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논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진실은 이분법으로 볼 수 없다
이분법으로는 남을 이해도 관용도 할 수 없다
연평도 포격에도 국론 분열·증오·복수 대물림만은 말자
박지향/ 서울대 교수/ 서양사 / 조선일보 2010. 12. 20
대학 강단에서 20년 넘게 강의해 오면서 내가 가장 많이 써온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였다. 역사를 공정하고 다양하게 설명하려다 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많이 포함되는 강의를 하게 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학생들은 그 말을 무척 싫어한다. 그들은 명쾌하게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식으로 가르쳐주기를 원한다.
이것은 옳고 저것은 틀렸다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와 해석은 얼마나 명쾌하면서도 가르치기 쉬울까. 설명을 다 해놓고 굳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사족을 달아 망쳐놓을 필요도 없다. 그러나 옳고 그름이 분명하지 않은 일을 명쾌한 것처럼 오도하면서 스스로를 정의롭다고 착각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얼마 전 학원가의 운동권 출신 강사들이 학생들에게 낡은 시대의 이념을 일방적으로 주입시켜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사교육 현장에 있는 어떤 이의 해석에 의하면 그들은 가르치기 쉽기 때문에 좌파식 강의를 해왔다고 한다. 옳고 그름을 이분법적으로 일러줌으로써 쉽게 가르칠 뿐만 아니라 정의로운 인간으로서의 자부심과 올곧은 스승이라는 존경까지 거머쥘 수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런 식의 단순함으로는 인간사회도, 인간역사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실제 역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점철되어 있음은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분명 독재를 했고 잘못을 저질렀으며 적지 않은 이들이 그 치하에서 고통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대한민국이 버젓한 나라가 되는 데 대단히 큰 공헌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의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경륜과 안목을 갖추지 못했고 주변 단속에 실패함으로써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자신마저 비극으로 몰아넣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득권을 깨뜨리고 가진 게 없는 사람도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데 성공했다.
아직도 우리 사회의 현안으로 남아있는 친일파 문제를 놓고 봐도 마찬가지다. 애국계몽운동을 이끌었지만 친일파로 간주되는 윤치호는 독립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교육과 계몽이 급선무라고 확신했고 그 일에 일제가 제공할 수 있는 이기(利器)를 이용하려 했다. 당시 많은 지식인이 일제에 협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가운데 일부는 자신의 영달만을 추구하기보다는 그 길이 조국을 위한 길이라고 믿었다.
반대 경우의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해방 직후 좌파 지식인들에게 적용된다. 해방된 조국이 인민 중심의 낙원을 실현하기를 열망한 사람들이 김일성 아래에 모여들었다. 애초의 이상과 열정은 순수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만들어낸 것은 인민이 굶어 죽는 오늘의 동토공화국 북한이다.
이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인간사회의 복잡성과 복합성을 설명하는 데 불가결한 문구다. 특히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공존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그 말의 사용을 권하고 싶다. 우리 사회의 분열은 많은 부분 내용적으로 이념이 아니라 가족사와 연관된다는 특징을 보인다. 한반도의 분단과 6·25전쟁,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시대의 폭력은 많은 사람의 삶을 유린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완강히 부정하는 인사들 가운데 많은 수는 우파들에게 고통과 불의를 당한 아픈 가족사를 가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전쟁이 낳은 군경 유가족과 상이용사, 그리고 좌파들에게 가족이 학살당한 인사들도 적지 않다. 그런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기억들이 그들의 사고를 경직시켜 사물의 중층적 면을 보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에 연평도가 포격당해도 국론 분열은 여전한 것이다.
그러나 매사에 시(是)가 있으면 비(非)가 있는 법이며, 모든 인간은 삶의 복잡다단한 과정에서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기회주의적 양비론(兩非論)이 아니라 시와 비를 함께 보고 사안을 파악하려는 안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더 많이 사용할수록 이제껏 보지 못한 측면이 드러나게 되고 타인에 대한 이해와 관용도 깊어질 것이다. 이제 제발 증오와 복수를 대물림하는 일만은 멈추도록 하자. 새해에는 모든 사람이 따뜻한 마음과 인정 어린 눈으로 서로를 다독여주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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