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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칼럼] 火星서 온 한국인, 金星서 온 일본인

도깨비-1 2013. 10. 8. 14:25

[박정훈 칼럼] 火星서 온 한국인, 金星서 온 일본인

 

박정훈 디지털담당 부국장    입력 : 2013.10.04 03:05 /조선일보

 

日 '후쿠시마 문어' 매진… 韓 우리 생선도 '못 믿겠다'
불평·저항 없는 일본 소름끼쳐 한국은 장관까지 흥분 '말 실수'
별개의 종족같은 두 나라… 딱 중간 정도면 좋을 텐데
    


	박정훈 디지털담당 부국장
박정훈 디지털담당 부국장
일본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잡은 문어가 도쿄의 수퍼마켓에 나왔다. 2011년 3·11 쓰나미 이후 판매가 중단됐다가 재개된 것이었다. 5㎏들이 문어 상자엔 후쿠시마산(産) 표기와 함께 '방사능 무(無)검출'이란 안내가 붙었다. 헐값 떨이가 아니라 제값 다 받는 정상가(價) 판매였다. 그런데도 매장에 나오자마자 바로 매진됐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일본 사람들은 그렇게 강심장인가. 방사능 따윈 겁나지 않는다는 얘기인가.

엊그제 광화문 종합청사 인근 식당에 갔다가 예상 못 한 일을 겪었다. 메뉴판에 있는 생선조림을 주문했더니 안 된다고 한다. 손님들이 생선은 불안하다고 해서 아예 메뉴에서 뺐다는 것이다. 주인아주머니는 "청와대 구내식당도 생선을 끊었다더라"고도 했다. 청와대 직원들이 밥 먹으러 와서 알려주더라는 것이다. 방사능 괴담이 '청와대 버전'까지 발전한 셈인데,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다.

국내엔 후쿠시마 주변 해역에서 잡은 수산물이 수입되지 않는다. 다른 일본 농수산물도 철저한 방사능 검사를 거쳐 수입하니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생선이 팔리지 않고 횟집이 썰렁하다. 온갖 희한한 방사능 괴담이 흘러다니기도 한다. 일본산이야 그렇다고 치자. 방사능과 관계없는 국산 수산물마저 기피하는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우리가 과민한가, 일본이 둔감한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의 부실 대응이 증폭시킨 인재(人災)였다. 원전 노심(爐心)이 녹아버리는 바람에 지금도 수십만 명이 피난 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아마 난리가 났을 것이다. 몇십 명은 감옥에 가고 책임자 색출에 온 나라가 떠들썩했을 것이 틀림없다.

1년 전 후쿠시마 주민들은 원전 사고 책임자 40여명을 업무상 과실 혐의로 고소했다. 지루한 수사 끝에 나온 발표가 전 세계를 경악시켰다. 일본 검찰의 결론은 '전원 무혐의'였다. 3·11 쓰나미는 예견하기 힘든 자연재해니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였지만 처벌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우리 상식으론 믿어지지 않지만 사실이 그랬다.

아베 총리는 원전 방사능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후쿠시마에선 지금도 하루 300t의 오염수가 바다로 새어가고 있다. 완벽 통제는커녕 방사능 차단 시스템 곳곳에서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한국에서 이쯤 됐다면 민란(民亂) 수준의 국민 저항이 벌어졌을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광우병 괴담을 갖고도 나라가 들썩였던 우리다.

일본에선 도쿄전력이 돌멩이 세례를 받지도, 아베 정권이 탄핵을 당하지도 않았다. 해외 이민이 늘었다는 보고도 없다. 그저 일본 정부가 내놓는 '방사능 검출 무(無)'라는 발표를 믿으며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불평도, 저항도 없이 정부 하라는 대로 따르는 일본 사람들을 보면 소름끼치는 전율이 느껴진다. 좋게 말하면 무서울 정도로 냉정하고, 나쁘게 말하면 짜증 나도록 답답하다.

일본의 침착함이 부럽기도 하지만, 사실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두루뭉술 넘어간 탓에 사태를 장기화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도쿄전력이 사실을 은폐하는 버릇을 못 버린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2년간 사고 수습을 방치한 채 팔짱 끼고 있기도 했다. 그 결과 아직껏 방사능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주변국에 '메이와쿠(迷惑·민폐)'를 끼치고 있다.

일본 사람이라고 왜 불안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어차피 나라를 떠날 수 없다면 참고 인내하는 편이 현명하다는 뜻일 것이다. 지금 일본 사회에선 방사능 공포를 언급하는 것이 금기(禁忌)로 돼 있다. 일본 언론도 거의 보도를 하지 않는다. 방사능 얘기를 꺼낼수록 국익에 불리하다는 일본 특유의 자율 규제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이다.

며칠 전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은 기자 오찬 자리에서 일본을 "비도덕적인 애들"이라고 지칭했다. 방사능 자료를 제대로 넘겨주지 않는 일본을 비판한 것이었다. 말이야 백번 옳았다. 주변국을 불안하게 해놓고 충분한 설명을 피하는 일본 정부는 그야말로 무책임하다.

그런데 윤 장관은 해선 안 될 말까지 해버렸다. 한국 식약처가 "자료(방사능 측정치)에 문제가 없는데 어떻게 (일본 수산물 수입 금지를) 하느냐"는 입장을 밝혔다고 실토한 것이다. 윤 장관은 일본을 '애들'로 지칭하는 비외교적인 표현까지 썼다. 점심 먹는 자리에서 오간 말이었지만 대부분 한국 언론은 이를 여과 없이 보도했다. 일본 언론 같았으면 절대 쓰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쪽이 더 나은지는 모르겠다. 냉정한 일본과 격정적인 한국은 화성과 금성에서 온 별개의 종족 같다. 딱 그 중간 정도였으면 좋겠다. 우리는 너무 흥분하고 일본은 너무 조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