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종 고서에 황성신문 등 옛 신문자료도 있어
최재훈 기자 /입력 : 2008.11.05 03:33 조선일보
'시일야방성대곡'이란 사설로 을사조약이 무효임을 전국민에게 알렸던 항일언론인 위암 장지연(韋庵 張志淵·1864.11.30∼1920.10.2) 선생의 발자취를 들여다볼 수 있는 '위암 장지연 문고'가 4일 영남대에서 문을 열었다.
영남대는 이날 오후 2시 경북 경산시 대동 영남대 중앙도서관 9층에서 사단법인 위암장지연선생기념사업회 이사 장재수(60·장손자)씨와 유족 장남수(77·장손녀)씨 등이 참석한 가운데 문고 개소식을 가졌다.
문고는 1958년 위암 선생의 유족에 의해 기증된 고서 250종, 704권으로 구성됐다. 위암 선생이 주필 및 사장으로 재직했던 '황성신문(1898년 창간∼1910년 폐간)'을 비롯해 국내 최초 지방지인 '경남일보(1909년 창간)', 격일간지 '시사총보(1899년 1월 창간∼8월 폐간)' 등이 포함돼 있어 우리나라 근·현대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대학측은 밝혔다.
영남대는 이날 오후 2시 경북 경산시 대동 영남대 중앙도서관 9층에서 사단법인 위암장지연선생기념사업회 이사 장재수(60·장손자)씨와 유족 장남수(77·장손녀)씨 등이 참석한 가운데 문고 개소식을 가졌다.
문고는 1958년 위암 선생의 유족에 의해 기증된 고서 250종, 704권으로 구성됐다. 위암 선생이 주필 및 사장으로 재직했던 '황성신문(1898년 창간∼1910년 폐간)'을 비롯해 국내 최초 지방지인 '경남일보(1909년 창간)', 격일간지 '시사총보(1899년 1월 창간∼8월 폐간)' 등이 포함돼 있어 우리나라 근·현대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대학측은 밝혔다.
- ▲ 4일 영남대 도서관 9층에서 문을 연‘위암 장지연 문고’에서 위암 선생의 장손자인 장재수(60·사진 왼쪽)씨와 장손녀 장남수(77·가운데)씨 등 유족들이 문고에 비치된 선생의 서적들을 살펴보고 있다. /영남대 제공
경북 상주 출신의 항일언론인이자 유학자인 위암 선생은 1898년 '황성신문' 창간에 참여한 뒤 이 신문 주필 겸 사장이 된 1905년 11월 사설 '시일야방성대곡'을 써 투옥됐다. 1906년 일제의 압력으로 황성신문 사장을 사임, 국권회복운동 단체인 '대한자강회'를 발기했으며,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다. 1909년 '경남일보' 주필이 된 뒤 매천 황현(梅泉 黃玹)의 절명시(絶命詩)를 실었다가 신문 압수 및 정간이라는 고초를 겪었고, 1921년 11월 1일 마산 자택에서 57세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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