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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고갯길(12)-경북 문경새재, 조선시대 선비들의 ‘과거급제길’

도깨비-1 2012. 12. 10. 10:18

 

김윤석 기자와 함께 걷는 옛 고갯길(12)경북 문경새재, 조선시대 선비들의 ‘과거급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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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 고갯길 걷기는 이곳 1관문 주흘관에서 출발해 3관문 조령관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면서 청운의 꿈을 품고 한양을 향해 걷던 옛 선비들의 마음을 배우는 길이다.

 옛 고갯길 답사 1번지는 문경새재가 아닐까 싶다. 오늘날까지 잘 보존된 데다 워낙 이름이 널리 알려져 너나 할 것 없이 한번쯤은 문경새재 고갯길을 넘어 봤을 성싶기 때문이다. 조선 태종 때 고갯길이 뚫리면서 과거시험을 치르는 선비뿐 아니라 인근 상인들이 충청과 경기, 한양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었다. 글깨나 쓰는 수많은 문객들과 선비들도 이 고개를 넘었다. 

 문경새재(642m)는 백두대간 조령산(1,025m) 마루를 넘는 고개다. 충북 괴산군과 경북 문경시 경계에 있는 문경새재는 새재 또는 조령(鳥嶺)이라고도 불린다. 새재란 이름엔 몇가지 유래가 있다. 풀(억새)이 우거진 고개, 하늘재와 이우릿재(이화령) 사이에 있는 ‘새(사이)재’, 하늘을 나는 새도 날아 넘기 힘든 고개라는 설이 분분한데, 그중 새도 날아 넘기 힘든 고개라는 말이 가장 유력하다.

 조선 태종 때 뚫린 문경새재는 조선 10대로 중 영남대로의 주요 길목으로 동래까지 이어진다. 이곳에 떨어진 빗물은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 북쪽으로 가면 남한강으로 흘러들어 한강물이 되고, 남쪽으로 가면 낙동강물이다. 예부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에서 문경새재는 국방의 요충지였다. 임진왜란 때는 신립 장군이 문경새재를 미리 지키지 못하고 충주성 밖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접전을 벌였으나 새재를 넘어온 고니시 유키나가에 밀려 참패하는 바람에 한양이 쉽게 함락됐다.

 문경새재는 영남대로 중에서 가장 높고 험한 고갯길이었다. 영남대로를 따라 한양에서 영남으로 내려갈 때 좌청룡 주흘산(1,106m), 우백호 조령산을 거느린다. 새재가 열리기 전 충청과 영남은 새재 북쪽의 하늘재와 죽령을 통해서 이어졌다. 하늘재를 버리고 새로 닦은 고개이자 하늘재와 이우릿재(이화령) 사이에 있는 새재가 오랜 세월 동안 역할을 톡톡히 도맡았다. 하늘재와 죽령이 새재가 뚫리면서 폐쇄됐듯이 새재는 산세가 비교적 덜 험한 이화령에 국도가 나고 터널이 뚫리면서 기능을 잃어갔다. 이화령 또한 경부고속도로와 중부내륙고속도로가 뚫리면서 그 기능을 잃었다.

 문경새재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과거급제길이란 이름도 얻었다. 물론 과거시험을 치르는 선비들의 전용도로가 따로 있었을 리 없지만, 그런 이름으로 불린 까닭은 수많은 영남 선비들이 등용됐기 때문일 것이다. 한양에서 영남으로 부임하는 관리들의 행차가 이 길을 넘었고, 청운의 뜻을 품고 과거길에 오른 선비뿐 아니라 괴나리봇짐을 멘 보부상들도 문경새재를 넘었다.

 죽령과 추풍령도 있었지만 죽령은 ‘죽죽’ 떨어지고 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 생각했기 때문에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들은 새재를 주로 이용했다. 여기에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는 의미의 문경(聞慶)이란 지명까지 더해져 문경새재는 과거길의 대명사가 되었다. 동래에서 한양으로 갈 때 문경새재를 지나면 14일, 죽령을 넘으면 15일, 추풍령으로 넘어가면 16일이 걸렸다. 문경새재가 가장 짧은 길인 셈이다.

 문경새재는 겨울 문턱에 들어선 지 오래였다. 며칠 전 내린 잔설이 응달에 더러 남아 있고, 고갯길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질퍼덕했다. 차가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질척거리는 길을 한걸음 한걸음 내딛기 힘들었다. 때 이른 초겨을 추위에도 문경새재는 옛 고갯길 답사 1번지에 걸맞게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문경새재를 걷는 길은 주흘관(제1관문)부터 올라가거나, 조령관(제3관문)부터 내려올 수도 있다. 하지만 새재를 걷는 묘미는 청운의 꿈을 품고 한양을 향해 걷던 옛 선비들의 마음을 되새기며 제1관문을 출발해 제3관문을 지나 고갯길이 끝나는 고사리마을까지 가는 길에 있다. 왕복 15㎞가 훌쩍 넘어 예닐곱시간이 걸릴 만큼 녹록지 않다. 그래도 되돌아오는 길은 시선이 닿는 곳마다 정겹기 그지없다. 낙심한 탓일까, 욕심을 버린 탓일까.

 문경새재 고갯길의 아름다움은 조곡관(제2관문)부터 조령관(제3관문)이 아닐까. 문경의 진산이라는 주흘산을 곁에 끼고 걷는 재미일지도 모른다. 군데군데 옛길도 반갑다. 새로 놓인 다리나 넓혀진 길을 버리고 옛길로 접어들면 과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직선으로 뻗은 대로를 지나 완만하게 굽은 길, 부드러운 흙길, 나무 한그루나 바위 하나도 깊은 역사와 사연을 간직한 듯 보여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혹자는 ‘우리 문화유산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 말대로 아는 만큼만 보였는데, 볼수록 아는 만큼 보이는 게 아니라 관심과 애정을 가진 만큼만 보였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잘못된 앎이 오히려 문화유산을 망치는 일이 허다하다. 옛 고갯길도 예외는 아니다. 진정 관심을 가지고 바라볼수록 안 보이던 것이 점차 보이고, 애정을 가진 만큼 더욱 살아 있는 대상으로 다가온다.

 문경=김윤석 기자 trueys@nongmin.com

   출처: 농민일보 http://www.nongmin.com/article/ar_detail.htm?ar_id=21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