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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 장지연 선생 '문고' 영남대서 4일 문 열어

도깨비-1 2009. 10. 22.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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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 장지연 선생 '문고' 영남대서 4일 문 열어
            250종 고서에 황성신문 등 옛 신문자료도 있어
 

 최재훈 기자 /입력 : 2008.11.05 03:33  조선일보

 
 
'시일야방성대곡'이란 사설로 을사조약이 무효임을 전국민에게 알렸던 항일언론인 위암 장지연(韋庵 張志淵·1864.11.30∼1920.10.2) 선생의 발자취를 들여다볼 수 있는 '위암 장지연 문고'가 4일 영남대에서 문을 열었다.

영남대는 이날 오후 2시 경북 경산시 대동 영남대 중앙도서관 9층에서 사단법인 위암장지연선생기념사업회 이사 장재수(60·장손자)씨와 유족 장남수(77·장손녀)씨 등이 참석한 가운데 문고 개소식을 가졌다.

문고는 1958년 위암 선생의 유족에 의해 기증된 고서 250종, 704권으로 구성됐다. 위암 선생이 주필 및 사장으로 재직했던 '황성신문(1898년 창간∼1910년 폐간)'을 비롯해 국내 최초 지방지인 '경남일보(1909년 창간)', 격일간지 '시사총보(1899년 1월 창간∼8월 폐간)' 등이 포함돼 있어 우리나라 근·현대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대학측은 밝혔다.
▲ 4일 영남대 도서관 9층에서 문을 연‘위암 장지연 문고’에서 위암 선생의 장손자인 장재수(60·사진 왼쪽)씨와 장손녀 장남수(77·가운데)씨 등 유족들이 문고에 비치된 선생의 서적들을 살펴보고 있다. /영남대 제공
이밖에 삼국시대부터 조선 인조 때까지 애국명장을 전기로 엮은 6권 3책의 목활자본 '해동명장전(1794년·홍양호 저)'과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최초의 서양법학서인 '공법회통(公法會通·1896년·윌리엄 마틴 역)', 조선 후기 문인 차좌일(車佐一)의 시집으로 조선후기 시풍의 변화와 경향을 보여준 '사명자시집(四名子詩集·1914년)', 중국 남송의 고승이자 대선사인 대혜(大慧) 보각선사(普覺禪師)의 불교서한집인 '대혜보각선사서(1568년·장흥 천관사 간행)' 등도 문고에 보관돼 있다. 위암 선생의 장손인 장재수씨는 "할아버지의 손때 묻은 책들이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훼손되고 사라질 위기에 처해 무척 안타까웠는데 영남대가 잘 보관해줘서 너무 고맙다"면서 "반백 년이 지나 이렇게 다시 빛을 보게 된 이 책들이 앞으로 근·현대사 연구 및 언론사 연구, 나아가 한국학 정립의 기초자료로 활용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당시 '시일야방성대곡'이 실려 일본이 압수해갔던 '황성신문' 원본도 일부 친척이 보관하고 있어 문고에 기증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경북 상주 출신의 항일언론인이자 유학자인 위암 선생은 1898년 '황성신문' 창간에 참여한 뒤 이 신문 주필 겸 사장이 된 1905년 11월 사설 '시일야방성대곡'을 써 투옥됐다. 1906년 일제의 압력으로 황성신문 사장을 사임, 국권회복운동 단체인 '대한자강회'를 발기했으며,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다. 1909년 '경남일보' 주필이 된 뒤 매천 황현(梅泉 黃玹)의 절명시(絶命詩)를 실었다가 신문 압수 및 정간이라는 고초를 겪었고, 1921년 11월 1일 마산 자택에서 57세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