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中 주도 국제체제에 우리도 적극 개입해야
입력 : 2014.10.23 05:27 / 조선일보
한국, 높아진 전략적 위상 맞춰 大지정학 게임 적극 참여 필요
美·中 협력에 긍정적 역할 하고 多者안보·開放주의 추구해야
-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 소장
국제 무대에서 중국의 주도적 영향력 강화 움직임이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가시화되고 있다. 중국 대전략 구상의 공통점은 미국의 영향력 견제 및 배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중심의 기존 질서에 직접 도전하지 않겠다는 기존 공언과는 다른 새로운 접근이란 측면에서 주목된다. 미국 국제 지도력의 핵심인 규범과 가치, 제도를 놓고 새로운 차원의 경쟁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미국과 맺은 동맹을 기반으로 한 외교·안보 전략을 구축하고 있는 한국에 이는 곧 외교적 도전을 의미한다. 오바마와 시진핑 시기에 한국은 이미 아시아 신안보 구상, AIIB, 사드(THAAD) 미사일 방어 체계 도입 등의 사안에서는 마치 양자택일해야 하는 것 같은 압력을 크게 받고 있다. 한국은 여기서 관습적으로 쉬운 결정에 도달하려는 유혹이나 혼돈 중의 착시 효과를 이겨내야 한다.
세력 전이(轉移)와 대지정학 게임에서 한국의 전략적 위상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중국 처지에서 한국은 해양 세력의 압력을 완화하고, 세력 전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면서도 유라시아 허브 전략의 종착점이자 새로운 시작점이 될 수 있는 전략적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미국과 일본의 중국 견제 움직임 및 한·미·일 협력 가능성에 대응하여 중국은 북한과 소원한 관계를 감수하면서까지 한국과 우호 관계를 증진시키려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 심지어는 '한·중 동맹론' 주장까지 제기하면서 한국의 반응을 떠보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대지정학 게임에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적극 참여해야 하다. 이를 위해 기존 '연미화중(聯美和中)' 전략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연미협중(聯美協中)' 전략을 병행 추진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부 초기에 강조했던 연미화중 전략은 중국의 대미 정책이 온건하고 신중한 태도를 견지할 것이라는 전제를 담고 있었다. 이 전략은 한국의 상승하는 전략적 입지를 활용하여 중국과 갈등하는 영역을 과감히 축소하는 '구동축이(求同縮異)' 방책을 강구할 것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시진핑 시기의 미·중 전략적 갈등이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하고 있어 이에 따른 우리의 전략 조정도 불가피한 실정이다. '구동축이' 정책의 추진뿐 아니라 중국이 새로이 시도하는 유라시아 국제 체제 형성에 적극 개입하면서 우리의 이익을 담보할 필요가 있다. 한국 외교는 미·중 관계가 내포하고 있는 전략적 갈등과 협력의 양면성 중 협력 부문에서 긍정적 역할을 담당하는 전략적 선택이 긴요하다.
시진핑 정부의 국가 이익에 기초한 대북 정책이 제공하고 있는 새로운 전략 공간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서는 종전의 편협한 대중 인식에서 탈피해야 한다. 중국과 공동 목표를 설정하고 공동 행동을 모색하는 '연미협중' 전략 추진이 필요한 것이다. 북핵 문제에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고, 북한 핵 안전 문제에 대해 큰 우려를 지니고 있는 시진핑 정부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좀 더 과감한 행동 계획을 추진해야 한다. 그간 중국 측이 금기시했던 한반도 위기관리에 관한 대화도 시작할 필요가 있다.
한국 외교는 세계적 중견 국가로서 미·중과 동시에 우호 관계를 맺으면서 동아시아에서 한국만이 지닐 수 있는 전략 공간을 찾아 나가야 한다. 동아시아 다자(多者) 안보 체제 구축에 노력하고, 다원적 중견 국가 외교 협의체 형성을 강화하고, 강대국 일방의 과도한 독점주의를 견제하는 '보편적 개방주의' 원칙을 추구해야 한다. 복잡다기한 국제 관계를 헤쳐나갈 뱀의 명민한 두뇌, 전략적 시공(時空)을 담을 독수리의 눈, 원칙을 지켜나갈 사자의 심장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최근 사드 미사일 체계 도입과 관련하여 드러난 우리 정부의 정책 결정 단면은 깊은 우려를 안겨준다. 단편적 시야나 이해를 넘어 미·중의 핵심 이익을 충족하면서도 한국의 안보를 지켜줄 묘수를 미·중과 더불어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지정학 게임에서 악수(惡手)를 둘 여유가 별로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