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이슈

[아침논단] 남의 돈으로 관대해지기는 쉽다

도깨비-1 2012. 3. 15. 17:09


[아침논단] 남의 돈으로 관대해지기는 쉽다

복지, 소득 재분배보다
돈을 낭비하지 않고
어려운 이 돕는 게 중요
정부가 재원 마련하려면
세금 더 걷거나 돈 찍어야
최상의 복지는 '일자리'


   장용성/ 연세대.미국 로체스터대 교수 경제학/조선일보 2012. 03. 15

 

   어떤 사회가 살기 좋은 사회일까? 어느 정도 불평등이 있더라도 평균적인 소득이 높은 사회일까? 아니면 소득이 낮더라도 평등한 사회일까?
   한 사회의 후생(厚生)을 측정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경제학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지표는 사전적(事前的) 후생이다. 경제활동의 사후적 결과가 실현되기 전 사회 구성원들이 느끼는 평균적인 후생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자면, 다시 태어난다면 어느 사회에 살고 싶으냐고 묻는 것과 유사하다. 이 지표에 따르면 비록 어느 정도 불평등이 있더라도 평균적인 소득 수준이 높은 나라가 살기 좋은 사회다.
   유엔이 사용하는 불평등 지수 중 하나는 상위 10%와 하위 10% 소득의 비율이다. 미국의 경우 이 지수가 16으로 상위 10%의 평균 소득이 하위 10%의 약 16배에 이른다. 대표적 복지국가인 노르웨이는 6, 독일은 7, 프랑스는 9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절반 수준인 8이다. 이 지표가 나쁜 나라들은 주로 중남미 국가들로 아르헨티나는 32, 볼리비아는 무려 94에 이른다. 미국의 경우 소득 불평등 지수가 높지만 다시 태어나 살고 싶은 나라를 묻는 설문 조사에서 늘 높은 순위를 차지한다. 많은 사람들이 크게 성공해서 잘살 수 있는 기회,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에 후한 점수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투표를 해보면 평균적인 소득을 높이는 정책보다는 복지를 강화하는 정책을 선택하는 쪽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흔하다. 이를 정치경제학에서 '중간자 투표의 정리(Median Voter Theorem)'라고 부른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하기 때문에 소득분포의 중간(median)에 위치한 사람이 선거 결과를 지배한다. 최상위층에 소득이 집중되는 경향으로 인해 소득분포의 50%에 있는 사람의 소득은 전체 평균보다 훨씬 낮게 형성되어 복지를 강화하는 정책을 선호하게 마련이다. 선거 결과는 모든 구성원의 평균적인 후생을 높이는 것보다는 소득분포의 중간에 위치한 사람의 후생을 높이는 쪽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복지 정책은 크게 세 가지 기능을 지닌다. 첫째, 부자의 소득 일부를 어려운 이에게 이전하는 소득 재분배 기능이다. 둘째, 열심히 노력했지만 운이 나빠 곤경에 처한 경우를 돕는 일종의 보험기능으로, 품앗이나 경조사 부조 등 우리 사회의 미풍양속(美風良俗)으로 내려오는 전통이다. 셋째, 도로·공원·학교 등 다 함께 사용하는 공공재에 대한 투자다.
   불의의 사고에 대비한 보험이나 공공재는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모두 혜택을 보기 때문에 논쟁의 여지가 적다. 복지정책이 갖는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최근 논쟁이 지나치게 소득 재분배 이슈로만 부각되는 것은 아쉽다. 오히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복지 정책들에 사용되는 돈이 낭비되지 않도록 하고 진정 어려운 이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4년 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인 동료 교수가 해준 얘기다. 초등학교 3학년인 딸이 "아빠, 오바마에게 투표하세요"라고 했단다. 왜 오바마를 찍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많이 펴니까요"라고 답하더란다. "그런데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면 아빠가 세금을 많이 내야 하는데, 그래도 괜찮아?"라고 되물었더니 아이는 "네, 괜찮아요.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마침 이날이 핼러윈데이라서 딸아이는 동네를 돌며 사탕을 모았다. 한 달을 먹고도 남을 양이었다. "어차피 너 혼자 먹기에 너무 많으니 내일 학교에 가져가서 기부를 좀 하는 게 어때?"라고 했더니, 아이는 정색을 하면서 "추운 날 온 동네를 돌며 애써 모은 사탕을 왜 남에게 주라고 하느냐"며 버럭 화를 내더란다.
   각종 복지 공약을 내세우는 정치인들에게 과연 자기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도 기꺼이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묻고 싶다. 사업의 혜택은 큰소리로 얘기하지만 그 비용을 자세히 설명해주는 정치인은 드물다. 정부는 산타클로스가 아니다. 정부가 재원을 마련하려면 세금을 올리거나, 새로 돈을 찍거나, 재정적자를 이월시켜야 한다. 선거를 앞두고 세금을 더 걷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가가 성큼성큼 오르는 요즘 돈을 더 푸는 것도 위험하다. 일단 빌려 쓰고 재정적자를 이월시키는 것이 당장에 손쉬운 방법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정적자를 이월시키는 것은 결국 다음 세대의 돈을 빌려 지금 소비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공약으로 내세운 정책들이 과연 우리 자녀들에게 더 큰 세금을 부담시킬 가치가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최상의 복지(welfare)는 일자리(workfare)라는 점을 선거에 나서는 선량(選良) 후보들이 염두에 두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