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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호] 박정희와 통음했던 첫 경제수석 김학렬

도깨비-1 2009. 9. 3. 11:40


[대한민국 제1호] 박정희와 통음했던 첫 경제수석 김학렬


 주용중기자/ 조선일보 09. 09. 02.
 

   박정희 대통령은 가끔 늦은 밤에 서울 혜화동 김학렬(1923~1972)의 집을 찾았다. 두 사람은 콩나물국에 동동주를 마시며 경제를 논했다. 취하면 '황성옛터' 합창이 터졌다. 김학렬의 부인이 눈총을 주면 박 대통령은 "이봐요. 자네 바깥양반은 내 과외 선생이야. 내가 경제를 배우러 과외 선생 집에 오는데 뭐가 잘못됐어"라며 웃었다('주식회사 대한민국 CEO 박정희'에서 인용). 사람들은 "정치는 이후락, 경제는 김학렬"이라 했다.
   김학렬은 1968년 말 청와대 경제 제1수석으로 임명됐다. 교통·보사 등을 담당하는 경제2수석은 신동식이 맡았다. 청와대에 경제수석이 생긴 건 그때가 처음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경무대에는 비서가 10명도 안 됐다. 경제담당이라 할 만한 비서가 따로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경제 관료들은 대한민국 경제수석 1호로 김학렬을 꼽는다. 김학렬은 재무부 장관에 이어 청와대에서 정부 정책을 총괄하는 정무수석으로 3년 일한 뒤 경제1수석으로 옮겼다. 경제 개발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의지가 그만큼 컸다. 김학렬은 1969년 6월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영전했고, 박태준 박정희 김학렬 세 사람(사진·왼쪽부터)이 포항 1기 고로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김학렬에게서 바통을 받아 4년 동안 경제수석으로 일한 정소영(77)씨는 "그는 정말 머리가 비상한 분이었다"고 했다. 1950년 제1회 행정고시에 수석으로 합격해 '행정고시 넘버원'으로 불린 사람이 김학렬이다.
   박 대통령은 1970년대엔 경제수석을 1·2·3까지 세명을 둔 적도 있다. 경제1수석은 상공·교통·체신·농림·건설·재경을, 경제2수석은 과학기술·중화학공업을, 경제3수석은 관광진흥을 담당했다. 1971년부터 1979년까지 경제2수석을 지낸 오원철(81)씨는 "당시는 청와대에서 정책 기획부터 집행까지 철저하게 완수하는 책임을 졌다"고 했다. 그만큼 청와대 경제수석이 일선 경제부처와 현실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했다. 그런 경제수석의 힘은 박정희 시대 이후 갈수록 줄어들었다.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는 말을 들었던 김재익, 노태우 대통령 시절 이미 금융실명제를 강력하게 밀어붙였던 문희갑, 추진력과 고집으로 정평이 났던 김종인 정도가 '센 수석'으로 꼽혔다.
   8월 31일 청와대 개편에서 윤진식 경제수석이 정책실장을 겸하게 됐다. 윤 수석은 2003년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냈으나 작년 6월 차관급인 경제수석을 마다하지 않았다. 경제계에서는 그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후임이 될 것이라는 말들이 벌써부터 나온다. 그렇게 되면 윤 실장은 김학렬의 궤적을 잇게 된다. 다만, 윤 실장과 이 대통령이 김학렬과 박 대통령처럼 서로 '통음'하는 사이인지는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