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야기

주택이 이기심 버렸다… 죽었던 이웃情 살렸다

도깨비-1 2011. 8. 5. 11:17


주택이 이기심 버렸다… 죽었던 이웃情 살렸다

건축가 김승회 교수의 '판교 실험'
나 홀로 튀는 집 아닌 이웃 배려하고 절제하는 집으로…
마을 주택들 높이 6m로 맞추고 옆집 사생활 침해 않으려고 옆면·뒷면에 창 거의 안내


   조선일보 2011. 08. 05 김미리 기자 


 

   이 시대, 한국의 집은 이기적이다. 철문으로 감싼 채 소통을 단절한 아파트, 높은 담벼락으로 외부의 시선을 차단한 고급 주택….
   요즘 김승회(48)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섬처럼 따로 노는 한국의 주택문화에 반기(反旗)를 드는 의미 있는 실험을 하고 있다. 김 교수는 1995년 '일산주택'을 시작으로 다세대주택의 대안을 모색한 '방배동 돌체하우스', 가볍고 에너지가 적게 드는 '과천 주택', 재벌가 고급 주택 등을 통해 '집의 전형(典型)'을 모색해온 건축가다. 그의 이번 실험 무대는 공동 주거의 대안을 위해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계획한 판교 신도시 단독주택지의 11블록 지역이다. 80여채의 주택이 들어설 예정(현재 30채 정도 완공)인 이 지역의 코디네이터 건축가를 맡아 외형적으로 조화로운 동네를 만들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일부 집은 직접 설계했다. 지난주 '판교 실험'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작품 '윤교수댁'을 김 교수와 함께 찾았다.
   11블록 입구 코너에 있는 2층 집 '윤교수댁'의 첫인상은 따뜻함이다. 실제 규모(대지 271㎡·82평, 연면적 287㎡·86평)에 비해 건물 외관은 상대적으로 아담한 편이다. 한 소재로 마감해 덩어리 느낌을 주는 대신 외벽을 분절(分節)해 목재·아연판·노출콘크리트를 적절히 안배했기 때문이다. 1층 거실은 커다란 통유리창으로 외부와 연결되고 2층은 작은 창이 조그맣게 나 있어 한 건물이지만 1, 2층의 느낌이 사뭇 다르다.
   김 교수는 "이 지역 건축주들과의 만남을 통해 만든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따른 표본 같은 집"이라 했다. 2008년 판교 단독주택지에 필지를 분양받은 건축주들이 자발적으로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어 자신들이 살 마을을 통일성 있게 가꿀 목적으로 블록(총 14블록)별로 담당 건축가를 정했다. 이 중 11블록 주민들이 선택한 건축가가 김 교수였다. 전시회를 통해 김 교수를 알고 있었던 '윤교수댁'의 건축주 윤구영(51·홍익대 교수)·이금순(48·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씨 부부가 김 교수를 추천했다.
   주민들 제안에 김 교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자기 집 내부만 관심 있는 우리의 건축 환경에서 이웃들이 의기투합해 자신의 마을 풍경을 통일화시켜 달라고 제안해온 것이었다. '집=집+집'(여러 집이 모여 집합적인 집의 풍경을 이룬다는 뜻)이라는 내 신념하고도 맞아 기꺼이 임하게 됐다."
   건축주들과의 만남을 통해 만든 가이드라인은 2층 높이인 6m 정도로 고도를 맞추고 외벽 소재는 콘크리트·목재·아연을 주로 사용해 일관성을 주자는 것 등이었다. 자기 집만 튀려고 더 높이, 더 화려하게 하는 대신 이웃을 위해 배려하고 절제하는 편을 선택했다.
   김 교수는 자신이 직접 설계를 맡은 집에선 구체적으로 두 가지 목표를 지향점으로 삼았다. '이웃과의 공간 속에서 예의를 지키는 집', '생활을 담는 그릇인 동시에 자아 실현 공간으로서의 집'. 윤교수댁은 이 두 지점이 맞닿은 결과물이다. 2층으로 이웃집과의 눈높이를 맞추고, 집 옆면과 뒷면에는 창을 거의 내지 않아 이웃의 사생활을 존중했다. 그림을 좋아하는 부인을 위해 실내엔 갤러리처럼 다양한 공간과 형태의 흰 벽이 만들어졌고, 열린 공간을 즐기고 싶어하는 남편을 위해선 1층 거실에 통유리창이 들어갔다. 박공지붕(삼각 모양 지붕) 형태를 그대로 살린 2층 천장은 가족들에게 '진짜 집'에 살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장치다.
   집을 짓는 데 든 금액은 "예상보다 적었다"고 했다. 대부분의 자재를 국산으로 해서 거품을 줄인 결과였다. 부부는 "서울 강남의 99㎡(30평) 아파트 한 채 가격 정도로 전용면적으로 따지면 330㎡(100평)짜리 아파트만한 집을 지은 셈"이라고 했다.
   건축주는 "옆집과 집 바깥을 공유하면서 자연스레 지역 커뮤니티가 활성화됐다"고 밝혔다. '배려하는 건축'을 통해 집이 이기심을 버리자 그 틈으로 사라졌던 이웃의 정이 되살아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