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건보료, 도대체 기준이 뭡니까"
'오락가락' 건보료 개편 / 아주 불편한 진실
머니위크박효선 기자입력2015.03.05 06:04
#1. 어떤 가족은 살아있는 게 미안했다. 이들은 단독주택 지하 단칸방에서 월세 50만원을 내며 살았다. 정부는 이 단칸방 월세 50만원을 전세로 환산해 이들 가족에 매월 5만원의 건강보험료를 부과했다. 두 딸은 아버지가 남긴 빚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되어 취직할 수 없었고 어머니는 식당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팔을 다쳤다. 돈을 벌 수 없었기에 매달 5만원이라는 건보료는 큰 부담이 됐다. 지난해 3월 이 가족은 주인집에 "죄송하다"는 메모와 공과금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송파 세 모녀'의 이야기다.
#2. 서울 강남구 신사동 소재 아파트와 경북 예천군의 땅 등 5억원대 재산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가 받았던 월보수액은 1241만1130만원. 앞으로 연간 수천만원대 연금도 받는다. 그럼에도 건보료는 한푼도 내지 않았다. 직장에 다니는 부인의 피부양자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원래대로라면 19만원가량의 건보료를 내야 한다. 김종대 국민건강보험공단 전 이사장이 한 양심선언 내용이다.
최근 정부가 건보료 부과체계를 손보겠다고 나선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현행 건보료 부과기준의 불편한 진실을 살펴봤다.
"회사 그만두고 근근이 살아가고 있어요. 아들은 취업 준비하랴 바쁘고 집에 돈 버는 사람도 없죠. 처분하지 못하는 집 때문에 골치 아픈데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이 골칫덩이(집)를 재산이라고 하더군요. 건강보험료를 20만원이나 내라고 합니다. 나이 차고 어쩔 수 없이 직장 그만둔 것도 서러운데 정말 억울하고 분통이 터집니다."
중소기업 부장이었던 50대 박모씨는 지난 2012년 은근한 압박에 못 이겨 회사를 그만뒀다. 직장생활을 할 때만 해도 박씨가 부담했던 월 건보료는 8만원대. 그런데 퇴직 후 그의 건보료는 2배 이상으로 뛰었다. 대출을 끼고 산 집과 퇴직하며 회사에서 받은 자동차 때문이다.
직장을 잃은 후 소득이 없는데도 건보료가 되레 늘어나는 사례가 대다수다.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은퇴자들은 직장 다니던 때보다 더 많은 건보료를 내야 한다.
건보료 부과기준은 직장에 다니느냐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직장가입자, 직장에 다니지 않는 사람은 지역가입자로 나뉜다. 직장인이면 월급의 약 6%에 해당하는 금액이 건보료로 책정된다. 절반은 회사가 부담한다. 따라서 월급쟁이 개인이 내는 건보료는 약 3%다.
예컨대 한달에 100만원을 버는 사람은 3만원, 300만원 버는 직장인은 9만원의 건보료를 낸다. 즉, 직장가입자는 근로소득에 비례한다. 수십억원짜리 집에 살거나 주식, 부동산 등을 통해 보수 외 소득이 많은 직장인이더라도 건보료를 더 내는 경우는 없다.
특히 자영업자에게는 더 이상한 기준이 적용된다. 퇴직자나 자영업자는 지역가입자로 분류된다. 이들의 소득이 불분명해 정부는 재산(집), 자동차, 사업소득, 금융소득 등을 종합해 건보료를 매긴다.
현행 건보료 부과체계는 이렇다. 연소득 500만원 이하 지역가입자에 대해 세대구성원의 성·연령, 재산, 자동차 등을 반영한 평가소득을 산출해 보험료를 부과한다. 지역가입자 부과 요소별 보험료 부과비중은 재산 47%, 소득 30%, 성·연령 11%, 자동차 11% 등이다.
지난 2월3일 건강보험공단에서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사진=뉴스1 허경 기자
◆지역가입자, 재산기준 한계에 '눈물'
이와 같은 지역가입자의 재산기준은 실질보험료 부담능력을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 서민들은 대부분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한다. 대출이자 갚기에도 버거운데 건보료까지 부담해야 한다. 정부의 부동산3법 등 투기장려책을 믿고 빚더미만 떠안은 하우스푸어가 이중고를 겪는 이유다.
집값이 오르면 건보료도 상승한다. 서울 관악구의 한 아파트에 사는 자영업자 정모씨는 시부모를 모시고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건보료가 슬그머니 올랐다. 지난 2002년 8만원대에서 2013년 21만2000원으로 오른 것. 정씨는 건강보험공단에 거세게 항의했다. 그러나 아파트값이 올랐기 때문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는 "사는 것도 점점 힘들어지는데 정부는 개인의 삶과 노후를 짓밟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건강보험의 전체 지역가입자는 758만9000세대. 2013년 말 기준으로 연소득 500만원 이하의 저소득 취약계층은 전체 지역가입자 세대의 77.7%인 599만6000세대에 달한다. 취약계층 중 지역가입자의 20%인 154만세대는 6개월 이상 보험료를 내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건강보험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집과 자동차에 건보료를 매기는 현행 방식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팀 국장은 "처음 건강보험을 도입하던 당시에는 차량이 있으면 소득이 높을 것으로 예상해 자동차에 건보료를 물렸다"며 "하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가정에 자동차가 있음에도 그 당시의 건보료체계가 유지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남 국장은 "건보료 부과기준은 20~30년 전에 만들어진 낡은 기준"이라며 "재산이 아닌 소득 중심으로 부과하는 게 더 명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면서 '천신만고' 끝에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이 재추진될 전망이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그간 50대 이상의 은퇴자들이 건보료 부과체계의 부당함을 지적했다"며 "필요성은 알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부과체계 개선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기획단의 논의에 따라 재산보다는 소득을 기준으로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부과체계 개선안이 마련될 것"이라며 "당초 목표대로 저소득층의 건보료 부담을 줄이고 형평성을 높일 계획"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시민단체와 정치권은 정부가 여론 눈치만 보며 오락가락하고 있다고 한목소리로 비판한다. 게다가 정부가 개선안을 모두 공개하지 않아 각기 다른 예측과 찬반이 난무하는 상황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 제37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박효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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