잘못되었지만 한국도 스스로를
되돌아보아야 한다면서 말입니다.
정말 쥐구멍이라도 있었다면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아직 거북선의 실체에 대해서조차 논란을 거듭하고 있는 판에...
저는 일본인으로부터
‘거북선=리스크 매니즈먼트’,
‘거북선=국가 경영을 위한 시스템적 응용’이라는 얘기를 들어야 했죠.
왜 제가 그런 말을 다른 나라 사람에게 들어야 합니까?
왜 한국은 역사를 존중하지 않느냐는 소리까지 곁들여서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쪽발이라고 해서
덮어놓고 욕하고 의심하기 전에 이 쪽발이의 말을 이제라도
깊이 새겨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튼 그날 전 너무 억울하고 분했습니다. 그래서 작정을 하고
형님에게 이순신에
관한 책들을 부탁했고 거의 두달동안
취침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10권 정도를 봤어요. 아침에
눈을 뜨면 눈이 시뻘겋게 충혈이 돼서
생활에 불편을
느낄 정도로 말입니다.
그러다가 귀국해서 김세명님이 쓰신 <불멸의 이순신>
게시판 글이
계기가 되어 <이순신과 임진왜란> 책을 보게 되었구요.
솔직히 말씀 드리면 이 책에서 제가 가진 감정은 감동보다는
놀라움이 먼저였습니다. 책을 펴는데 머리글 첫 문장에
‘필자는 삼성화재해상보험 재직시 해상보험의 시각에서
거북선을
연구했다’는 대목이 나오는 거예요.
순간 기절하는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본문의 거북선 편에서는
사카모토 사장이 저에게 말한 리스크
매니즈먼트에 대한
설명이 나오더군요.
해방 후 반세기.... 그동안 무엇이 달라졌고 어떠한 진척이 있었을까요.
역사를 존중하지 않는 것은 구한말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무엇입니까?
그때는 세도정치같은게 문제였다면 지금은 무엇이 문제일까요.
제가 왜 다른 나라에 가서 이렇게 엄청난 이야기를 들어야 하며,
왜 그러한 사실을 무명의 아마추어 작가분들이 썼다는
책에서
알아야 하나요.
해마다 충무공 탄신일이 되면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똑같은 주제를 가지고 똑같은 분들이 모여서
그렇게
논쟁만 하다가 끝냈죠. 그걸 언제까지 되풀이해야 합니까.
왜 충무공의 은둔설이 나오며, 왜 자살설이 나옵니까.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할 것은 뒷전인 채 왜 그런 얼토당토않는
것들에 매여서 시간을 허비합니까.
왜 원균이 충무공의 라이벌로 등장하고,
왜 거북선은 아직도 실체 규명이 안되고 있는건가요.
적으로 하여금 전의를 상실하게 하고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는
그 용맹했던
거북선은 어디 가고
목아지가 길어 슬픈 사슴의 모습으로 버젓이 전시되고 있는
우스꽝스런 거북선들은 대체 무엇입니까.
충무공학(學)은 국민의 학(學)이라고 합니다.
일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대한민국의 정신력자본이며,
위대한
지식자산이기 때문입니다.
퍼나르기 끝...
이글 퍼나른거...지금까지 제가 한일들중에서 가장 잘한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PS
다보셧습니까?
그럼 맨 밑에 <싼초>님이 답글로 달아놓은 <노량해전...>도 읽어보세효^^
오늘(11월 19일)이 바로 노량해전이 벌어졌던.... 바로 장군님이 순국하신 날이라네요.
http://bbs2.worldn.media.daum.net/griffin/do/koreawave/read?bbsId=K005&articleId=31&pageIndex=10&searchKey=&searchValue=
*PS
오랜만에 와보니 새론 답글들이 많네효^^
이것도 함 보세요. <스크린쿼터사수>님이 최근에 여기 한류방에 올리셨는데 강추합니다.
http://bbs2.worldn.media.daum.net/griffin/do/koreawave/read?bbsId=K005&articleId=358&pageIndex=2&searchKey=&searchVal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