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이 그림이 스님 초상화라고?…

도깨비-1 2012. 9. 11. 10:13


[손철주의 옛 그림 옛사람] [24]

이 그림이 스님 초상화라고?… 꼭 얼굴을 보아야만 보았다고 하겠는가


  손철주 미술평론가/ 조선일보 2012. 09. 10.

 

   이 그림은 초상화다. 아니, 얼굴이 안 나오는 초상(肖像)도 있는가. 의아한 사람은 화면 가운데를 보면 고개를 끄덕일 테다. 사각형 테두리 모양은 위패(位牌)인데, '환월당대종사진(幻月堂大宗師眞)'이라고 적혀 있다. 풀이하면 '환월당이라는 법호(法號)를 가진 큰스님의 진영(眞影)'이다. 절집에서는 초상을 흔히 '진영'이라 칭한다. 화가는 얼굴 대신 이름만 가지고 초상화를 그린 셈이다.
   큰스님이 무슨 면목(面目)이 없어서 그랬을까. 물론 아니다. 모든 상(相)이 다 허깨비라서 상(像)을 그리지 않았다. 마침 스님의 법호에도 '허깨비[幻] 같은 달[月]'이 들어 있다.

 

 '환월당 진영' - 작자 미 상 , 비단에 채 색, 120.7×70.7㎝, 1881년,

 선암사 성보박물관 소장


   환월당(1819~1881)은 법명이 '시헌(時憲)'이다. 그는 전라도 순천에서 태어나 선암사로 출가했다. 3년 동안 문 닫아걸고 법화경만 파고들어 마침내 달통했다는 학승(學僧)이다. 모르는 게 없어 그의 설법은 명료했고, 따르는 후학이 늘 도량에 넘쳐났다.
   숨은 그림 찾듯이 배경을 요모조모 뜯어보자. 거기에 환월당의 구도(求道)가 들어 있다. 등용문을 상징하는 잉어 두 마리가 물살을 박차고, 신성한 사슴이 상서로운 영지를 입에 물었다. 오른쪽 필통에 붓과 두루마리가 잔뜩 꽂혀 있는데, 왼쪽 서안 위에는 첩첩이 쌓아올린 법화경이 보인다. 그의 학구적인 이력이 민화풍의 장식과 아귀가 착착 들어맞는다.
   그림 왼쪽 맨 위에 환월당을 기리는 글이 있다. 그의 제자인 원기(元奇)가 지었다. 법호에 나오는 '환(幻)' 자를 운율 삼아 쓴 내용이 웅숭깊다. '헛된 몸으로, 헛된 세계에 나타나, 헛된 설법으로, 헛된 중생을 제도했도다.' 헛되고 헛되다니, 무례하게도 제자가 스승을 욕보이자는 뜻인가. 천만에, 산(山)은 산이면서 산이 아니기도 한 것이 선가(禪家)의 어법 아니던가. 헛됨으로 참됨을 가르칠 요량이다.
   이 그림은 묻는다. '스님의 모습을 꼭 봐야만 스님을 알겠는가.' 보아야 아는 자는 보여줘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