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비행기 추락
글쓴이 : 오마이뉴스 원글보기
메모 : [오마이뉴스 이남훈 기자]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TV
방송뉴스에서는 그의 순직을 알리는 블랙이글팀 공군기 추락 사건을 숨가쁘게 보도하고 있다.
블랙이글팀의 가장 막내이자 블랙이글팀에 선택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여겼던 김도현(33) 대위. 필자가 지난 4월초 블랙이글팀을 만나게 된 계기는 '공군의 매력'에 대한 단행본을 집필하기 위한 취재 때문이었다.
처음 블랙이글팀을 만나 취재를 시작했을 때 가장 인상적인 답변을 한 사람이 바로 김 대위였다. "블랙이글팀이 좋냐?"라는 막연한 질문을 던졌을 때 그는 "있으라면 평생이라도 있고 싶죠!"라며 쾌활하게 대답했다.
옆에 있던 다른 조종사들이 "평생 있는 건 너무 힘들지 않냐"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의 표정은 마냥 행복해 보였다. 블랙이글팀의 근무기간은 3년이었지만, 블랙이글에 대한 그의 애정은 3년이라는 물리적인 시간을 훨씬 뛰어넘고 있던 것이었다.
전체 4등으로 공사 졸업 '수재'... 마라톤 풀코스 5번 완주
김도현 대위는 공사 사관생도 시절부터 모범을 보여주었다. 졸업 당시에는 전체 졸업생 가운데 4등으로 졸업, 합참의장상을 받은 수재이기도 했으며, 일반 대학에 비교하면 총학생회장과 같은 전대장 생도를 역임하는 등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했다.
마라톤 풀코스를 5번이나 뛰어냈을 정도의 강인한 신체를 가졌으면서도 늘 비행만큼은 "겸손한 마음으로 한다"고 말할 정도로 건전한 정신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가 블랙이글에 들어오기까지는 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다. 조종사 생활을 하면서 '언젠가는 블랙이글에 가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막상 '함께하자'는 제안이 왔을 때 김 대위는 축구를 하던 중 다리가 부러진 상태였다. 비행 자체를 하지 못하던 상태였으니 블랙이글에 들어간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는 당시의 상태를 '정신적 방랑'이라고 표현했다.
"절망이었죠. 5~6개월간 비행자체도 못했지만 블랙이글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죠. 하지만 블랙이글팀은 나를 기다려줬고, 저는 그간의 정신적 방랑을 끝내고 인생의 전화위복을 맞게 되습니다."
블랙이글에 들어간 것을 '인생의 전화위복'으로 느꼈을 정도이니 그의 입에서 '평생 블랙이글에 있고 싶다'고 말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사실 블랙이글팀이 보여주는 그 아름다운 비행의 이면에는 인간의 육체적 한계에 육박하는 고통과 심장을 오그라들게 할 정도의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존재한다. 중력의 한계를 이기지 못해 팔과 다리의 실핏줄이 터지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관객들이 아름다운 연무의 황홀함을 즐기고 있을 때, 블랙이글 조종사들은 생과 사를 넘나드는 치열한 순간을 이겨내고 있었던 것이다. 비행기들이 곡예비행을 하면서 내는 속도는 무려 600km에 가깝다.
반면에 곡예를 하거나 편대 비행을 할 때 비행기와 비행기의 간격은 불과 1~2m에 불과하다. 수학적으로 계산해보자면 단 0.001초의 판단착오도 충돌이라는 어마어마한 결과를 낳는다는 이야기다.
블랙이글팀 명찰에 표시된 각자 혈액형
블랙이글팀을 만나면서 놀라웠던 사실 한 가지는 그들의 명찰에는 각자의 혈액형이 표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모든 조종사들의 명찰에는 다 혈액형이 표시되어 있지만, 이를 블랙이글팀에서 그것을 처음 본 필자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위급시, 그러니까 스스로 자신의 혈액형조차 말할 수 없는 상태에서도 의료진이 단번에 그의 혈액형을 알아보고 수혈하기 위해서였다.
블랙이글이 만들어진 그 태동의 정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이 바로 '아이들에게 하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심어주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어린이들이 커서 공군이 되고, 우주인이 되어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지게 하자는 것이었다.
2006년 5월 5일 어린이날. 김 대위는 오늘도 아이들이 갖게 될 미래의 희망과 꿈을 생각하며 캐노피를 열어젖히고 조종석에 앉았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영광스럽게 만들어주었던 블랙이글에 보답하기 위해, 또한 그간 선배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지켜왔던 빛나는 블랙이글팀의 명예와 전통을 지키기 위해 생과 사를 넘나드는 또 하나의 치열한 전투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추락 당시에도 민간인에 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마지막까지 탈출버튼을 누르지 않고 조종간을 잡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선한 눈매를 가지고 있었던 청년 김도현 대위. 비록 그는 검은 연기 속으로 산화했지만, 공군에 대한 사랑과 블랙이글팀에 대한 명예심, 그리고 어린이들에 대한 사랑은 공군의 역사 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이남훈 기자
덧붙이는 글
이남훈 프리랜서 기자이자 출판기획자. 최근 '공군의 매력'에 대한 단행본을 집필하기 위해 공군부대와 공군의 인물을 취재하던 중 지난 4월 초순 경 직접 블랙이글팀을 취재했다. 당시 이번에 순직한 김도현 대위와 직접 인터뷰를 했다.
▲ 생전의 김도현 대위 모습 | |
ⓒ2006 이남훈 |
블랙이글팀의 가장 막내이자 블랙이글팀에 선택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여겼던 김도현(33) 대위. 필자가 지난 4월초 블랙이글팀을 만나게 된 계기는 '공군의 매력'에 대한 단행본을 집필하기 위한 취재 때문이었다.
처음 블랙이글팀을 만나 취재를 시작했을 때 가장 인상적인 답변을 한 사람이 바로 김 대위였다. "블랙이글팀이 좋냐?"라는 막연한 질문을 던졌을 때 그는 "있으라면 평생이라도 있고 싶죠!"라며 쾌활하게 대답했다.
옆에 있던 다른 조종사들이 "평생 있는 건 너무 힘들지 않냐"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의 표정은 마냥 행복해 보였다. 블랙이글팀의 근무기간은 3년이었지만, 블랙이글에 대한 그의 애정은 3년이라는 물리적인 시간을 훨씬 뛰어넘고 있던 것이었다.
전체 4등으로 공사 졸업 '수재'... 마라톤 풀코스 5번 완주
김도현 대위는 공사 사관생도 시절부터 모범을 보여주었다. 졸업 당시에는 전체 졸업생 가운데 4등으로 졸업, 합참의장상을 받은 수재이기도 했으며, 일반 대학에 비교하면 총학생회장과 같은 전대장 생도를 역임하는 등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했다.
마라톤 풀코스를 5번이나 뛰어냈을 정도의 강인한 신체를 가졌으면서도 늘 비행만큼은 "겸손한 마음으로 한다"고 말할 정도로 건전한 정신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가 블랙이글에 들어오기까지는 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다. 조종사 생활을 하면서 '언젠가는 블랙이글에 가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막상 '함께하자'는 제안이 왔을 때 김 대위는 축구를 하던 중 다리가 부러진 상태였다. 비행 자체를 하지 못하던 상태였으니 블랙이글에 들어간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는 당시의 상태를 '정신적 방랑'이라고 표현했다.
"절망이었죠. 5~6개월간 비행자체도 못했지만 블랙이글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죠. 하지만 블랙이글팀은 나를 기다려줬고, 저는 그간의 정신적 방랑을 끝내고 인생의 전화위복을 맞게 되습니다."
블랙이글에 들어간 것을 '인생의 전화위복'으로 느꼈을 정도이니 그의 입에서 '평생 블랙이글에 있고 싶다'고 말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사실 블랙이글팀이 보여주는 그 아름다운 비행의 이면에는 인간의 육체적 한계에 육박하는 고통과 심장을 오그라들게 할 정도의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존재한다. 중력의 한계를 이기지 못해 팔과 다리의 실핏줄이 터지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관객들이 아름다운 연무의 황홀함을 즐기고 있을 때, 블랙이글 조종사들은 생과 사를 넘나드는 치열한 순간을 이겨내고 있었던 것이다. 비행기들이 곡예비행을 하면서 내는 속도는 무려 600km에 가깝다.
반면에 곡예를 하거나 편대 비행을 할 때 비행기와 비행기의 간격은 불과 1~2m에 불과하다. 수학적으로 계산해보자면 단 0.001초의 판단착오도 충돌이라는 어마어마한 결과를 낳는다는 이야기다.
블랙이글팀 명찰에 표시된 각자 혈액형
블랙이글팀을 만나면서 놀라웠던 사실 한 가지는 그들의 명찰에는 각자의 혈액형이 표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모든 조종사들의 명찰에는 다 혈액형이 표시되어 있지만, 이를 블랙이글팀에서 그것을 처음 본 필자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위급시, 그러니까 스스로 자신의 혈액형조차 말할 수 없는 상태에서도 의료진이 단번에 그의 혈액형을 알아보고 수혈하기 위해서였다.
블랙이글이 만들어진 그 태동의 정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이 바로 '아이들에게 하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심어주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어린이들이 커서 공군이 되고, 우주인이 되어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지게 하자는 것이었다.
2006년 5월 5일 어린이날. 김 대위는 오늘도 아이들이 갖게 될 미래의 희망과 꿈을 생각하며 캐노피를 열어젖히고 조종석에 앉았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영광스럽게 만들어주었던 블랙이글에 보답하기 위해, 또한 그간 선배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지켜왔던 빛나는 블랙이글팀의 명예와 전통을 지키기 위해 생과 사를 넘나드는 또 하나의 치열한 전투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추락 당시에도 민간인에 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마지막까지 탈출버튼을 누르지 않고 조종간을 잡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선한 눈매를 가지고 있었던 청년 김도현 대위. 비록 그는 검은 연기 속으로 산화했지만, 공군에 대한 사랑과 블랙이글팀에 대한 명예심, 그리고 어린이들에 대한 사랑은 공군의 역사 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이남훈 기자
덧붙이는 글
이남훈 프리랜서 기자이자 출판기획자. 최근 '공군의 매력'에 대한 단행본을 집필하기 위해 공군부대와 공군의 인물을 취재하던 중 지난 4월 초순 경 직접 블랙이글팀을 취재했다. 당시 이번에 순직한 김도현 대위와 직접 인터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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