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이슈

김용판 無罪와 한명숙 無罪

도깨비-1 2014. 2. 11. 22:17

김용판 無罪와 한명숙 無罪

입력 : 2014.02.11 05:43/ 김낭기 논설위원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방해했다는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야당과 일부 시민 단체, 인터넷에서 또 난리다. 이들은 "법과 정의를 외면하고 정권 입맛에 맞춘 엉터리 판결"이라고 비난한다.

정치권이 정파적 유불리에 따라 사법부를 공격하고 비난하는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지금 법원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2004년 헌법재판소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기각하자 헌재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치켜세웠다. 그러다 몇 달 뒤 노 대통령 대선 공약이었던 행정수도 건설이 위헌이라고 하자 '정치 헌재' '사법 쿠데타'라고 갖은 욕설을 퍼부었다. 지금은 법원이 정권 눈치나 보고 재판하는 시대는 아니다. 언제까지 판결을 이해관계에 따라 재단(裁斷)하고 정치 쟁점화할 건지 답답하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에 관한 판결에 대해선 활발한 토론과 비판이 벌어져야 한다. '어린 중학생들을 빨치산 추모제에 데리고 간 전교조 교사에게 법적인 문제가 없다', '정치 활동이 금지된 공무원이나 교사가 여당에 당비를 내면 안 되지만 야당에 내는 것은 괜찮다', '정당 내부 경선에는 비밀선거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김일성 시신 참배는 동방예의지국에서 무죄다'라는 등의 판결이 그런 예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또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한 비판은 판결이 그 시대 다수 국민의 보편적 가치관과 동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증거가 있는지 없는지'에 관한 판단은 여론을 반영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진실을 잘 모르는 100명의 주장보다 진실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한 사람의 판단이 더 중요하다. 이 판단을 법관의 '마음속 확신', 이른바 심증(心證)에 맡기는 게 재판 제도의 본질이다. 법관은 피고인과 검사 양쪽의 주장, 반박과 재반박을 모두 듣고 이들이 내세우는 증거도 조사한다. 그러고 나서 마음속 확신에 따라 어느 쪽 말을 더 믿을 수 있는지 판단한다.

법관도 오판할 수 있다. 재판에서 법관 개인의 가치관, 성향, 감정 같은 주관적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다. 그러나 재판이란 불완전한 인간에 의한 심판이라는 근본적 한계를 전제하고 만든 제도다. 증거에 대한 법관의 마음속 확신까지 문제 삼기 시작하면 재판 제도는 유지될 수 없다. 재판을 컴퓨터로 하든지, 옛날처럼 신(神)에게 맡기든지, 아니면 주사위를 던져서 하든지 하는 수밖에 없다. 3심 제도와 재심(再審) 제도를 만들어 놓은 목적도 재판의 한계를 알고 그 오류를 최대한 줄여보려는 것이다.

김용판 무죄판결은 '아무리 따져 봐도 유죄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법관의 마음속 확신에 따라 나온 것이다. 이 확신이 옳은지 그른지는 앞으로 2심, 3심을 통해 계속 검증될 것이다. 이런 제도적 절차를 놔두고 한쪽 입장에 서서 '그게 왜 무죄냐'고 공격하는 것은 재판 제도를 부정하는 것이나 같다. 뇌물죄와 정치자금법 위반죄로 기소된 친노(親盧) 한명숙 전 총리가 '증거 부족'으로 잇달아 무죄판결을 받았을 때 친노 세력에 온갖 행패를 당해온 '보수 언론'들은 아무도 법원을 비난하지 않았다.  재판 제도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이를 존중했기 때문이다.


 

김낭기 논설위원 |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