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의 국보순례] [62]
불국사 석등
- 명지대교수/미술사/ 2010. 06. 03
불국사에 가면 사람들은 석가탑과 다보탑의 아름다움에 취해 바로 곁의 석등에는 좀처럼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불국사 대웅전 앞 석등(사진)은 통일신라 고전미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명작이다. 사찰에서 등은 어둠을 밝히는 기능뿐만 아니라 부처님 말씀을 의미하는 상징성이 있다. 그래서 불교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내려주는 가르침을 전등(傳燈)이라 하고 가람배치에서는 절마당의 중심에 놓인다.
같은 등이라도 중국과 일본 사찰에서는 청동이나 나무로 세웠는데 우리나라는 양질의 화강암 덕분에 석등으로 발전했다. 석등은 석탑과 마찬가지로 백제 미륵사에서 시작되어 통일신라 불국사에 와서 하나의 전형으로 창조되었다. 석등은 구조가 아주 간단하다. 기단에서 곧게 세워진 8각기둥 위에 불을 밝히는 화사석(火舍石)이 올라앉은 구조다. 그리고 기단돌과 화사석의 받침대는 대개 여덟 장 연꽃잎을 복련(覆蓮)과 앙련(仰蓮)으로 새겼다.
그런 중 불국사 석등은 뛰어난 비례 감각을 보여준다. 돌의 두께가 알맞아 둔중하지도 가볍지도 않고, 늘씬한 팔각기둥과 단정한 화사석의 어울림에는 귀공녀 같은 기품이 있다. 멋을 표현하는데도 감정의 절제미가 있다. 연꽃새김을 자세히 보면 겉꽃 속에서 새 꽃잎이 머리를 살짝 드러내고 화사석에는 창문틀이 가볍게 새겨졌다. 그리고 석등 앞에 놓인 넓적한 배례석(拜禮石)의 옆면 모서리는 마치 상다리처럼 조각됐다. 이것을 안상(眼象)이라고 부른다. 불국사 석등에는 이처럼 단아한 고전미가 있다.
석등은 절마당이 아무리 넓어도 하나만 세운 것이 오랜 전통이다. 이는 '시등공덕경(施燈功德經)'에서 부자의 화려한 등불보다 가난하나 진실된 자의 등불 하나가 더 부처의 마음에 다가간다고 한 데서 유래한다. 그런데 요즘 절에서는 화려한 석등을 쌍으로 설치하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경전에 맞지 않는 이런 현대식 쌍등을 볼 때면 불국사 석등이 조형적으로, 종교적으로 얼마나 뛰어난 명작인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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