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상대방도 춤추게 하는 협상의 10계명(조선일보)

도깨비-1 2009. 7. 30. 10:18


상대방도 춤추게 하는 협상의 10계명

[Cover Story] CEO·변호사… 7000여명 수강한 IGM 협상 스쿨을 가다
상대 마음 저 깊은 곳 '숨은 욕구' 건드려라


 


 

   #1. 강사의 말
   "자, 다들 눈 감으세요. 제한시간은 30초입니다. 지금부터 옆에 계신 분과 팔씨름을 합니다. 상대방 손이 테이블에 닿을 때마다 1점씩 얻습니다. 가장 점수를 많이 얻은 두 분께 상품을 드립니다. 시~작!"
   몇년 만의 팔씨름인가? 옆 사람 손을 잡고 용을 써본다. 40대인 상대방 힘도 만만치 않다. 쉽지 않은 승부. 1점 얻기도 어렵다. 그런데…. 저쪽 어디선가 '쿵쿵쿵쿵쿵쿵쿵…' 뱃고동 소리가 들려온다.
   
   팔씨름 이기면 득점하는 게임
   서로 이기려 하면 점수 못올려
   번갈아 이긴 팀이 최고 득점
   
   협상은 씨름이 아닌 댄스
   서로 윈윈의 이익 얻을 수 있어
   
   "그만!" 강사의 게임 종료 선언. 금빛 포장의 초콜릿은 '무려' 32점씩을 사이좋게 획득한 두 사람에게 돌아갔다. 어떻게? 두 사람은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승패를 주고받으며 두 사람 손과 테이블의 충돌음으로 '뱃고동'을 울려 퍼뜨렸다. 이때 폐부를 찔러오는 강사의 설명.
   "여러분, 제가 이기면 1점 드린다 했지, 팔씨름 진다고 감점한다고는 하지 않았죠? 그걸 읽어낸 두 분은 부지불식간에 멋진 협상을 하신 겁니다. 이렇듯 협상은 상대방을 넘어뜨려야만 이기는 '씨름'이 아닙니다. 서로 윈윈(win-win)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댄스'입니다."
   아이고…. 덜 떨어진 나는 그만 댄스 파티장에 샅바 차림으로 나타나 씨름을 했구나!
   #2. 영화 '선생 김봉두'의 한 장면이 스크린에 흐른다.
   두 농부가 고성(高聲)과 삿대질과 욕설을 교환하며 격하게 싸우고 있다. '(물건을 운반해야 하니) 경운기로 이 길을 지나가야 하네', '(그러면 길 위에 올려놓은 내 호스가 찢어지니) 절대 경운기를 지나가게 할 수 없네' 하는 다툼이다.
   이때 두 농부를 진정시키는 선생 김봉두(차승원)의 멋진 갈무리. "그러니까 남진이 아버님은 (비닐) 하우스에 물을 대야 하니까 호스를 이 길에 꼭 놓아야 되고, 성남이 아버님은 (물건 운반을 위해) 경운기가 꼭 이 길로 지나가야 한다는 말씀이잖아요? 그것만 해결되면 되는 거잖아요?"
   선생 김봉두는 삽을 들고 땅을 파고는 호스를 묻고 흙으로 덮는다. 그렇다. 이제 경운기가 지나가도 호스가 찢어질 염려는 없다.
   "됐죠?" '중재자 김봉두'는 의기양양하게 자리를 뜬다. 영화를 보던 수강생들이 일순 조용한 탄식을 내뱉는다.
   강사의 해설. "남진 아버지가 '경운기의 이 길 통과를 허락 못한다'고 핏대를 세우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요구(position)'일 뿐입니다. 마치 물 위로 솟아오른 빙산의 일각과 같은 거죠. 중요한 것은 물 밑에 잠겨 있는, 즉 상대의 마음 속에 잠겨 있는 진정한 '욕구(interest)'입니다. 여기선 '비닐하우스에 물을 대고 싶다'는 게 욕구죠. 즉 호스가 찢어지지만 않는다면, 이 길 위로 경운기가 지나가든 탱크가 지나가든 남진 아버지는 상관 없는 거죠? 그 '욕구'를 정확히 읽어낸 김봉두 선생은 '땅을 파서 호스를 묻고 난 후 경운기는 통과시킨다'는 '창조적 대안(creative option)'을 만들어 협상을 타결시킨 것입니다."
   최근 경영인들 사이에 협상 노하우 공부가 붐이다. 세계경영연구원(IGM)의 '협상 스쿨'은 명강좌 중 하나로 꼽힌다. Weekly BIZ의 인기 코너 'Case Study'의 단골 메뉴 중 하나도 바로 이 연구원의 '협상 이야기'다. 이 강좌를 듣고 난 후 남용 LG전자 부회장은 "협상은 골프와 같아서 체계적으로 배우면 결과가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걸 확실히 느꼈다"고 했다. 김신배 SK C&C 부회장은 "짧은 시간에 협상 원리를 효과적으로 체득했고, 협상을 알고 나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길이 명확히 보인다"고 했다. 대기업의 CEO·임원·중견 간부나 주요 로펌의 변호사, 고위 공무원 등 무게 있고 다양한 수강생의 누적 숫자가 7000명을 넘겼다.
   기자도 지난 14~15일 이틀간 열린 이 강좌에 참여했다. 강사진은 IGM 최철규 부원장(영국 LSE 경영학석사), 이계평 이사(서울대 경제학박사·전 컨설턴트), 신철균 교수(KAIST 산업공학박사·전 삼성SDS 전략기획그룹장)였다.
   위의 두 '#1', '#2'는 바로 16시간에 걸쳐 이어진 이 코스의 초반 풍경들이다. 그리고 이 두 풍경이 주는 교훈은 협상의 시작이자 끝이고, 기초이자 핵심이었다.
   1일차 강좌의 초반 5시간은 간단한 모의 협상을 곁들이면서 '협상의 10계명'을 익히는 과정이었다. 후반 3시간은 '제대로 된 모의 협상'에 할애됐다. 5명씩 협상팀을 이뤄 1시간 반 동안 전략을 짠 후 상대방의 5인조 팀과 1시간 반 동안 모의 협상을 벌였다. '쇼핑몰을 짓고 있는 부동산 개발사'와 '이곳 입주를 검토하는 할인점'을 대표해 임대료와 임대기간·조건에 대해 밀고 당겼다.
   이 협상 장면은 고스란히 비디오로 녹화됐고, 2일차 후반부 3시간의 '피드백' 수업 교재로 활용됐다.(2일차 전반부 5시간은 '실제 협상 전략과 협상 준비서 작성')
   피드백 수업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오랜만에 맞닥뜨린 스스로의 옆모습과 목소리는 어색했고, 아둔함과 해망쩍음은 당혹스러웠다. 얼굴은 화끈거리다 못해 뜨겁게 달아올랐다. '내가 저렇게 빠른 속도로, 남들이 이해하기도 힘들게 말하는구나', '협상에서 거짓말 한번 잘못 하면 두고두고 욕보는구나' 하는 깨달음만으로도 수강의 보람은 본전을 넘어섰다.
  
■협상의 10계명
   ①상대방 '요구(position)'에만 얽매이지 말고 '욕구(interest)'를 찾아내라.
   가장 유명한 '콜라 비유'.
   뜨거운 여름날, 땀을 닦으며 우리 가게로 들어온 손님이 "콜라 주세요" 한다. 그런데 이런…. 콜라가 다 팔렸네. 이때 "콜라 다 떨어졌네요"라고만 응답하면 그 손님은 나간다. 협상 결렬이다.
   여기서 '콜라'는 그의 요구일 뿐이다. "콜라는 떨어졌지만, 시원한 사이다는 있네요"라고 답하면 협상은 타결될 가능성이 높다. '목이 마르니 시원한 청량 음료수를 마시고 싶다'는 손님의 욕구를 찾아내고 부응했기 때문이다. 마치 선생 김봉두가 남진 아버지의 욕구를 읽어냈듯이….
   ②양쪽 모두를 만족시키는 창조적 대안(creative option)을 개발하라.
   1967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완승했다. 이집트는 항복하고 시나이 반도를 홀랑 빼앗겼다. 이후 평화협상은 난항. 시나이 반도가 생선 가시처럼 협상의 목에 걸렸다. 두 나라 모두 시나이 반도 반환이란 원칙에는 공감했지만, 이집트는 "100% 반환"을, 이스라엘은 "일부 반환"을 요구하며 11년간 평행선을 그었다. 1978년, 사이러스 밴스(Vance)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홀연 나타나 탁월한 협상가로 이름을 남긴다.
   밴스 장관은 두 나라의 '욕구(interest)'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이집트는 왜 그리 '100% 반환'에 집착하지? 시나이 반도는 자원도 없고 비옥하지도 않은데…. 알고 보니 이집트의 욕구는 "6일 만에 항복하며 실추된 자존심을 '100% 반환'으로 회복시키겠다"는 것이었다. 반면 이스라엘의 욕구는 '군사 전략적 완충'이었다.
   밴스 장관이 내놓은 '창조적 대안(creative option)'은? "시나이 반도를 100% 반환해 이집트 자존심은 세워주고, 대신 UN 평화유지군을 주둔시켜 '군사적 완충지대'를 만들자." 11년간 표류한 협상은 깔끔하게 타결됐다. 20세기 최고 성공작이라는 '캠프 데이비드 협상'이다.
   
   상대방 숨은 욕구 잘 파악해야
   창조적 '윈·윈 대안' 나와…
   모르겠다면 질문하고 질문하라
   
   ③상대방의 숨겨진 욕구를 찾아내 자극하라
   창조적 대안은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는 상큼한 해법. 하지만 늘 찾을 수는 없다. 그럴 경우는 어떻게 할까? 손해 보는 쪽의 '숨겨진 욕구(hidden interest)'를 찾아내 건드릴 필요가 있다.
   1940년대 유명한 육체파 여배우 제인 러셀과 저명한 영화 사업가 하워드 휴스의 전설적 협상 이야기.
   러셀은 1년 전속료로 당시로선 어마어마한 100만달러를 요구하며 요지부동이었다. 이 가격에 사실상 타결되는 상황. 휴스는 막판에 '5만달러씩 20년 분할 지급하겠다'고 제안했다. 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60만달러로 깎는 셈. 그러나 손해 보는 듯한 러셀은 이를 받아들였다. 다음과 같은 휴스의 설득 논리가 러셀의 '숨겨진 욕구'를 성공적으로 자극했기 때문이다.
   "일시불 100만달러가 당장이야 좋겠지. 하지만 몽땅 날릴 수도 있어. 매년 5만달러가 들어오면 20년 동안 안심할 수 있잖아?" ('미래 불안 회피 욕구' 자극)
   "(지급 방식은 발표하지 않으니) 어차피 발표는 '전속료 100만달러'라고 할 거야. 당신은 순식간에 전례 없는 '100만달러 수퍼스타'가 되는 거지." ('명예욕' 자극)
   "일시불 100만달러에는 세금이 절반 가까이 붙어. 왜 그걸 내?" ('납세 거부감' 자극)
   휴스, 참 머리 좋다. 사람에게는 이렇듯 명예·안전·출세·과시·공평·인정(認定)·안락·가족·인간관계 등을 향한 다양한 욕구가 숨어 있다.
   ④윈윈(win-win) 협상을 위해 노력하라
   좋은 협상, 윈윈의 협상은 좋은 뒷맛을 남긴다. 반면, 최악의 협상은 상대방을 쥐어짠 끝에 타결되는 경우. 당장은 내가 이득을 본 것 같지만, '협상에서 쥐어 짜였다'고 느끼는 상대방은 기회만 오면 복수하겠다고 칼을 갈게 마련이다. 심지어 계약을 제대로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 "쥐어짜기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이므로 '창조적 대안'과 '숨겨진 욕구'를 적극 활용해 반드시 윈윈의 결과를 만들라"는 조언이다.
   
   협상은 흥정과 다르다
   객관적 데이터와 논거로
   상대방을 납득시켜라
   
   ⑤서로 인정할 객관적 기준부터 먼저 정하라
   객관적 기준(standard)을 정하지 않은 채 막연하게 "1억원 깎자", "못 깎는다"고 다투면 '협상'이 아니라 '흥정(bargaining)'이다. 시세, 장부 가격, 비슷한 규모 기업의 시가총액, 비슷한 협상의 최종 타결가, 공정한 제3자 전문가의 평가액 등을 서로 인정하는 객관적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아파트를 사고판다고 치자.
   흥정; "5억에 팔겠다"와 "4억에 사겠다"던 두 사람이 "그럼 반씩 양보해서 4억5000만원에 하자"고 타결.
   협상; 역시 "5억"과 "4억"을 부른 집주인과 원매자가 인근 시세, 비슷한 평형의 최근 매매가, 조망(眺望), 교통 같은 객관적 기준을 놓고 두루 검토한 후 "4억5000만원"으로 타결.
   에이, 결국 똑같은 결론이구먼. 협상한 쪽이 괜히 시간만 들였잖아? 이런 의아심에 강사는 다음처럼 답했다.
   "설사 결과가 똑같더라도, 객관적 기준을 놓고 협상을 거친 쪽은 결과에 훨씬 더 '수긍(首肯)'과 '납득(納得)'을 합니다. 수긍을 하면 협상에 대한 만족도가 올라가고, 결국 윈윈의 좋은 협상이 되는 것이죠. 객관적 기준을 공유하고 협상한 쪽이 단순히 흥정만 한 쪽에 비해 더 적절하고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할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은 물론이고요.'
   ⑥합리적 논거를 지렛대로 활용하라
   무작정 윽박지르고 고압적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터프(tough)한 협상가'라고? 절대 아니다. 스스로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합리적 논거'를 많이 장착한 사람이 진정 강력한 협상가. 그래야 협상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다. 합리적 논거란 객관적 데이터, 권위 있는 이론, 관습, 전통, 내규 등을 뜻한다.
   똑같이 100억원에 팔더라도, 합리적 논거를 많이 들이댄 협상가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100억원이 결코 비싸지 않군' 하는 인식(認識)을 갖게 하고 높은 만족도로 도장을 찍게 만든다. 협상이란 결국 서로 상대방의 인식을 바꿔내는 과정.
   
   협상 결렬 때 대안이 있는가
   '배트나'는 강력한 협상 무기
   없다면 만들어내기라도 하라
   
   ⑦배트나(BATNA)를 최대한 활용하라
   강사의 조크. "세상에서 가장 협상하기 어려운 상대는 아들 딸이랍니다. 왜냐? 아들 딸은 대신할 차선의 대안(代案)이 없잖아요? 처나 남편 같은 배우자는 대안을 찾을 가능성이 조금은 있잖아요?"
   수강생들의 폭소가 터진다. 배트나(Best Alternative To Negotiated Agreement)란 '협상이 결렬될 경우 대신 취할 수 있는 차선의 대안'을 뜻한다. 협상력을 키우는 강력한 무기. 이를테면 회사와 연봉 협상 중인 김 차장이 얼마 전 경쟁사로부터 '부장으로 오라'는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다면 훌륭한 배트나를 손에 쥔 셈이 된다.
   훌륭한 협상가는 배트나를 잘 키운다. 배트나가 없으면 만들어내기도 한다. 경쟁사 지인을 통해 스카우트 제의가 있는 듯이 슬쩍 흘리는 식으로 말이다.
   좋은 배트나가 있다면? 협상 상대방에게 알리는 게 좋다. 다만 '관계'가 매우 중요한 협상이라면 배트나를 드러냈다가 상대 감정을 상하게 해 낭패를 볼 수 있다. 또 배트나를 알릴 때에는 본인이 노골적으로 밝히기보다는, 상대방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3자를 통해 점잖게 알려지게 하는 편이 좋다.
   자신의 배트나가 좋다면? 협상의 시간을 끌어도 좋다. 배트나가 나쁘면? 되도록 협상을 빨리 끝낸다.
   ⑧좋은 인간관계를 맺어 협상의 토대로
   상대방이 오랜 협상 끝에 합의해놓고는, 오늘 갑자기 "원점부터 재협상하자"고 나온다.
   "이분이 왜 이러시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이렇게 받아치면 하수(下手)다.
   "저는 당신이 약속을 쉽게 번복하는 분이 아닌 것을 잘 압니다. 그런 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니 뭔가 사정이 있다고 짐작이 갑니다. 하지만 재협상은 불가능합니다. 두 회사의 장기적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합의 사항은 유지하되 다른 사안에서 절충하시죠."
   이렇게 이슈와 사람을 분리하는 협상가가 고수(高手). 이슈에는 강하게 나가더라도, 사람에게는 반드시 부드럽게 하라. 협상 시작 전에 되도록 차 한잔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협상 과정에서는 상대방을 명예로운 사람으로 만들라. 그래야 좋은 인간관계가 구축되고 협상도 잘 흘러간다. 그렇다고 스스로를 너무 꾸미려고 하면 역효과.
   강사의 충고. "모를 때는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세요. 화가 난다면 너무 숨기려고만 하지 말고 화난 모습도 보여 주세요. 자기 본연의 모습에 충실할 때 가장 좋은 인상을 줍니다."
   ⑨질문하고 질문하고 또 질문하라
   하버드 대학의 한 놀라운 연구 결과. 협상 과정에서 상대방 욕구(interest)를 알아내기 위한 질문을 단 한 번도 하지 않는 경우가 무려 전체의 50%나 된다. 왜 그럴까?
   상대방의 욕구를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질문을 하면 무지(無知)와 불평을 드러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 다 큰 착각이다. 풍부한 질문을 통해 상대방의 욕구를 알아내야 협상에서 성공한다.
   질문도 잘해야 한다. "가격을 3%만 깎아주시면 안 돼요?"라고 질문하면 "안돼요"라는 짧은 대답으로 대화가 끊기기 마련. 이렇게 '예스 노'를 묻는 '닫힌 질문'은 협상을 교착으로 근접시키기 쉽다.
   "가격 인하를 하면 어떤 점이 곤란해지시는 건가요?"처럼 대답을 길게 이끌어내는 '열린 질문'을 해야 한다. 그래야 대답 속에 상대방의 정보가 나오고 '창의적 대안'이나 '숨은 욕구'를 찾아낼 단서가 보인다.
   질문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경청(傾聽)의 미덕. 듣고 듣고 또 들어야 협상에서 유리하다. 상대방의 말을 끊지 말고, 충분히 공감(共感)하면서 들어라. 잘 듣고 고개만 잘 끄덕여도 좋은 인상을 주고 협상에 유리해진다. 공감과 동의는 다른 것이니, 공감에는 인색하지 말라.
   상대방 질문에 동의하기 어려울 때의 화법.
   "아니죠, 왜냐하면…" 식으로 부정(否定)을 내세우지 말라. 대신 "맞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식으로 긍정(肯定)을 일단 내세운 후 설명을 하라. 상대방과 기분 좋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요령이다.
   ⑩준비하고 준비하고 또 준비하라
   "단체 협상을 할 때 가장 괴로운 순간은 언제일까요?"
   강사의 질문에 침묵이 흐른다.
   "옆에서 헛소리할 때입니다. 아군이 적군처럼 어이없는 얘기를 할 때 가장 힘들죠."
   폭소가 터진다.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뭘까요?"
   다시 침묵이 흐른다.
   "준비, 준비, 철저한 준비입니다."
   너무 뻔한 이야기 아닌가?
   "뻔하지만, 준비야말로 압도적으로 중요합니다. 우리와 상대방의 요구, 욕구, 창조적 대안, 숨겨진 욕구, 객관적 기준, 배트나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협상 준비표를 통해 예습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아군의 헛소리와 헛발질은 바로 준비 부족에서 오는 가장 치명적 상황이거든요." ▣

 


 장원준 기자(조선일보 2009/ 07/ 24)


 

 
 상대 공세에 허 찔린 우리 팀
'위장 카드' 잘못 썼다 진땀만…
 협상은 갈수록 꼬여만 가고

● '모의 협상' 실제로 해보니…


 


 

   드디어 열심히 공부한 협상 10계명을 기초로 한 모의 협상 시간.
   'H시에 쇼핑몰을 짓고 있는 KS 개발'과 '이 쇼핑몰 입주를 검토 중인 대형 할인점 G마트'가 가상(假想)의 당사자. 임대료와 임대기간·조건을 놓고 협상한다.
   쇼핑몰 입지는 접근성도 좋고 H시의 유일한 독점적 할인점이 가능한 곳이다. H시는 착실하게 성장하는 도시이고, 신성자동차 공장·연구소 인력이 매우 중요한 소비층을 형성한다. 그런데 신성차 공장·연구소가 중국으로 이전한다는 미확인 소문이 있다. 그럴 경우 H시 수요 기반은 많이 흔들린다. 여기까지는 서로 다 아는 정보.
  
● G마트 입장(KS개발은 모른다);
   우리는 이 자리가 탐난다. 협상을 타결시켜 H시 할인점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고 수도권 점유율도 높이고 싶다. 다만 신성자동차 이전 리스크가 무섭다. 원래 우리는 장기 계약을 선호하지만, 여기서는 신성차 이전 리스크 탓에 단기 계약을 맺으려 한다. 다만 임대 중도해지권을 조건으로 걸 수 있다면 장기 계약이 더 유리하다.
● KS개발 입장(G마트는 모른다);
   G마트의 브랜드파워 때문에 임대료는 좀 낮게 받더라도 장기 임대를 하고 싶다. G마트는 사실 꼭 잡아야 할 황금 입주자다. G마트가 주(主)세입자로 입주한다면 수도은행도 대출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신성차 리스크에 따른 임대 중도해지권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기자는 'KS 개발' 팀에 속했다. 기본적으로 협상팀은 5개 역할로 구성된다. 수석 협상대표인 '리더(leader)', '굿가이(good guy)'역의 참모, '배드가이(bad guy)'역의 참모', 전문가(컨설턴트), 법률 자문을 맡는 변호사 등이다.
   리더는 감독·연출·각본 등을 다 맡는 최고 책임자. 굿가이는 긍정적 이미지로 상대방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상대방의 욕구를 캐내는 역할을 맡는다. 배드가이는 까칠한 분위기로 상대방 주장의 왜곡이나 과장을 캐묻는 역할이다. 전문가(컨설턴트)는 협상의 흐름을 주목하다가 불리한 상황이 생길 경우 "잠깐 쉬었다 하자"고 맥을 끊는 게 주 임무이다. 외부 인사가 주로 맡는다. 변호사는 법률적 검토와 책임을 진다.
   기자는 KS개발의 재무 상무로서 '배드가이' 역할을 맡았다. 우선 자기편끼리 머리를 맞댄 전략 회의. 우리 KS개발 팀은 조금 위험한 전략을 검토했다.
   "소규모 세입자들과 현재까지 맺은 임대료 계약의 평균치가 2만5000원이지만, 이를 조금 부풀려 보자. 그러면 이걸 근거로 G마트가 낼 임대료를 높일 수 있다. 최소한 우리가 생색내며 양보할 공간이 커진다. 그리고 우리가 단기 계약을 선호하는 척하는 건 어떨까? 우리는 정확히 모르지만 어쩌면 G마트는 장기계약을 선호할지 모른다. 그러면 우리로서는 못이긴 듯이 단기 계약을 하고 싶지만 양보하는 척하면서 다른 양보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임대료는 여러 조건을 감안할 때 평당 1만5000원 이상을 받도록 하자. 물론 중도 임대해지권은 절대 수락할 수 없다."
   마침내 협상이 시작됐다. 우리 팀은 초반부터 삐걱거렸다. 상대방의 공격적 질문에 당황한 우리 팀 리더는 그만 "소규모 세입자와 현재까지 계약한 임대료 평균은 2만5000원"이라고 순순히 자백해버렸다. 상대방 팀은 '이게 웬 떡이냐'며 득의만만한 표정. 역시 준비가 철저하지 못하면, 아군 쪽에서 헛발질이 나오고 협상은 힘들어졌다.
   상대방에서 "KS건설은 장·단기 계약 중 어느 쪽을 원하시냐"고 물어왔다. 기자는 "G마트는?" 하고 되물었다. 상대방 임원이 "장기 계약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오케이. 위장 카드를 써도 되겠군. "우리는 단기 계약을 선호한다"고 기자는 호방하게 외쳤다.
   5분 휴식을 갖고 다시 협상장에 모였다. G마트 리더의 말. "KS건설이 단기 계약을 선호하신다면, 저희도 일단 5년 정도 단기 계약을 맺도록 하지요. 만약 중도 임대해지권만 보장해주신다면 장기 계약을 하겠습니다."
   머리를 돌로 맞은 것 같았다. 우리 팀 모두 아연실색. 이제 와서 논리를 어떻게 바꾼단 말인가? 기자는 얼굴이 달아오르고 협상 내내 이 족쇄를 벗어내느라 고생해야 했다.
   2일차의 녹화 장면을 보는 피드백 수업에서는 이 장면을 보면서 부끄러운 나머지 고개를 묻고 말았다. "쓸데없이 거짓말을 하거나 사실을 부풀리다가 잘못되면 전체 협상을 망칠 수 있으니, 웬만하면 거짓말이나 과장은 하지 말라"는 강사의 조언이 피부로 와 닿았다.
   G마트 배드가이는 또 임대료 협상의 초반에 "평당 1만원"을 제안했다. 여러 가지 조건으로 볼 때 심하다 싶을 정도로 싼 가격이었다. 하지만 결국 우리 팀이 최종적으로 체결한 평당 1만2000원 선은 지금까지 똑같은 모의 협상을 한 모든 팀을 통틀어 최저에 가까웠다.
   왜 그랬을까? '앵커(anchor) 효과' 때문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Weekly BIZ 독자들은 댄 애리얼리(Ariely) 듀크대 교수와의 1월4일자 커버스토리 인터뷰로 이미 친숙한 바로 그 개념이다. 즉 사람은 '첫 제안'이나 '첫 숫자'에 생각보다 훨씬 큰 심리적 영향을 받게 되므로, 최종 타결 액수는 처음 제시된 숫자 주변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협상에서는 웬만하면 제안을 먼저 하는 편이 좋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단 자신의 정보가 상대방보다 훨씬 부족하다고 판단될 경우엔 상대방의 제안을 먼저 듣는 편이 좋을 수 있다.
   앵커 효과를 노리고 선제안을 할 경우에는, 이왕이면 자신의 편에 유리한 쪽으로 '통 크게' 숫자를 부르라는 충고다. 소위 '에임 하이(aim high)' 전략이다. 그래야 협상의 주도권을 쥐고 유리한 결론을 도출할 가능성이 높고, 양보를 할 여력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단 '에임 하이'를 한다고 논리적 근거도 없이 턱없는 조건을 제시하면 신뢰가 깨지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은 주의하라는 지적이다. G마트는 '에임 하이' 전략을 공격적으로 구사했고, 우리 팀은 1만원이라는 '앵커'에 휩싸인 나머지 협상을 어렵게 끝낸 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