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야기

주말 등산인의 로망… 산비탈에 앉은 집

도깨비-1 2012. 4. 13. 10:22


 

[집이 변한다] [12] 주말 등산인의 로망… 산비탈에 앉은 집


- 황준의 가평 '폭포수 주말 주택'
하산 후 자연 벗삼아 샤워에 식사…
60도 급경사 골짜기에 돌더미 쌓고
그 위에 집 끼워넣어 자연과 同化
- 6m 높이 거실 사방을 유리창으로
테라스 유리바닥 밑엔 시냇물 졸졸


 2012. 04. 12. 조선일보/ 가평 박세미 기자.

 

   주말이면 여느 중년 남성처럼 산을 즐겨 오르던 정지연(61·사업가)씨는 2008년 가을 경기도 가평 연인산(戀人山)을 올랐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절정인 단풍과 울창한 잣나무, 맑은 계곡물, 시원한 폭포수…. '하산 후 시원하게 샤워 한 번 하고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집이 이런 곳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2010년 말 지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 백둔리의 '폭포수 주택'은 등산 애호가라면 누구나 꿈꾸는 이런 환상을 현실적으로 끌어내려 만든 주말 주택이다. 건축가 황준(46·황준도시건축사사무소 대표)씨는 정씨의 의뢰를 받고 이 집을 1년여에 걸쳐 설계했다. 11일 백둔리 주택에서 만난 황씨는 "건축주가 이 땅을 보여줬을 때 무척 당황스러웠다"며 "대지가 60도에 가까운 급경사인 데다 바로 앞 시냇물과 골짜기에서 물이 범람할 우려까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황씨는 어려운 지형을 되레 도전적인 기회로 삼았다. 연면적 200㎡(약 60평), 지상 1층·지하 1층짜리 이 집은 산골짜기를 끼고 돌더미 사이에 '끼워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평평한 집터를 만들기 위해 건축가는 거친 산비탈을 인위적으로 깎았고 그 위에 돌더미를 5m 높이로 쌓아올렸다. 그 위에 집을 얹되 살포시 얹기보단 집 전체가 돌 사이에 끼워진 것처럼 보이도록 지하 1층을 돌더미 바닥 높이로 끌어내렸다. 평당 건축비는 약 500만원. 황씨는 "인공적으로 돌을 올린 건 계곡물 범람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지만, 집이 되도록 자연에 동화(同化)된 느낌을 주고 싶었던 의도도 있다"고 했다.

 

 

▲ 건축가 황준씨가 경기도 가평군 연인산 끝자락에 만든 '폭포수 주택'. 골짜기를 낀 이 집을 짓기 위해 황씨는 산비탈을 깎고 그 위에 높이 5m짜리 돌무더기를 쌓았다. /외부제공 


   집 앞·뒤로 푸른 잣나무가 가득한 연인산 산비탈이 있고, 그 사이에 작은 계곡물이 흐른다. 등산객들이 오가는 계곡을 따라가면 작은 폭포도 나온다. 주택 뒤편에는 길고 좁은 복도가 건물을 휘감듯이 나 있다. 건축주나 방문객들이 이 복도를 따라 걷다 보면 수려한 연인산 골짜기 풍경이 거짓말처럼 나타난다. 계곡에서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좀 더 극적으로 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치이다.
   유리는 이 집의 핵심적 소재다. 6m 높이로 틔운 거실 천장에는 자연 풍광과 빛을 최대로 끌어들이기 위한 유리창이 사방에 둘러쳐져 있다. 거실에 앉으면 동서남북 어느 방향에서도 창을 통해 자연을 감상할 수 있다. 계곡으로 난 거실 전면에는 콘크리트 보를 없앴고 대신 통창을 설치했다. 콘크리트 보가 계곡을 향한 시선을 방해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침실 세 곳의 방문도 전부 반투명 유리로 만들어 실내로 들어온 빛이 복도까지 이어지게 했다. 거실 바깥 테라스 바닥까지 유리로 만들어 발밑에 시냇물이 흐르는 느낌을 줬다. "굳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집에서 자연을 품을 수 있도록 모든 시각적 방해 요소를 없앴다"는 설명이다. 실내는 자작나무 합판으로 마감했다.
   도심 생활에 지친 60대 건축주가 아내, 30대의 장성한 아들들과 함께 찾는 곳이기 때문에 휴가지 같은 공간도 따로 만들었다. 거실 벽 쪽에 둔 나선형 계단으로 옥상 베란다를 연결해 이곳에서 가족, 방문객 등과 바비큐 등 간편한 저녁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한 것. 지하실은 정씨와 손님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응접실이자 정씨가 취미로 가구 등을 만드는 작업실로 쓰인다.
   경기도 부천시 상가주택에서 10여년간 살았다는 건축주는 "은퇴 후 아내와 생활할 집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산비탈을 깎고 절벽같이 생긴 이곳 위에 진짜 내 집을 짓고 살 수 있을 줄은 몰랐다"며 웃었다.
   "처음엔 나도 마당 있고 흔들의자 있는 평범한 집을 생각했지요. 하지만 막상 이 집에 오니 자연 그 자체가 정원입디다. 나무가 더 있었으면 싶을 땐 뒷산에 그저 나무를 심으면 되고, 마주 본 곳이 산비탈과 계곡물뿐이니 누구도 내 공간을 침해하지 않아요. 나처럼 게으른 사람도 힘들게 관리를 하지 않아도 돼 얼마든지 잘 지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허허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