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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식 칼럼] "막혀도, 막혀도 그래도 나는 간다"

도깨비-1 2009. 9. 3. 11:31


[최보식 칼럼] "막혀도, 막혀도 그래도 나는 간다"

 

연구원들이 나로호 실패의 '기술적' 원인을 분석할 때
국회는 '정책적' 타당성을 다시 따질 것이다
우주개발은 꿈을 먹는다
그러나 '외면하고 싶은' 현실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최보식 선임기자/ 조선일보 2009. 09. 02.
 

   지난 금요일 나로우주센터에 대통령이 왔다. 나로호 발사 실패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아직 조심스러운 자리였다. "천당과 지옥을 오간 기분" "원인 분석을 위해 노력"이라는 말들이 오갔다.
   이때 한 젊은 여성연구원이 일어났다. 대통령을 향해 "지난번에 뵈어서 저는 기억이 납니다만… 기억하시는지요?" 하고 먼저 물었다.
   "발사 날짜만을 기다리던 때, '발사를 하네 마네' 생각까지 들던 그때였습니다. 모든 연구원들이 개발을 하면서 한번쯤 포기하고 싶을 때 누구나 공감했을 법한 마음가짐을 시(詩) 한편으로 대신합니다."
   순간 상급자들은 겁없는 젊음에 긴장했다. 전혀 예정된 게 아니었다.

 

       "걸어가지 못하는 길을/

       나는 물이 되어 간다/

       흐르지 못하는 길을/

       나는 새벽안개로 간다/

       막혀도, 막혀도/

       그래도 나는 간다…"


   그녀는 시를 외면서 감정에 겨워 울었다.

   다른 연구원들도 울먹거렸다.

   대통령이 "박사님 전공이 뭐예요? 다른 분야를 하셨어도 잘했겠습니다"며 분위기를 바꿨다.

  "내가 젊었을 때 처음 자동차개발을 추진했는데, 자동차도 부품이 2만개가 넘습니다. 첫 자동차를 만드는 것도 그렇게 힘이 들었습니다. 어떤 분야보다 우주산업이 힘들고 종합적이라 생각하며…."


   이날 대통령 방문에 일부 참모들은 반대 의견을 표시했다. 성공한 것도 아닌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의 판단이 옳았다. '8전9기하자' 발언이나 이번 격려방문은 "MB가 지금껏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것"이라며 여론의 높은 점수를 받았다.
   세간에는 나로호 실패에 온정적이다. 몇몇 언론에서 실패 원인과 러시아 의존도에 대해 따졌지만, 사람들은 "그만큼 했으면 잘했다"는 쪽이다. 꼬리에 화염(火焰)을 내뿜으며 우주를 뚫고 올라가는 장면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봤기 때문이다. 그 뿌듯함과 대견함이 강하게 남아있는 것이다. 그래서 '절반의 성공'이라는 말까지 만들어졌다.
   나로호 발사는 우주개발의 관심과 우호적인 '여론'을 만드는 데는 확실히 성공했다. 하지만 과학의 잣대로 보면 나로호는 분명히 실패한 것이다. 우주궤도에 올려놓아야 할 인공위성을 잃어버리고도, "일부 성공"을 운운하는 것은 면목없는 노릇이다. 굳이 '절반의 성공'이 있었다면 그건 1단로켓을 맡은 러시아의 몫이고, 우리는 '절반의 실패' 쪽일지 모른다.
   실패를 딛고 일어서려면 '실패'를 '실패'로서 직시(直視)해야 한다. 실패를 감성(感性)에 호소하거나 미화하는 것은 '문학'은 될 수 있을지언정 결코 '과학'의 영역은 아니다. 괴롭고 쓰라린 실패여야 교훈이 있고 분발도 있다. "실패에서 더 많이 배울 수 있다"는 말은 현실에서 이런 분투가 있을 때만 겨우 가능할 뿐이다.
   나로호 발사에 진한 감동을 받은 세상 사람들에게 잔인할지 모르나, 이제 현실적인 문제를 말할 때도 됐다.

 가령 발사 과정에서 페어링(위성보호덮개) 한쪽이 분리가 안 돼 실종된 인공위성의 제작비만 약 110억원이다. 그 돈이 허공에서 사라진 셈이다. 보험을 못 들어 보상받을 데도 없다. 러시아측과의 계약에서는 2억달러가 들어갔다. 이런저런 것을 모두 합치면 '1조원의 프로젝트'였다. 그럼에도 나로호는 '러시아 것'이라는 수모를 두고두고 받았다.
   발사팀은 2018년까지 로켓1단 기술을 자립화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이 한 가지 예산만 1조5천억원이다. 우리나라 노인 전체를 위한 연간 복지 예산이나 아동 복지예산보다도 더 많다. 우주개발에는 사업예산의 숫자 맨 끝에 '0' 하나 더 붙는 게 마치 푼돈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성공도 꼭 보장하지 않는다. 경제적 계산으로는 우주로켓은 당장 멈춰야 할지 모른다.
   연구원들이 나로호 발사 실패의 '기술적' 원인을 분석하는 동안, 이번 국회에서는 '정책적' 타당성을 다시 따질 것이다. 요즘 '연구원 개인별 연구노트', '협정계약서', '대금지급 일정변경 내막', '보험사 입찰현황' 등 숱한 자료를 요구하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몇 트럭분의 자료를 실어날라야 할 것이다.
   화염을 뿜고 우주로 올라가는 로켓에 박수치는 동안, 그 뒤편에는 이런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 숨어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모르고 환호하는 것은 맹목이지만, 이 모든 걸 알고도 "꼭 가야 하는 길"이라고 격려하는 것은 진정한 용기다.
   우주개발은 '꿈'을 사는 것이다. 당장 우리보다 우리 아들딸의 나라, 그 아들딸의 아들딸이 살 나라가 세계 선진국의 대열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투자일지 모른다.

  "우리는 쉽기 때문이 아니라 어렵기 때문에 달(우주개발)을 선택했다. 이 목표는 우리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도전이고 미루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연설한 것이 1962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