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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률의 베이징레터]여러분들은 눈물이 나지 않던가요?

도깨비-1 2008. 8. 24. 16:33

[임종률의 베이징레터]여러분들은 눈물이 나지 않던가요?

[ 2008-08-23 08:38:30 ]

베이징=CBS 올림픽특별취재단 임종률 기자


어제는 밤을 새웠으니 오늘 새벽입니다. 사실 술을 마시느라고였습니다. 어제 낮의 '베이징대첩'을 현장에서 접한 사람은 도저히 술을 마시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밤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저도 마셨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올림픽 야구 4강전이 열린 22일 우커송야구장. 관중석은 물론 기자석까지 빼곡히 찼습니다. 그동안 빈 자리가 있던 관계자석까지 가득 차더군요. 한국과 일본 기자들이 엄청 몰려서 기자석은 자리가 없었고 리포터에, 방송 관계자들까지 작은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원래 스포츠신문 기자였지만 이제는 방송기자가 된 저도 자리가 없어 일단 경기장 밖의 기자실로 밀렸습니다.(사실 방송기자들은 신문기자들과는 달리 기자석에 앉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관계자석에 앉을 수 있을 뿐이지요.^^;) 지금은 밀렸지만 나중에 생생한 인터뷰를 위해 권토중래를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경기를 보는 도중 가관이더군요. 일본이 앞서나가는 가운데 한국선수들이 삼진을 당하자 저쪽에 모여 있는 일본 기자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졌습니다. 경기장 기자석에서 밀린 것도 억울한데 소리까지 질러대니 울화가 치밀더군요.(성질 같아선 한 대 쥐어박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들이 조용해지더군요. 바로 이승엽 선수의 결승 투런홈런이 나왔을 때였습니다. 그때는 제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래, 승엽아!" "그동안 못 했던 거는 지금을 위한 거였어!"(사실 저와 나이가 같은 이승엽 선수와 개인적으론 한 두어번 정도 얘기를 한 것밖에 없습니다. ^^ㅋ)

옆에 있던 미국기자로 보이는 사람이 "경기가 끝났다!"(This game has been finished!)라고 하더군요. 짧은 영어에 잘 못 알아들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런 말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렇게 경기가 한국의 극적인 역전승으로 끝났습니다. 그 중심에는 이승엽이 있었습니다. 저도 경기가 끝나자마자 아까 다짐했던 생생한 인터뷰를 위해 달려갔습니다.

관중석의 팬들을 위한 인사와 세리머니가 끝나고 선수들이 믹스트존으로 들어올 차례였습니다. 당연히 한국기자들은 이승엽을 불러세웠겠죠.(경기 후 인터뷰는 생방송 등 화급을 다투는 방송 취재진이 먼저 한 뒤 자세한 문답을 위한 신문기자들의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승엽 선수의 인터뷰가 잠시 멈췄습니다. 첫 마디인 "너무 미안해서..."라는 말이 나온 뒤 눈물과 울음이 쏟아져 인터뷰 진행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걸 옆에서 보고 있는 제가 왜 주책없이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 하는 건지...) 해서 일단 좀 안정이 돼 보이는, 이날 천금의 동점타를 뽑아낸 이진영 선수부터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윽고 인터뷰에 응한 이승엽은 그래도 아직 정리가 덜 된 듯했습니다. "4번타자로 너무 부진해서, 너무 미안했습니다. 감독님이나 후배들한테 정말 중요한 경기였는데 아~ 이... 홈런 하나로 음... 만회한 것 같아서 너무 기쁩니다."(중간에 '아~ 이...' '음...' 하는 것은 울음을 참으려고 이승엽 선수가 내뱉은 말입니다.)

그럴 만했습니다. 그동안 이승엽은 엄청난 부진에 시달렸습니다. 본선 6경기에서 타율 1할3푼6리 무홈런에 그쳤습니다. 인상적인 모습이라곤 미국전 1타점 적시 2루타와 중국전 연장 승부치기 결승타 정도? 오죽하면 이승엽 선수는 중국전 이후 쑥스러운 듯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겨서 부끄럽습니다"란 말까지 했겠습니까?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읽혀지니 제 눈시울이 뜨거워지더군요. 이날 선발로 쾌투를 펼쳤던 김광현은 "승엽이형이랑 같은 방을 쓰는데 정말 마음고생이 심해 안쓰러웠다"고 했습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사실은 저도 고백합니다. 경기를 보면서 그래선 안 되는데 절로 안 좋은 말(실은 욕 ㅠㅠ)이 나오더군요. 4강전에서 중요할 때 삼진을 당하고 병살타를 치니 말이죠.

하지만 본인은 어떠했겠습니까? 정말 속이 탔겠죠. 팀 동료, 특히 병역 혜택이 걸린 후배들을 위해서 나왔는데 4번 타자가 1할대라니...유독 정이 깊은 이승엽으로선 견디기 힘들었겠습니다.


지난해 1월이었던가요? 이승엽 선수가 모친상을 당한 대구 빈소를 찾았습니다.(사실 대구에 사는 친구놈의 결혼식이 있어 내려갔다가 우연히 소식을 듣고 들른 거였죠.^^ㅋ)

그런데 이승엽 선수가 계속 우는 겁니다. 소식이 알려진 지 얼마 안 돼 이제 막 조문객들이 찾아들기 시작한 때였지만 정말 서럽게 울더군요.(저도 사실 올해 어머님이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이승엽 선수만큼 울었는지는 장담할 수 없군요.)

그런 사정을 아는 저로서는 이승엽 선수의 눈물이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올해는 소속팀인 일본 요미우리에서도 2군에 내려가는 등 부진했던 터였습니다.

어쨌든 이승엽이 통쾌한 결승홈런을 치고 난 뒤, 또 그래서 한국이 일본에 역전승을 거두며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결승에 진출하고 난 뒤 몇몇 야구기자들이 저녁식사를 위해 모였습니다. 또다른 4강전인 쿠바-미국전이 있었지만 그게 중요했겠습니까? 다들 술 한 잔씩 하고 싶었겠죠.

통쾌한 승리에 폭탄주 몇 잔씩 돌리고 나니 화제는 자연히 야구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어떤 선배는 이승엽 인터뷰 녹음한 것을 들어보자고 하더군요. 비록 직접 접하진 못했지만 이승엽의 눈물섞인 인터뷰를 듣고 감동을 함께 느끼고 싶었던 겁니다.

사실 저도 방송 리포트를 위해 이승엽 선수의 인터뷰를 들었는데 터져나오는 울음소리로 인터뷰가 중단된 부분을 들을 때는 정말이지 미치겠더군요. 그런 얘기들을 하면서 술을 마시고 밤을 샌 겁니다.(물론 일부 다른 기자들은 들어갔지만요.)

어떠세요, 여러분은. 그 경기를 보고, 그 인터뷰를 보고 눈물이 나지 않던가요?


airjr@cbs.co.kr


(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