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담

[스크랩] 잔뜩 기대했던 돌 선물, 웬 영수증 한장?

도깨비-1 2009. 3. 16. 11:33
뉴스: 잔뜩 기대했던 돌 선물, 웬 영수증 한장?
출처: 오마이뉴스 2009.03.16 11:32
출처 : 문화생활일반
글쓴이 : 오마이뉴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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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권영숙 기자]
개나리가 꽃봉오리를 터뜨리니 주변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여러 소식들이 들려옵니다. 누구 애 낳았대, 누구 아버님 돌아가셨어, 드디어 그 놈 결혼한댄다, 제게 꼭 알리지 않고 결혼해도 되고, 돌아가셔도 되고, 돌잔치 해도 되는데 인기가 많은 저는 그 온갖 소식의 교집합 안에 있습니다.

요즘 왜 그렇게 바쁘세요?
첫 손녀 돌이라서 신경 좀 쓰느라고.
헉. 괜히 물었다. 돌인걸 몰랐어야 입을 닦는데….
제가 공사가 다망하지 않은 관계로 바쁘기도 하고, 아는 사람도 많고, 나이도 초월해서 사람을 사귀는지라 제 친정 엄마 나이 되시는 분들과도 잘 지냅니다. 그 중 한 분이 첫 손주 돌이랍니다. 늘 저를 딸처럼 생각해 주시고, 잘 챙겨주시는 분이시기에 그냥 넘어갈 수 없어 선물을 고민했습니다.

고민고민….
또 고민고민고민….
그렇지!
잠시 잊고 있었던 선물이 기억났습니다. 저는 작년 여름부터 결혼식, 장례식, 돌 등등 축하할 일이나 위로해줄 일이 있으면 바로 이 선물을 합니다.





돌 선물로 준 후원금 영수증


ⓒ 권영숙


웬일이니? 네가 먼저 전화를 다하구?

1달러로 하루를 사는 사람들, 150원이 없어 한끼를 굶는 사람들, 마실 물이 없는 불가촉 천민지역 사람들, 학교도 가지 못하고 구걸하러 다니는 아이들… 우리는 음식물이 남아돌아 쓰레기로 버리는데 지구 저 편 어느 곳에서는 5초에 한명씩 굶어 죽고 있답니다.

후원금 영수증을 곱게 접어 편지를 씁니다. 내가 왜 이 선물을 하는지… 이 선물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상대가 좋아하건 안하건 그건 그 사람의 몫이기에 별로 고민하지 않습니다. 제가 이 선물을 하기 시작한 건 작년 북한동포의 아사소식을 접했을 때부터였습니다. 북한은 '95년 대홍수 이후 '98년 말까지 300여만 명의 희생자를 낳았는데 재작년부터 또 북한의 대량 아사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작년 여름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자고 제가 속한 단체(정토회)에서는 100만인 서명운동을 했고, 법륜스님은 북한동포의 죽음을 막아야 한다며 70일간의 단식으로 정부에 인도적 지원을 호소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바뀌었느냐구요? 아니요. 여름 휴가도 없이 100일간 밤낮으로 받아낸 100만인 서명용지는 한낱 종이조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북한동포의 굶어 죽음이 정부의 대북정책에는 변화를 주지 못했지만 제 인생에는 혁명같은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내 자식만 위하고 내 가족만 위하고 살던 제 인생을 한 순간 바꾸어 놓았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제 스스로 진보적이라 불리는 언론사와 진보 정당을 찾아다녔고, 잊고 지내던 친구들에게도 연락을 했습니다.

어머, 이게 누구야? 네가 먼저 전화를 다하고 해가 오늘 뜨긴 떴니?
호들갑스럽게 반겨주는 친구들에게 북한동포 돕자고 했을 때 반응은 다들 신통찮았습니다. '나도 먹고 살기 힘든데 누굴 돕냐. 너 아직도 그러고 사냐?', '뜻은 좋은데 김정일만 배부르게 하는 일 아니냐?', '북한 도울 돈 있으면 나 좀 도와주라. 우리 애들 교육비가 얼마 드는 줄 아냐? 너야 사교육 안하니까 모르지. 허리 휜다.'…

6.15 남북공동성명만 정부가 지키면 모든 게 다 됩니다.
북한 관계자들이 걱정은 고맙지만 굶어 죽지는 않는다던데요.
북한상황이 나쁘다는 건 알지만 굶어죽는 사진같은 게 없으면 보도가 힘들어요.
지금은 광우병 촛불집회로 운동 역량을 모을 때라서 북한동포 돕기는 잠시 미루죠. 지금은 때가 아니에요.

지금 당장 사람이 굶어 죽어도 지금은 때가 아니다

사람이 당장 굶어죽는데 때를 기다리자 했고, 언론사는 굶어죽는 사진이 있어야 기사화도 하고, 동포돕기도 할 수 있다고 했고, 진보정당은 6.15공동성명을 정부가 지켜야 한다는 원론적인 말만 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사람이 당장 굶어 죽으니까 나라도 나서서 한명이라도 살려 보겠다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큰바위 얼굴인 줄 모르고, 또 큰바위 얼굴이 되려고는 않고, 어딘가에 있을거라 착각하며 큰바위 얼굴을 찾아 헤매는 느낌이었습니다. 98년 300만명의 북한동포를 굶어 죽게 했던 역사를 두번 다시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는 제 말에 귀를 기울여준 언론사는 유일하게 < 오마이뉴스 > 뿐이었습니다.





돌 선물로 후원금 내고 영수증 주기


ⓒ 권영숙


이 세상이 공평하지 않은 건 돈 많은 사람들이 나누지 않아 그렇고,
이 세상이 공평하지 않은 건 돈만을 주인으로 섬겨서 그렇고,
이 세상이 공평하지 않은 건 사람들이 다 자기들 밖에 몰라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돈 많은 사람,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이 절대 저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북한동포 돕기를 하는 과정에서 저는 많은 걸 배웠습니다. 내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가치 있는 일인지… 외면하는 친구들의 모습 속에서, 빨갱이라 비난하는 길거리 사람들 속에서, 제가 그동안 외면하고 거절했던 숱한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가진 게 없어 나눌 것이 없다 생각했던 제게 100원에 딸을 팔아야 하는 북한동포는 죽어가며 이렇게 되묻습니다.

얼마나 더 당신이 돈을 많이 벌어야 이웃과 나눌 수 있고,
얼마나 더 당신이 이론적으로 자본주의를 비판할 수 있어야 이웃과 나눌 수 있고,
얼마나 더 당신이 많은 생각을 해야 굶어죽는 이웃에게 손을 내밀 수 있겠느냐고….
돈이 많다고, 가진 것이 많다고, 나누는 게 아님을 알았습니다. 100원이 되었든, 1000원이 되었든,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제게 부족했음을 알게 된 그 날, 전 밤새 뒤척였습니다. 하루 세끼 맛난 것만 먹고자 하면서, 비싼 몇 천원짜리 커피는 마시면서도 늘 가난하다고 느꼈던 지난 날을 돌아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분배의 정의는 바뀌어야 한다, 내 것을 먼저 나누는 것으로부터...

이제 저는 북한동포의 죽음에서 분배의 정의를 다시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많이 가진 사람들의 것을 빼앗아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었다면 지금은 아주 작더라도 내 것을 먼저 나누는 것이 바로 분배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너무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당신이 어떤 나라에서는 가장 큰 부자입니다. 적어도 당신은 150원이 없어 굶어 죽진 않으니까요.





특별한 돌 선물을 받은 아이 엄마가 보낸 문자.


ⓒ 권영숙


제 선물을 기꺼이 받아 준 그 분께 고맙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누군가에게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다면, 아니 바로 여러분 자신에게 새로운 인생을 선물하고 싶다면 지금 바로 나눠보십시오. 천 원이면 제 3세계 아이들에게, 북한어린이들에게 열흘간 밥을 줄 수 있고, 만원이면 한 가족을 한달간 살릴 수 있습니다. 커피 한잔, 담배 한 갑 아껴서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신다면 여러분의 인생은 정말 달라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살리겠다고 하신다면 그때 그 아이는 이미 죽고 없을지도 모릅니다.

한달에 천원도 소중합니다. 그 천원에는 여러분의 따뜻한 나눔의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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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행복합니다. 당신도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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