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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만지고 전하고 떠난 신문인 브래들리

도깨비-1 2014. 10. 26.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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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만지고 전하고 떠난 신문인 브래들리


입력 : 2014.10.24 23:09 | 수정 : 2014.10.25 01:52/조선일보


 

'진리' '정의'가 '사실'을 밀어내면 '심판 없는 경기장'
언론에게 사실보다 강력한 무기는 없다

강천석 논설고문 사진
                  강천석 논설고문

며칠 전 세상을 떠난 미국 신문인 벤 브래들리(1921~2014)는 사실(事實)의 힘과 가치를 되살린 인물이다. 사람들은 사실은 진리보다 격(格)이 떨어진다고 여긴다. 사실은 정의와 남남이거나 잘해야 먼 친척뻘쯤 되는 걸로 취급한다. 종교인이건 학자건 자기주장을 정당화(正當化)하려 할 땐 사실이 아니라 진리와 정의를 끌어다 댄다. 사실 여부를 가리자고 하면 별 수준 낮은 사람 다 보겠다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역사가조차 사실이 독립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역사가가 쓰면 사실이 된다는 논리를 편다. 자신들은 사실을 만드는 직업이지 사실을 발견하는 직업이 아니라는 투다. '사실이란 심판(審判)'이 사라진 축구 경기장은 '정의'와 '진리'라는 독불장군(獨不將軍)들이 판치는 난장판이 된다.

브래들리의 타계(他界) 소식을 전한 세계 언론은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남자' '미국 역사를 다시 쓰게 한 신문인'이란 제목을 달았다. '워싱턴포스트(WP)를 26년 동안 이끌며 퓰리처상(賞) 18회 수상'이란 작은 제목도 더러 보인다. 그가 편집인으로 있던 시절 워싱턴포스트는 단순한 주택침입 절도죄처럼 보였던 워터게이트 민주당 전국위원회 침입 사건을 파헤쳐 끝내는 닉슨 대통령이 사임하고 백악관 비서실장·수석비서관·백악관 고문·법무장관 등 워싱턴 터줏대감 40여명이 감옥에 가는 드라마를 만들었다. 이 드라마는 1972년 6월 17일 첫 보도에서 1974년 8월 8일 닉슨 사임까지 2년 2개월 동안 이어졌다.

워싱턴포스트는 정의의 창(槍)을 휘두르지 않았다. 진리의 깃발을 든 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손에 든 무기는 사실(事實)뿐이었다. 워싱턴포스트는 첫 보도가 나가고 9개월 동안 혼자 외롭게 싸웠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스타지(紙)가 가물에 콩 나듯 몇 번 거든 게 전부였다. 기자라는 족속(族屬)은 원래가 정의와 진리라는 멋진 깃발에 수상쩍은 눈길을 날리는 불신(不信)의 무리다. 이 무리도 워싱턴포스트가 사실의 부스러기를 모아 사건의 윤곽을 그려나가자 흔들리기 시작했다.

운이 좋으면 하늘에서 내리는 정의와 진리를 만날 수가 있다. 그러나 사실은 쓰레기 더미에서 일부러 지우거나 잊혀져가는 관계자의 기억을 뒤져 찾아내는 수밖에 없다. 그 돌무더기에 기어오른 워싱턴포스트의 두 마리 개미가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라는 신출내기 초짜 기자였다.

브래들리는 이 두 기자가 똑같은 질문을 관계자 쉰 명에게 던지고, 관계자 한 사람을 만나 같은 질문을 쉰 번 던지는 방식으로 사실을 확인해갔다고 했다. 우드스틴(우드워드+번스타인)의 취재수첩이 너덜너덜해질 만도 하다. 취재수첩 250권과 취재메모가 500만달러에 텍사스 대학 기록보관소에 팔린 것은 그로부터 30년 후 2002년 일이다.

워싱턴포스트의 상대는 1개 주(州)를 제외한 모든 주에서 압도적 표차로 승리해 재선(再選)에 성공한 미국 대통령이다. 하루하루가 위험천만하고 조마조마하기만 했다. 사실과 어긋난 오보(誤報) 하나로 신문은 치명상을 입고, 편집국 간부들은 목이 잘리고, 담당 기자들은 새 직업을 찾아 거리를 헤매야 할 판이었다.

이 아슬아슬한 대목에서도 브래들리는 언론 역사상 가장 유명한 우드워드의 뉴스소스인 이른바 '디프 스로트(deep throat·목구멍 깊숙이)'라는 인물을 보호하기 위해 그 이름을 묻지 않았다. 브래들리가 그 이름을 확인한 건 사건이 마무리되고 2년이 지난 1976년이었다. 실제 닉슨은 재선에 성공하고 미국 전체 TV에서 워싱턴포스트 소유 TV 4개사만을 면허갱신 심사 대상에 올렸다. 오보에 대한 두려움은 기자·편집간부·사주(社主)로 올라갈수록 더 커졌다. 보도 과정에서 위험한 계단을 밟아 올라가는 순간, "OK, 이대로 갑시다"라는 가장 하기 힘든 말은 사주 캐서린 그레이엄이 맡아야 할 몫이었다.

닉슨 대통령을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것은 워싱턴포스트가 아니다. 브래들리의 말대로 "닉슨은 자기 칼로 자기 목을 쳤다"고 해야 맞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대통령이 사건의 진상을 덮으려 했다는 '사실'을 보여줬을 뿐이다. 처음엔 눈도 깜짝하지 않던 닉슨도 사실 앞에선 손을 들었다.

브래들리는 신문기자는 역사의 링에 오르는 선수가 아니라 링사이드 가까이 앉아 사실을 보고 전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했다. 기자란 역사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역사를 만져보고 그 모습과 느낌을 독자에게 정확하고 생생하게 전하는 직업이란 뜻이다. 그의 회고록 제목 '멋진 인생(A good life)'처럼 브래들리는 역사의 결정적 순간을 만지고 전하는 행운을 누린 신문인이다.

미국 언론과 한국 언론은 그가 열었던 '사실의 시대'를 거쳐 '폭로의 시대'를 지나 '편싸움의 시대'로 흘러왔다. 눈을 감으면서 '사실'을 밀어내고 '진리' '정의' '주의(主義)'가 범람(氾濫)하는 세태를 지켜본 브래들리의 가슴에 무슨 생각이 오갔을까.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