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ESSAY] 행복한 아버지 - 최불암(조선일보)

도깨비-1 2009. 10. 16. 10:30


[ESSAY] 행복한 아버지

촬영장에서 오며 가며 만나는 후배들에게
틈만 나면 이야기한다… 배우는 언제든
노크도 없이 불쑥 안방에 들어갈 수 있는
허락받은 손님이라고

   - 최불암 / 배우 / 2009년 10월 16일

 

   '전원일기'의 아버지 역을 처음 맡았을 때 내 나이가 만 서른아홉이었다. 예순다섯살의 농사짓는 아버지를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막막했던 기억이 난다.
   구멍난 러닝셔츠를 입고 질박한 토기그릇처럼 천상 농부인 전원일기 김 회장을 연기하는 동안 '국민 아버지'란 과분한 호칭을 얻었고, 그 사이 나는 그가 되었고 그가 곧 내가 되기도 했다.
   강직하지만 지극히 부드럽고 연민이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내 가슴 속에, 그리고 많은 시청자들의 뇌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어느덧 30년이 지나 또 다른 '아버지' 역할을 맡게 되었다. 요즘 드라마에서 내가 맡은 역은 충직함과 고집으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강만복'이라는 인물이다. 운전기사인 만복은 평생 모시던 회장님이 돌아가신 뒤 회장의 철부지 아들이 부도를 내고 무일푼으로 전락하자 오갈 곳 없는 그들 일가족을 자기 집으로 데려와 거둔다.
   덕분에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는 개성 강한 두 가족은 한 지붕 아래 둥지를 틀게 되고, 갈등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만복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일사불란하게 상황을 정리하고 두 가족의 화해를 이끌어낸다는 내용이다.
   삐걱거리는 가족의 중심을 잡아가는 대들보로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줄 요량이다. '전원일기'의 김 회장과는 또 다른 힘이 있는 아버지가 될 것이다.
   극 중 만복의 모습에서 평소 마음으로 그려온 아버지의 역할을 발견할 때면 더 없이 반갑다. 돈을 쓸 줄만 알았지 땀방울의 소중함을 모르고 자란 천방지축 안하무인 회장 아들네 가족들의 못된 버릇을 고치기 위해 만복은 급기야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돈 있는 사람의 비위는 끔찍이 맞추면서도 돈 없는 사람은 업신여기는 물질만능주의를 뜯어고치는 이른바 '사람 만들기 프로젝트'다. 약간은 과장되고 만화 같은 에피소드 속에서도 그들을 사람다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만복의 외고집 속에 녹아 있는 것은 다름아닌 애틋한 아버지의 마음이다.
   아버지, 그것은 '이름'이다. 부르는 것만으로도 존재가 되어주는 이름. 아버지는 '자리'다. 언제나 거기 있는 자리, 홀로 떠받치고 묵묵히 지키고 있는, 어쩌면 대들보와 같은 영원한 자리이다.
   때론 꾸짖고 때론 달래가며 철없는 자식 세대에게 잃어버린 가족애를 일깨우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가르치는 것은 천상 부모의 몫이요, 웃어른의 몫인 게다.
   나이가 들면서 연기의 순발력도 떨어지고 체력도 예전 같지않다. 새로운 작품을 앞두고서는 걱정부터 앞서는 게 요즘의 솔직한 심정이다. 게다가 젊은 후배들 사이에서 홀로 윗자리를 지키다 보면 연방 북적대는 촬영장도 외로울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 나이가 되었다.
   오랜 세월 함께 촬영장을 지키며 한국 드라마 역사를 일궈 왔던 내 또래 연기자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런 나를 또다시 카메라 앞에 서게 한 것은 바로 '아버지의 자리'란 말이 내 가슴을 뜨겁게 했기 때문이다.
   소위 '막장 드라마', 욕하면서 본다는 '나쁜 드라마'들이 안방을 꿰차는 것을 착잡한 마음으로 지켜봐야 했다. 아침은 물론 온가족이 바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모두 TV 앞에 둘러앉는 저녁시간대에도 불륜과 복수 그리고 분노의 기운으로 가득 찬 왜곡된 가족상의 드라마가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모으는 것이 참으로 딱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참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다. '막장 드라마'의 홍수 속에 웃으며 볼 수 있는 건강한 가족의 이야기가 못내 아쉬웠던 때 인간미와 가족애로 뭉친 집안의 '큰어른' 역할이 주어졌으니 말이다. 이런 행복한 기회를 내가 어찌 마다할 수 있으랴.
   'TV는 바보 상자'라는 일부의 편견 섞인 표현에 나는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다. 핵심은 TV를 통해 시청자들을 만나는 프로그램의 품질이다. 건강한 드라마는 성능 좋은 공기정화기처럼 정서를 순화시킨다는 믿음을 갖고 나는 여태껏 온몸을 던져 연기를 해왔다.
   자라는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칠판 같은 역할도 한다. 아이들은 좋은 드라마를 통해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깨닫고 다른 사람들과 화합하는 삶의 기쁨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
   화해와 용서를 가르치고 인간미와 가족애를 배우는 또 다른 의미의 교육이 그 안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그래서 TV야말로 사회적 공기를 바꿀 수 있는 가장 미래지향적인 매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배우는 행복한 존재인 것이다.
   촬영장에서 오며 가며 만나는 후배들에게 틈만 나면 이야기한다. 배우는 언제든 노크도 없이 불쑥 안방에 들어갈 수 있는 허락받은 손님이라고. 선택받은 자로서 자부심은 물론이고 안방을 내어준 시청자에 대한 예의로라도 나쁜 드라마에 배우의 영혼을 팔지는 말자고.
   배가 고파도 도(道)를 알아야 한다.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심신이 지쳐 있을 국민들에게 웃음으로 작은 위안을 주고, 무거운 어깨를 다독이고 따뜻이 손잡아주는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요즘 나는 소박한 행복을 느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