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세월호 선원들은 흡혈박쥐만도 못하다니…

도깨비-1 2014. 5. 5. 14:27

세월호 선원들은 흡혈박쥐만도 못하다니…

등록 : 2014.05.02 19:27 수정 : 2014.05.03 10:24 /한겨레

 

돌고래(왼쪽)는 아프거나 다친 다른 돌고래가 숨을 쉴 수 있도록 등으로 떠받든 채로 몇 시간이고 유영한다. 굶주린 흡혈박쥐(오른쪽)는 주위의 다른 개체에게 구걸을 하고, 이에 응한 흡혈박쥐가 피를 토해 준다. 피를 얻어먹은 개체는 하루 더 살 수 있는 시간을 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토요판] 생명
동물의 이타주의

▶ 사람은 이기적이기도 하고, 이타적이기도 합니다. 세월호 사건은 그런 인간의 양면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경우입니다. 선장과 선원들이 ‘자리를 지켜라’는 안내방송을 반복한 채 빠져나가는 동안 일부 승객은 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잃었습니다. 동물은 어떨까요. 세월호의 영웅들처럼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타적인 행동을 할까요. 어떤 동물들이, 어떤 이유로 이타적 행동을 하는지 알아봤습니다.

무수한 인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는 인간 본성의 양극단이 다 드러난 사례다. 구명조끼마저 양보한 채 물이 찬 선실에 갇힌 친구를 구하려다 숨진 고등학생과 “선원은 마지막이다”라고 하며 승객들의 대피를 돕던 비정규직 승무원의 행동은 우리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장면이다. 가라앉는 배와 그 안에 갇힌 승객을 버리고 도망간 선원들의 행동은 이기주의의 표본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가. 동물도 다른 개체를 지키기 위해 이타적인 행동을 할 때가 많고, 심지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경우까지 있는데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과 동물은 위험에 직면하여 본능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이기적인 것이 자연스러운 셈이다. 하지만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잦다. 개들은 고아가 된 고양이, 다람쥐 또는 오리 새끼를 입양하여 돌본다. 돌고래는 아프거나 다친 다른 돌고래가 숨을 쉴 수 있도록 등으로 떠받든 채로 몇 시간이고 유영한다. 심지어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선원을 돌고래가 부축하여 살려주었다는 기록도 있다. 보노보가 다치거나 불구인 개체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목격되었다. 아프리카들소는 동료가 사자의 위협에 노출되었을 경우 종종 위험을 무릅쓰고 구출한다. 왜 그런지는 필자와 같은 진화생물학자에게도 논쟁의 대상이다.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판하였을 때,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이론의 결정적인 취약점은 벌이나 흰개미에게서 나타나는 이타행동이었다. 진화에 대해 가장 잘 설명한 것으로 꼽히는 리처드 도킨스의 책 제목이 <이기적 유전자>인 데서 알 수 있듯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한마디로 이기적이다. 개체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을 주는 형질만 진화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이타주의를 실행하는 개체는 자신을 희생하여 남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이타주의 유전자가 다음 세대에 번성하기 어렵다.


포식자가 나타나면 경고음 내고
자신은 희생당하는 땅다람쥐
마신 피를 다시 토해내서
굶어죽는 동료 살리는 흡혈박쥐

유전자는 생존과 번식에 집중
동물은 원래 이기적인 존재지만
혈연선택·상호이타주의 발현으로
공동체를 구하고 서로 돕는다
사회적 동물이 지구에서 가장 번성

이타주의를 진화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은 1964년 윌리엄 해밀턴이 혈연선택을 증명하면서부터다. 이타행동을 제공하는 개체와 수여받는 개체가 혈연으로 연관되어 있을 때 이타주의의 진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친척끼리는 공통 조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많은 유전자를 공유한다. 비록 내가 희생하더라도 많은 친척을 살릴 수 있다면 나의 유전자를 번성시키는 효과를 얻는다. 동물에게서 나타나는 거의 대부분의 이타행동은 혈연선택이다.

땅다람쥐는 ‘프레리’라 불리는 북아메리카 들판에서 땅속에 굴을 파고 서식한다. 땅다람쥐는 포식자가 나타났을 때 경고음을 발성하여 주위의 동료를 피신시킨다. 경고음을 발성할 때 노출된 곳에서 꼿꼿이 서서 경고음을 발성하므로 포식자의 눈에 쉽게 띈다. 또 주위의 동료들이 모두 피신할 때까지 오랫동안 경고음을 내기 때문에 자신은 종종 포식자에게 제일 먼저 잡아먹힌다.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포유류는 보통 새끼가 자라 성체가 되면 암컷은 태어난 곳에 정착하고 수컷은 분산한다. 땅다람쥐도 암컷은 태어난 굴에서 몇십미터 이내에 정착한다. 결과적으로 땅다람쥐의 무리는 암컷 위주의 사회로 구성된다. 한 암컷의 주위에는 어머니, 딸, 이모, 조카 등 모두 혈연으로 묶인 개체들이 살고 있다. 이에 비해 수컷은 외부에서 이주해 오므로 새끼들 외에는 혈연관계가 없다. 따라서 암컷이 주로 경고음을 발성하는 이타행동을 자주 하고, 수컷은 경고음을 내는 경우도 드물고 시간도 짧다. 암컷은 혈연으로 연관된 주위의 모든 개체가 피신할 때까지 경고음을 발성하지만 수컷은 자식만 피신시키면 끝이다. 이렇게 혈연선택 이론은 암컷 땅다람쥐가 수컷보다 더 이타적인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한다.

혈연선택은 사회성 곤충의 진화를 이해하는 데 특히 중요하다. 벌이나 개미는 벌목에 속하는 곤충이다. 이들은 평생 번식을 하지 않고 무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시키는 진사회성이 진화했다. 벌목 곤충의 독특한 성결정 방법 때문에 일개미끼리의 혈연관계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보다 더 가깝다. 일벌은 스스로 번식하는 것보다는 여왕벌을 도와 다른 일벌을 생산하게 하는 방법이 자신과 같은 유전자를 번성하게 하는 데 효율적일 수 있다. 진사회성 동물은 나와 같은 유전자를 공유한 친척을 늘려 간접적으로 유전자를 번성하게 하는 방법을 구사해 오늘날 지구 생태계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 중 하나가 됐다. 혈연선택 이론은 사회성 곤충의 이타주의를 설명할 수 있어서 현대 사회생물학의 근간이 됐다.

피로 묶이지 않은 동물들끼리에서도 이타행동이 목격된다. 흡혈박쥐는 낮에는 고목 안이나 동굴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밤에는 밖으로 나가 사냥을 한다. 흡혈박쥐는 주로 포유류의 피를 빨아먹는다. 한번 듬뿍 피를 흡입하고 나면 이틀 정도 음식 없이 생존할 수 있다. 그러나 이틀 연속 사냥에 실패할 경우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한다. 굶주린 흡혈박쥐는 주위의 다른 개체에게 구걸을 하고, 이에 응한 흡혈박쥐가 피를 토해 준다. 피를 얻어먹은 개체는 하루 더 살 수 있는 시간을 번다. 빚을 진 흡혈박쥐는 다음번에 같은 방식으로 이를 되갚는다.

이런 이타행동은 상호이타주의로 설명한다. 이타행동을 나중에 되돌려 받는다는 기대 아래 지금 이타행동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선의를 베풀면 나도 다음에 선의를 베풀고, 상대방이 악의를 보이면 나도 다음에 악의로 보답한다. 상호이타주의가 가장 잘 발달한 생물종은 사람이다. 중간고사 때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주위의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도와주는 친구가 있고, 거절하는 친구도 있다. 시간이 지나 기말고사 때 나를 도왔던 친구가 도움을 요청할 경우 거절하기 어렵다. 그러나 돕지 않았던 친구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면 아마 쉽게 거절할 것이다.

로버트 트리버스 박사는 우리 인간의 감정이 상호이타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죄를 지을 경우 죄책감, 비도덕적인 경우에 느끼는 공격성, 감사 또는 신뢰와 같은 인간의 감정은 상호이타주의가 잘 기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속이거나 얌체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금방 알아챌 수 있다. 또 우리는 우리에게 도움을 주거나 해를 끼친 사람들을 잘 기억하고 있다. 이런 심리적 특징은 상호이타주의자 사이에 협력을 주고받는 거래가 잘 이뤄지도록 한다.

상호이타주의가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해서 남을 살리는 영웅적인 이타행동까지 설명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학계의 의견이 갈린다. 데이비드 윌슨 박사는 인간의 이타주의는 상호이타주의 이외에 집단선택이 동시에 이뤄져야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다층선택 이론인데, 사회생물학의 아버지 에드워드 윌슨 박사도 이 이론을 지지하고 있다. 이 이론의 핵심은 “이기적인 개인이 이타적인 개인을 이기는 반면, 이타주의자의 집단은 이기주의자의 집단을 이긴다”(에드워드 윌슨)는 것이다.

1960~70년대에 벌어졌던 개인선택과 집단선택 논쟁은 집단선택자들의 완패로 끝났다. 개인의 이익과 집단의 이익이 충돌할 때 거의 대부분은 개인의 이익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호 승무원 박지영씨처럼 영웅적인 희생을 하는 이타적인 사람과 동물은 끊임없이 등장한다. 이타주의에 바탕을 둔 사회성 동물들은 지구 위에서 가장 번성하고 있다. 이타적인 사회와 이기적인 사회, 당신은 어디서 살고 싶은가.

장이권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