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박철순 등)

[스크랩] <故 조성옥, 주연보다는 조연에 가까웠던 사나이>

도깨비-1 2009. 7. 5. 10:07
뉴스: <故 조성옥, 주연보다는 조연에 가까웠던 사나이>
출처: 야구타임즈 2009.07.05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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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 야구타임스 | 김현희 객원기자] 야구는 9명이 하는 스포츠이지만, 100경기를 넘게 치르는 페넌트레이스에서는 9명의 선수들로만 1년을 꾸려갈 수는 없다. 따라서 이들을 뒷받침해 줄 백업 요원의 존재는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좋은 백업 요원의 존재는 자칫 현실에 안주할 수 있는 주전 선수들에게 강력한 '주사약'이 되기도 한다.

1982년 세계 야구선수권 대회 우승 멤버 중 하나였던 故 조성옥(48) 동의대학교 감독은 프로 현역 시절, '주연'과는 거리가 멀었던 선수였다. 12년의 선수생활 동안 100경기 이상 출장한 적은 3번에 불과했으며, 단일 시즌 최다 안타 기록도 74개(1986년)에 불과했다. 그는 '조연'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팀이 대타를 필요로 할 때마다 타석에 들어섰고, 이에 부응하기 위해 악착같이 1루 베이스로 살아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김용철, 김용희, 김민호, 김응국 등 스타플레이어들이 가득했던 당시 롯데 자이언츠에서 조성옥은 팀을 이끌던 또 하나의 '조연배우'였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두 번 경험한 사나이

부산 대연초등학교를 시작으로, 동성중-부산고-동아대를 나온 조성옥은 1982년 세계 야구선수권대회에서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으며 팀의 우승을 도왔다. 당시 불과 21세였던 조성옥은 실업팀 상업은행을 거쳐 1984년에야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다. 홍문종, 김용철, 김용희, 유두열, 김민호 등 당대 최고의 선수들과 한솥밥을 먹었던 조성옥은 주전과 백업을 오가며 롯데의 후기리그 우승에 공헌했다. 그리고 그 해애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하며, 최고의 데뷔년도를 보냈다.

이후 조성옥은 팀이 필요로 할 때마다 그라운드에 나섰다. 아무런 이유 없이,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 했던 조성옥은 '크게 눈에 띄지 않았으나 팀에 반드시 필요했던 선수'였다. 그리고 그의 나이 서른하나에 맞이했던 1992시즌에 조성옥은 자신의 커리어 최고 성적(39타점 .276)을 기록하며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과 팀의 두 번째 우승에 일조했다.

김응국, 김민호, 박계원, 공필성 등 라인업을 수놓았던 많은 선후배 선수들 사이에서 조성옥 역시 1992년 우승 멤버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1984년에 이어 1992년 우승을 모두 경험한 조성옥은 '롯데의 가장 화려했던 시절'을 보냈던 행운아이기도 했다.

▷ 지도자로서 '주연'이 되다

그러나 1992년을 마지막으로 조성옥도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1995년에는 고작 28경기에 출장해 타율 0.220을 기록하는데 그쳤고, 결국 그해를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통산 타율 0.248, 532안타(5홈런), 211타점을 기록하며 그라운드를 떠났던 조성옥은 이후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아마야구의 수장이 된 그는 더 이상 '조연 배우'가 아니었다. 그의 손을 거쳐 간 많은 제자들이 프로에서 두각을 나타냈기 때문이었다.

모교인 부산고 사령탑을 맡으면서 추신수(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백차승(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이라는 두 명의 메이저리거를 키워낸 것을 비롯하여, 정근우(SK 와이번스), 장원준(롯데 자이언츠), 김태군(LG 트윈스) 등 많은 프로선수들을 배출했다. 이에 부산고는 1999년과 2000년에 대통령배 대회 2연패를 달성하는 등 최고의 전성시대를 맞기도 했다.

이후 조성옥은 모교를 떠나 동의대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대학무대에서도 빼어난 지도력을 발휘한 조성옥은 올해도 팀을 춘계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대회 최우수 감독상까지 받았던 조성옥 감독은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렸다. 세계대학야구선수권 국가대표팀 코치로 내정되기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조성옥 감독의 신상에 어떠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대회 직후 '간암' 판정을 받았고, 이후 자신과의 어려운 싸움을 시작해야만 했다.

간암 투병으로 갖은 고생을 다 하는 조성옥 감독을 향하여 롯데 팬들도 쾌유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사령탑이 빠진 가운데서도 동의대는 대학야구 하계리그에서 A조 1위를 차지하는 등 선전을 거듭했다. 남은 것은 조성옥 감독이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와 주는 일 뿐이었다.

그러나 조성옥 감독은 2009년 7월 4일, 새벽 6시에 마지막 숨을 내쉬며 이 세상과의 영원한 작별을 고했다. 향년 48세. 한창 이룰 것이 많은 나이에 조성옥 감독은 그렇게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스승의 죽음 앞에서 제자 추신수는 머나먼 땅에서 연타석 홈런으로 추모를 대신하기도 했다.

롯데 자이언츠와 부산 야구의 버팀목이었던 조성옥. 분명 그의 현역시절 기록은 '주연'보다는 '조연'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는 롯데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멤버였으며, 고교와 대학무대에서 많은 제자들을 배출해 낸 명장이었다.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제자들이 '제2의 조성옥'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 김현희 객원기자
야구타임스 김홍석 편집기자(블로그 : MLBspecia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