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0.24 03:01 / 조선일보 / 정권현 특별취재부장
컴퓨터 사건 배당 이후 곳곳서 튀는 판결들
'사건 직접배당' 요구에 '젊은 판사들 반발한다' 법원장들 펄쩍 뛰어… 촛불 재판 이후의 관행
잘못된 판결 막기 위한 하급심 강화방안 나와야
- 정권현 특별취재부장
서울의 한 법원장에게 "컴퓨터를 통한 사건 배당 때문에 '튀는 판결'을 막지 못한다는 불만이 많다"고 물어봤다. "그렇다고 임의 배당을 하라고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젊은 판사들이 들고일어납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처럼 기계(컴퓨터)가 사건을 배당하는 재판 시스템에선 '튀는 판사'의 '튀는 판결'을 통제하는 시스템이 작동할 여지가 없다. 최근 한 달 사이에도 통진당의 당내 경선 대리투표에 대해 판사에 따라 유·무죄가 엇갈리는 혼란이 빚어지고, 김일성 시신을 참배한 피고인에 대해 '동방예의지국' 운운하며 무죄를 선고했다. 집회 신고 범위를 벗어난 불법 도로 점거 시위가 무죄라는 이해하기 힘든 판결도 있었다.
하지만 법원행정처나 일선 법원장들은 국민들의 우려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고위 간부는 "99%의 판결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오히려 반문하면서, "법원장이 임의로 사건 배당에 관여하는 것은 생각해본 적도 없고, '이 시기'에는 더더욱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컴퓨터가 사건을 배당하는 방식이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것은 5년 전의 일이다.
2008년 촛불 시위 재판 때 신영철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장(현 대법관)이 고참 판사에게 사건을 몰아서 배당했다가 젊은 판사들이 집단 반발하는 바람에 당시 이용훈 대법원장의 '경고'를 받았다. 이때부터 사건 배당은 컴퓨터가 대신하게 됐다. 그 이전에는 법원장들이 중요한 사건은 경험 많은 부장판사나 재정합의부에 배당하는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었다.
법원장들이 매년 초 판사 사무 분담 때 '부적격 판사'를 형사재판에서 배제할 수도 있지만, 같은 시기에 열리는 판사회의를 의식하다 보니 사무 분담권 행사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법원장이 판사들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권한인 '근무평정권'도 일선 판사들이 반발해 경력 5년 이하 판사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근무평정을 위한 법원장의 판사 면담권도 없어졌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한 이후에도 이런 흐름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전국 법원의 판사 2700명이 연간 정식재판을 통해 처리해야 하는 사건이 150여만건, 판사 1인당 600건 가까이 된다. 갈수록 복잡해지고 늘어만 가는 사건 처리 부담 때문에 판사들의 오판(誤判)이나 '튀는 판결' 우려는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법원장들은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1심 판결은 상급심에서 바꾸면 된다"고 너무 쉽게 말한다.
'3년 송사(訟事)에 집안 망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재판 한 번 받는 데 엄청난 돈과 시간이 드는 게 현실이고 보면, 그런 말은 무책임하게까지 들린다. 법원은 상식에 어긋난 판결이나 오판을 줄이기 위해, 명백하게 막을 수 있었던 잘못을 한 판사들에 대해선 인사평정 등을 통해 단호하게 책임을 묻는 등 하급심 강화 방안을 다각도로 강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법원장들에게 권한을 돌려줘야 하고, 법원장들도 제 목소리를 내고 분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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