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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정부는 왜 국민과 야당 대표들에게 숨겼을까

도깨비-1 2006. 4. 20. 20:29
뉴스: 정부는 왜 국민과 야당 대표들에게 숨겼을까
출처: 오마이뉴스 2006.04.20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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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왜 국민과 야당 대표들에게 숨겼을까

[오마이뉴스 김당 기자]

한국 정부는 지난해 6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의 한·미 동맹 관련 핵심의제인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한 '우발계획'(Contingency Plan)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 문제를 공개하지 않았다. 정부는 두가지 핵심의제의 내용 자체를 공개하지 않은 것을 넘어서, 양국 정상이 그런 핵심의제를 논의한 사실 자체를 숨겼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청와대와 외교통상부가 해명한 대로, 양측 실무자들간에 합의한 '조율된 언론설명방향'(Coordinated Press Guidance)에 따른 것이라는 논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남북장관급회담에 관심을 표명했다"는 식으로 부시 대통령이 하지 않은 발언을 끼워넣어 거짓으로 브리핑한 배경을 어느 정도 설명해준다.

그러나 '조율된 언론설명방향'이라는 주장은 청와대와 정부가 '있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뺀 것에 대한 해명으로는 충분치 않다. 특히 언론브리핑뿐만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이 3부요인과 5당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설명회를 갖고 '초당외교'를 강조한 자리에서까지 한·미 정상이 그런 의제를 논의한 사실 자체를 숨긴 것은 '정치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이런 정치적 판단을 한 것일까? 당시의 상황은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한국측 : 노 대통령의 '공사 발언'과 동북아 균형자론

우선 지난해 3월 8일 노무현 대통령이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며 이는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라며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부인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을 계기로 미국측은 한·미 동맹의 신뢰도에 대한 본질적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졸업식 당일 크리스토퍼 힐 주한미대사가 이종석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을 긴급히 면담해 노 대통령 발언의 진의를 확인할 만큼 미측은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즉, 한국측 실무협상대표들이 이미 '전략적 유연성'을 양해하는 각서를 교환했는데, 한국 대통령이 뒤늦게 이를 부인하는 발언을 한 것은 '뒤통수를 치는 이중전략'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4월 7일과 15일 두 차례에 걸쳐 청와대 국정상황실과 민정수석실의 주도로 대미협상팀을 지휘한 이종석 NSC 사무차장에 대한 사실상의 청문회(전략적 유연성 점검회의)를 가진 것도 대통령에 대한 보고누락이나 부실보고로 대통령의 '오판'을 야기해 한·미간의 불필요한 갈등을 빚게 한 책임론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이 무렵에 노 대통령이 밝힌 이른바 '동북아균형자론'도 미국의 불편한 심기를 자극했다. 취임 2주년 연설에서부터 조심스럽게 이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노 대통령은 육사 졸업식에 이어 3월 30일 외교부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우리 외교는 동북아 질서를 평화와 번영의 질서로 만들기 위해 역내 갈등과 충돌이 재연되지 않도록 균형자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동북아균형자론을 얘기할 때마다 이 구상이 한·미 동맹 유지를 골간으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지만, 중국을 최대의 '잠재적 위협국'으로 간주하는 미국의 의구심을 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실제로 동북아균형자론은 국내 학자들 사이에서도 개념이나 이론 측면에서 상대국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상대국들이 한국의 역할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게 만드는 데도 실패했다는 진단을 받을 정도로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게다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5월에는 북한의 긴급사태에 대비한 '우발계획'인 '개념계획 5029'를 작계화하는 과정에서 한·미 간의 이견으로 협의가 중단된 사실이 일부 언론에 공개된 것을 계기로 미국측이 한국측에 강력히 항의하는 등 한·미 갈등요인이 이미 상당부분 노정돼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는 '노무현 정부 들어 한·미 동맹의 신뢰에 금이 갔다'는 우려 섞인 비판이 여론주도층을 중심으로 팽배한 상황이었다.

미국측 : 팽배한 한국 비판여론

노무현 정부의 대미·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여론은 미국 조야(朝野)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정부 인사들은 물론 한국에 우호적인 비정부 인사들 가운데서도 한국에 대한 비판 여론이 팽배할 만큼 '폭풍 전야'를 방불케 했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워싱턴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는 당시 여러 언론 보도를 통해서 전달된 바 있다. 예를 들어 <문화일보> 워싱턴 특파원은 회담 2주 전에 주로 지한파 여론 주도층 인사들을 인터뷰해 '미국 민심'을 전했는데 일부 대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누구보다도 노무현 정부의 탄생을 축하했지만 노 대통령이 외교문제를 국내정치 이슈화하는 것을 보고 깊이 실망했다."(민주당 성향의 한반도 전문가)

"노무현 정부가 의도적으로 한·미동맹을 정치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미국인들은 왜 우리 세금을 한국 방위에 쏟아 붓는가 질문할 것이다."(386세대에 연대감을 갖고 있는 신세대 한반도전문가)

"노무현 정부의 외교안보팀이 신뢰의 위기를 맞고 있다. 부시 행정부 인사들은 김대중 정부를 '생각은 다르지만 믿을 수 있다'는 점에서 존중했는데 노무현 정부에 대해선 이것마저 의심하는 것 같다."(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


심지어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직계로 알려진 롤리스 부차관보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주미 한국대사관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작전계획 5029'의 협상 중단이 한국 언론에 보도된 것과 관련 "왜 그런 문제를 언론에 먼저 흘리느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우리에게 직접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쏘아붙인 것으로 보도됐다.

롤리스 부차관보는 또 동북아 균형자론에 대해서도 이는 한·미 동맹과 양립될 수 없는 개념이라면서 "만일 동맹을 바꾸고 싶다면 언제든지 말하라, 하고 싶은 대로 다 해주겠다"고까지 말한 것으로 보도될 만큼 한국 정부에 대한 불신감이 컸다. 당시 롤리스는 이종석 NSC 사무차장을 '아웃'시켜줄 것을 요구했는데, 그는 이 차장이 '친북파'여서가 아니라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기문·이종석의 빗나간 예상

따라서 북한의 긴급사태에 대비한 '우발계획'의 작계화(작계 5029)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뜨거운 감자'가 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우리나라 외교·안보 당국자들은 놀랄 만큼 이 문제를 도외시하거나 무감각했다.

이를테면 이종석 사무차장은 6월 7일 방미를 앞둔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가진 '백그라운 브리핑'에서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회담에서 거론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언했다. 이종석 차장은 당시 "노 대통령이 한국 정부의 의지와 무관하게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적이 있는데, 그런 입장은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유효한가"라는 필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대통령이 (공사 졸업식에서) 그렇게 말씀하신 내용은 이미 그 전에, 한달 전인 2월초에 외교부 북미국장이 관련 협상을 시작하면서 미측에 전달한 내용이다. 실무 책임자들이 해야 될 일을 양국 지도자들이 또다시 하실 일이 과연 있겠냐. 따라서 그런 문제들이 거론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반기문 외교부장관도 6월 9일 수행기자단이 정상회담 기사의 방향을 잡도록 하기 위해 회담 직전에 가진 간담회에서 "양국 정상은 한·미 동맹 관계가 아주 공고하고 건강하게 발전하고 있다는 점을 재확인해서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여러가지 우려를 불식시킬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지금 언론에 많이 나온 전략적 유연성이나 '작계 5029'나, 이런 구체적인 현안들에 대해서는 이미 실무·고위급에서 협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정상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제기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을 사전방문해 한·미 정상회담을 준비한 실무책임자와 정상회담을 수행한 주무장관의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회담장에서 노 대통령은 북핵 문제 협상전략을 먼저 논의할 것을 제안했으나, 부시 대통령은 작심하고 나온 듯 "두 가지 사항에 대해 명확히 하고 싶다"면서 북한 '우발계획'과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북핵 전략보다 먼저 거론했다. 부시는 특히 노 대통령에게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정치적 쟁점이 되도록 해서는 안된다(should not allow this to be a political issue)"고 못박았다. 정상외교에서는 찾기 어려운 매우 이례적인 표현이다.

그러자 당황한 노 대통령은 "북핵 문제에 대한 협상전략을 논의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각하께서 전략적 유연성과 우발사태 계획에 대해 말씀하셨다"면서 "그 문제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있지만 얘기하자면 시간이 걸린다"고 에둘러 피해갔다. 노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청와대는 끝까지 알리지 않았다

북한 유사시 우발계획(개념계획 5029)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정상회담의 핵심쟁점이 될 거라는 점은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정상회담에 배석하기로 결정되었을 때부터 이미 예견된 바였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국방장관의 배석은 이례적인 일이거니와 한국측 국방장관은 수행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한·미 정상회담은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청와대와 정부 발표와 달리 '실패한 회담'이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양국 장관들끼리 협의해 나가도록 공을 넘겼고, 북한 유사시 우발계획 문제에 대해서는 노 대통령이 실무 군당국의 인식에 혼선이 있었던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정부는 이런 사실을 국민에게 사실대로 알릴 수가 없었다. 그것은 한·미 동맹관계에 대한 미국측의 상당한 불신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동북아균형자론'처럼 의욕만 앞세워 감당할 수 없는 발언을 쏟아놓은 탓에 뒤늦게 이를 주워 담으려다보니 국민을 속이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 돌아온 노 대통령은 6월 14일 3부요인과 5당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설명회를 갖고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와주신 것 그 자체가 정부의 외교를 돕는 것"이라며 "외교가 잘됐든 잘못됐든 그 결과를 갖고 여야 지도자가 결과를 함께 공유하고 논의하는 그 자체가 외교에 힘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초당외교'를 강조했다.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은 참석자들에게 NSC가 작성한 4쪽(표지 포함)짜리 '한·미 정상회담 결과' 보고서를 배포하고 회담결과를 설명했다. 이 보고서 초안은 분량이 더 많았으나 이종석 차장이 '감수'하는 과정에서 3쪽으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보고서는 NSC 사무처가 6월 12일 청와대에 홈페이지에 기고한 '한·미 정상회담 성과'의 앞부분에 '추진배경'을, 뒷부분에 '미 언론 평가'를 붙인 것 외에는 새롭거나 깊이 있는 배경설명이 전혀 없다. 이 보고서는 '종합평가'에서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한·미 동맹과 북핵문제 등 핵심의제에서 양국의 공동목표와 인식을 확인한 매우 성공적인 회담이었다는 것이 양 정상은 물론 한·미 당국자들의 일치된 평가"

"북한문제 잘 풀리는 척 하기, 한·미간 이견없는 척 하기"

▲ NSC가 작성해 3부 요인 및 5당 대표에게 보고된 '한·미정상회담 결과'. NSC는 "한미동맹과 북핵문제 등 핵심의제에서 양국의 공동목표와 인식을 확인한 매우 성공적인 회담이었다는 것이 양 정상은 물론 한·미 당국자들의 일치된 평가"라고 성과를 부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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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를 받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이번 회담이 열리기 이전에 한미동맹이 흔들린다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회담을 계기로 동맹관계를 재확인해서 다행이다"면서 "앞으로 이런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신경을 써달라"고 덕담을 했다.

외교정책과 전략의 실패를 숨기고 '성과 부풀리기'에 급급한 청와대와 정부가 3부요인과 5당대표를 초청한 자리에서 양국 정상이 '전략적 유연성' 문제 같은 한·미 관계의 '핵심의제'를 논의한 사실조차도 숨긴 배경에 대해서는 <오마이뉴스> 기사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12일자 논평이 그 핵심을 잘 짚고 있다.

"외교안보 문제의 특성상 모든 부분을 다 공개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해도 무대응과 거짓말로 문제를 덮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 정부의 '북한문제 잘 풀리는 척 하기', '한·미간 이견없는 척하기'로 인해 생겨난 구멍난 외교로 피해를 입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국민들이고 국가의 안보문제이다.

정부가 미국의 의도를 알고 있었다면 국민기만 행위를 한 것이고 미국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면 무능정권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어떤 경우이든 국가안보가 아닌 정권차원의 안보와 홍보에만 관심을 가진 이 정권의 무능과 국민 기만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김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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