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8.01 03:04 / 조선일보
- 정권현 특별취재부장
얼마 전 이상훈 대법관의 친동생인 이광범 변호사가 대법원에서 처리하는 사건을 맡았다고 해서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 이 변호사는 1000억원대의 학교 돈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서남대 설립자 이홍하씨의 보석(保釋)을 둘러싼 재항고(再抗告) 사건의 변호인에 이름을 올렸다. 물론 이 사건은 이상훈 대법관이 아닌 다른 대법관에게 배당됐다. 당사자들은 절차상 아무런 하자가 없고 '법관 회피 사유'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변호사는 이른바 '진보 성향'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창립 멤버로,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에는 대법원장 비서실장·인사실장·사법정책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사법 정책의 틀을 짠 '형제 법관'으로 유명했다. 이 변호사는 무슨 사건을 맡아도 '이상훈 대법관의 동생'이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붙는다. 그런 그가 형이 대법관에 취임한 2011년 이후 대법원 사건만 42건을 맡았다.
요즘 여러 방송에 단골로 출연하는 강지원 변호사도 비슷한 경우다. 그는 부인인 김영란 대법관 재임 시절(2004.8.~ 2010.8.) 대법원 사건을 모두 28건 수임했다. 이는 어디까지나 공식 집계일 뿐, 변호사 선임계를 내지 않고 김 대법관이 소속된 재판부(대법원 1부)에 배당한 사건에 관여한 건은 포함돼 있지 않다. 강 변호사는 지난 2009년 당시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을 받던 공정택 서울시교육감 측으로부터 "대법원에서 판결이 파기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공 교육감은 그해 6월 항소심에서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은 상태여서, 대법원에서 형이 그대로 확정되면 교육감 직을 잃을 위기에 놓여 있었다.
강 변호사는 "평소 안면이 있던 공씨가 찾아와 도와 달라고 사정을 하기에 '절대 안 된다'고 거절한 뒤 후배 변호사를 소개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공 교육감 측은 그해 10월 대법원에서 벌금 150만원이 확정돼 교육감 직을 잃게 되자, 강 변호사에게 "수임료를 돌려달라"고 요구해 일부를 돌려받았다고 증언하고 있어 여전히 의혹으로 남아 있다.
강 변호사는 당시 대법원 판결 선고 직전인 2009년 10월 25일 본지 기자에게 "이제 변호사 생활을 접고 남을 위한 삶을 살겠다"며 무보수 오케스트라 단장을 맡겠다고 했다. 그러나 강 변호사는 김영란 대법관 퇴임 때까지 대법원 사건을 2건 더 수임했다.
김영란 대법관은 남편인 강 변호사의 사건 관여를 과연 몰랐을까? 김 대법관은 대법관 퇴임 후 국민권익위원장으로 있으면서 '김영란법'으로 더 알려진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안'을 발의한 주인공으로 각광을 받았다. 30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이 법은 '공직자가 직무에 관련해 대가성 없이 금품을 받아도 형사처벌하고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등의 취지이지만, 강 변호사의 '반칙 행위'를 규제하는 내용은 없다.
이 변호사나 강 변호사의 사건 수임은 누가 뭐래도 오해의 소지가 크다. '공정한 재판'과 무슨 상관 관계가 있느냐고 묻기에 앞서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올 만하다. 이들의 행위는 법 이전에 상식이나 도의적 차원에서도 말이 안 된다. '전관예우(前官禮遇) 금지법'으로도 규제할 수 없으니, '가족예우 금지법'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법이 만능은 아니지만, 최소한 대법관 재임 중에는 그의 가족들이 대법원 사건을 맡아 오해를 사는 일은 없도록 법을 만들어야 '사법불신(司法不信)'의 싹을 자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