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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데스크] '新사농공상' - 조선일보

도깨비-1 2009. 11. 23. 17:30

[조선데스크] '新사농공상'

   -송의달 / 산업부 차장대우 / 조선일보 2009년 11월 23일

 

   "요즘 전문계 고등학교는 준(準)인문계 고교예요. 대학에 가려는 학생들이 90%가 넘으니 '전문 기능인(엔지니어)의 산실'이라는 호칭을 지워야 합니다."
   "중3생을 대상으로 기계 분야의 명장 초청 특강을 했다가 학부모들로부터 '평생 기름밥이나 먹게 하려고 하느냐'며 거센 항의를 받았어요."
   얼마 전 만난 중·고교 선생님들이 쏟아낸 하소연들이다. 서울 A공고의 고3 주임 교사는 "내신 경쟁은 물론 학원·과목별 과외 등 사교육 열풍도 불고 있다"고 했다.
   디자인·요리·애니메이션 같은 분야에서 체험위주 실습 교육이 목표인 특성화 고교 재학생들도 대다수는 대학 진학에 몰두한다. 기능 교육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 2000년에 51%이던 전문계 고교 졸업생의 취업률은 지난해 19%로 추락한 반면, 1990년 8%이던 대학 진학률은 2000년 42%, 지난해는 73%로 치솟았다. 이는 독일(34%)·스위스(36%)보다 배 이상 높은 수치이다.
   이런 상황에서 직업고 재학 중 매주 3~4일은 기업에서 직업교육을, 1~2일은 학교 이론 교육으로 '실전형 장인(匠人)'을 키우는 스위스식(式) 모델은 꿈도 꿀 수 없다. 오히려 '기술 없는 기술인'을 양산해 공과대학과 기업현장 기술 수준의 질적 하락을 가속화할 뿐이다.
   이런 현상의 근본 원인은 '내 자식 손에는 기름 안 묻히고 사(士)자 붙은 직업 갖게 하겠다'는 뿌리깊은 사농공상(士農工商) 의식이 다시 발호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기능인에 대한 '천대'와 이공계 기피 풍조가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신(新)사농공상' 현상이 우리 미래의 목줄을 죄는 주범(主犯)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손끝 기술' 습득 능력이 가장 왕성한 청소년기에 기능 교육을 외면하다 보니 우수한 기술 엔지니어들의 명맥이 끊어지고 있다.
   LG전자의 남용 부회장은 최근 "한국 제조업의 가장 큰 문제는 높은 수준의 엔지니어들이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연일 경고한다. 현대자동차와 삼성중공업이 최근 인도에 기술연구소와 해양설비설계 센터를 각기 세운 것은 적정 수준의 기술 인력을 국내에서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용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청년 고용률은 지난해 23.8%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0개 회원국 평균(43.7%)의 절반 남짓하다. 이는 100명 중 24명만 취업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우리나라 전체 고용의 88% 정도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에선 구인난이 날로 심각하지만, 고학력 젊은이들이 교육과 취업·직업훈련까지 않는 '니트(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이 되는 탓이다. 국내 청년 니트족은 113만명(전경련 조사)이 넘는다.
   기능 경시는 대학 진학을, 대학 진학은 다시 취업난으로 이어지는 출구 없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셈이다. 대안은 기능인의 부와 명예 등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브라질 내 700여개의 국가기술연수원(Senai)은 항상 입학경쟁률이 10대1이 넘는데, 이는 학비 등 모든 게 공짜고 졸업후 장래가 든든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영국·아일랜드·아이슬란드 등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취약한 제조업 기반 때문이었다. 우리도 모두가 고(高)학력병에 빠져 기능 현장을 외면하고 기능직을 2~3류 직업으로 여긴다면, 미래는 암울하다. 생산현장에 우수한 젊은 엔지니어들이 몰려들 수 있도록 특단의 노력을 쏟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