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박정희 사후 30년… 이제 그를 歷史化하자

도깨비-1 2009. 10. 18. 15:49


박정희 사후 30년… 이제 그를 歷史化하자

 

● 朴正熙의 결정적 순간들
조갑제 지음|기파랑|806쪽|1만9000원
● 박정희 한국의 탄생
조우석 지음|살림|422쪽|1만6000원

 이한우 기자 / 조선일보  2009년 10월 16일

 

   오는 26일이면 박정희 전(前)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정확히 30년이 된다. 이제 거리를 두고서 그의 공과(功過)를 두루 포괄하는 역사적 평가가 가능한 때가 됐다. 어떤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과거의 인물을 현재화하는 작업이면서 동시에 사후(死後)에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그 인물의 영향력을 역사화(歷史化)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박정희 '문제'와 관련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후자, 즉 박정희 문제의 '역사화'다.
   역사화는 단절과 계승이 중첩되는 작업이다. 우선 감정적 단절이 필요하다. 박정희에 대한 과도한 찬반(贊反)도 감정에서 나온다. 박정희에 관한 충실한 사실들을 먼저 규명해야 이런 감정의 완화 내지 제거가 가능하다.
  
   친일논란·남로당 입당…
   정면에서 사실 파헤쳐
   감정 접고 다시 해석해야
   
   《朴正熙(박정희)의 결정적 순간들》은 국내 최고의 박정희 전문가로 꼽히는 저자의 13권짜리 《朴正熙 傳記(박정희 전기)》(조갑제닷컴)에서 박정희의 62년 생애를 극적이면서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62개의 핵심 장면을 뽑은 것이다. '13분의 1'이 주는 아쉬움은 있지만 박정희의 전체상(全體像)을 파악하는 데 큰 무리는 없다.
   출생을 둘러싼 일화, 지독하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 교사, 일본군, 그리고 광복 후 국군으로의 변신…이 과정에서 저자는 친일 논란이나 남로당 입당 경력 등을 우회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룬다. 만주에서 일본군으로 근무했던 박정희는 일본 패망과 함께 무장해제를 당했고 이후 귀국을 위해 북경의 광복군에 들어간다. "박정희는 광복된 뒤 광복군에 들어간 것에 대해서 쑥스러워했다고 전해진다." 남로당 입당은 좌익이었던 형 박상희의 죽음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 책에서 그려진 다른 시기를 보더라도 박정희가 좌익 이념이나 사상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는 징후는 찾을 수 없다.
   박정희에게 가장 두드러진 것은 천형(天刑)처럼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가난을 벗어나야 한다는 독기에 가까운 결의였다. 또 그 가난을 내려놓을 수 없는 등짐처럼 지고서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던 서민에 무한애정을 갖고 있었다. 박정희가 구술을 통해 자신의 삶과 생각을 밝힌 《국가와 혁명과 나》의 한 대목은 이렇다. '본인은 한마디로 말해서 서민 속에서 나고 자라고 일하고 그리하여 그 서민의 인정(人情) 속에서 生(생)이 끝나기를 염원한다.'
   조갑제의 박정희를 읽는 일은 학자나 지식인의 명분론과의 결별이다. 그 명분론이야말로 박정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하는 최대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박정희의 쿠데타를 '혁명(革命)'으로 해석하는 저자의 관점도 여기서 나온다. 다행스럽게도 '혁명' 이후 박정희는 자신의 구상과 약속을 대부분 구현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천지개벽에 가까운 발전을 이뤄냈고 한국인도 새로운 인간형으로 탈바꿈했다. 명분보다 실질을 중시하는 인간으로 바뀐 것이다. 박정희가 온갖 논란에도 많은 국민들의 가슴에 남아 있는 이유다.
   사실을 통해 감정을 씻어낸 다음 해야 할 작업은 계승, 즉 해석이다. 언론인이자 문화평론가로 활발한 글쓰기를 하고 있는 조우석의 《박정희 한국의 탄생》은 저자 자신의 젊은 시절 박정희관(觀)을 180도 수정하는 자기고백에 가깝다. 그 또한 명분의 벽이 그동안 박정희의 실체를 직시하지 못하게 한 최대의 방해물임을 깨닫고 이 작업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뜻밖에도 저자에게 이런 일깨움을 준 사람은 재야운동가 백기완이다. 박정희 정권의 최대 피해자 중 한 사람인 백기완은 오히려 학자나 지식인류의 허위의식이나 명분론에서 벗어나 있다. 저자가 전하는 백기완의 말이다. "박정희는 우리 같은 사람(정치적 반대자) 3만명만을 못살게 했지만,다른 정치인들은 국민 3000만명을 못살게 했다."
   저자는 유신체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긍정한다. "하나의 가설이긴 한데 세상에 유통되는 낡은 통념에 의문부호를 달기 위한 것이다. 즉 '박정희는 경제개발에는 성공했으나 독재를 해서…'라는 통념이란 것도 실로 우스운 일이다.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것만을 잘 지키고 있으면 개발독재나 장기집권도 없었고 경제개발에도 성공할 수 있었다는 가정도 한가한 소리다."
   박정희 사후 30년을 맞아 보다 다양한 시각에서 그의 면모들을 새롭게 발굴 해석하는 책들이 활발히 저술 출간되기를 기대한다.
  
   >>더 읽을 만한 책
   《朴正熙의 결정적 순간들》에 만족하지 못하고 13권짜리 《朴正熙 傳記》를 독파하는 독자라면 반대의 시각에서 최고권력자 박정희의 그림자를 볼 수 있는 김경재의 《혁명과 우상》(전5권·인물과사상사)도 일독할 필요가 있다. 한때 박정희의 최측근에 있다가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후 불행한 종말을 맞은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의 삶을 그린 이 책은 1980년대에 '김형욱 회고록'이라는 이름으로 4권까지 나왔고, 우여곡절 끝에 지난 7월에 제목을 바꿔 5권으로 완간됐다.
   조우석의 박정희 해석이 지나치다 싶어 좀 더 차분하게 인간 박정희, 지도자 박정희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으면 정치학자 고(故) 전인권의 《박정희 평전》(이학사)을 권한다. 이 책은 2006년 출간 당시 심리학적 상상력을 토대로 박정희를 '심리적 고아(孤兒)'로 해석해내며 박정희의 삶을 균형 있게 복원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