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08년07월 상주여행-동해사, 남장사

도깨비-1 2008. 8. 16. 14:41

 
 연산동 사무실 근처- 출근길에 무궁화가 참 곱게도 피어 마음을 빼았겼습니다.
 

 
 상주 시내로 들어가는 초입길- 가로수가 정말 멋집니다. 잘 보전 되었으면 싶은데...
 도로확장에 희생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가파른 산길을 위태, 위태롭게 차로 오른 동해사 - 사실 절집은 별 볼게 없습니다. 영역도 좁고, 오래된 건물도 없는,
 역사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그러나 눈맛이 시원합니다. 상주 시내 쪽 신봉들이 한 눈에 들어 옵니다.
 근처에 도곡서당이 있데서 겸사 겸사 갔는데, 도곡서당은 못찾았습니다.
 
 

 
 새로지은 대웅전 꽃문살은  화려 하였습니다.
 

 
 우리 딸 , 아들, 마눌님입니다. 
 

 
 아들 놈 성화에 찍은 나리꽃(?)-맞는지 모르겠네요. 꽃 이름엔 문외한이라) 
 

 
 
 

 
 경내에 있는 배롱나무 입니다.
 

 
 내려오니 자동차에 잠자리 한마리 앉았습니다.
 

 
 동해사에 왠지 섭섭하여-아이들, 마누라 영 시시하다고 울상이라- 남장사에 갔습니다.
 고등학교 소풍때 한 번 가고, 30년도 더된 곳이라, 아무 기억도 없습니다만, 아이들은 좋아라 했습니다.
 저를 따라 젖먹이때부터 절에 다닌 탓인지, 절 분위기를 조금 아는듯 합니다.
 

 
 극락보전 앞 잔듸밭이 아주 좋습니다.
 

 
 삼층 석탑이 극락전과는 전혀 별개처럼 죽여주는(?) 잔듸밭 한 쪽에 서 있습니다.
 석가탑을 베낀 현대(대한민국시대) 탑이라  느낌은 별로입니다.
 짝퉁의 느낌은 어쩔 수 없겠지요. 그래도 현대적으로 재해석 한답시고 황칠을 한 것들보다는 났습니다.
 제대로 된 대한민국시대의 석탑을 한 번 만나고 싶습니다.
 

 
 극락전을 뒤로 돌아서 가면 보광전이 나옵니다. 극락전 보다는 훨씬 기품이 있습니다. 제대로 팔작지붕입니다.
 

 
 옆 -  嶠南講堂 (교남강당)- 현판글씨가  힘차고 훌륭해 보입니다.

* 교남 [嶠南]
조령의 남쪽이라는 뜻으로, ‘경상도’를 이르는 말

  *  嶠南(교남)-  영남() 과 같은 말 이랍니다.

 

 
 시골동네 - 집 뒤 옛 참남백이 가는 언덕에서
 * "참남백이" - "참나무 언덕백이"를 그렇게 줄여 불렀습니다. 어릴적이야 무슨 말(뜻)인지도 모르고,
                       그저 어른들이 그렇게 불렀으므로 따라한 것이지요. 키 크고 넉넉한 아카시아 나무가  여려그루 있었는데
                       그곳이 우리들의 놀이터 였지요.
                       저 멀리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한여름 정오의 뙤약볕을 피해 어르신들이 낮잠을 주무시곤 한낮의
                       햇볕이 조금 사그라 들면 또 들로 나가시곤 했지요.
                       그 옛날 옛날엔 참나무가 있어 참남백이 였는데,  언젠가 불에 타 죽는 바람에 아카시아를 심고
                       정자나무 그늘을 만들었는데요, 한번 참남백이는 영원히 참남백이이지요. 참나무가 불에타 죽고
                       그 옆  아카시아나무가  심겨져 있던 곳이 정자나무그늘이 되었는지만요.
 

 
 용담2리와 3리사이 언덕백이에 선 교회당- 내 어릴 시절에 사벌 근동에서 제일 큰 교회 였답니다.
 이웃 동네에서도 예배보러 왔었지요.
 지금도 상주시내에서 아리랑고개를 넘어 사벌 쪽으로 빠져 중덕벌에 서면
 저멀리 한눈에 들어오는 교회랍니다.
 

 
 내가 뛰어 놀던 참남백이가 이제는 복숭아 밭으로 변했습니다.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고, 전기가 들어오고, T.V가 보급되면서
 아이들도 점심 나절 낮잠으로 쉬어가던 어른들도 모두 집안의 선풍기나 T.V앞에서 쉬게되면서.. 
 참남백이는 그 효용가치를 잃고, 홀로 아까시아 꽃을 피우고, 지고, 그러기를 몇 몇 해,
 언젠가 모두 잘려나가고, 복숭아밭이 되었더군요.
 우리들의 가장 좋고, 가장 큰 놀이터 였었는데...,
 

 
 그래도 복숭아는 정말 튼실히 잘 열렸습니다. 하나 따고 싶은 충동을 아이들이 있어 참았습니다.
 해도 우리 어릴 적 서리얘기는 해주었지요.
 인심이 좋았다기 보다는 먹는 일에는 관대할 수 밖에 없던 시절 이야기를요.
 

 
 이제는 어느 도회 사람들의 입에서 맛있게 맛있게...  농사 지은 이를 칭찬받게 하겠지요.
 과일들 드시면서, 뙤약볕아래 땀흘린 이들의 노고도 기억하셨으면 참 좋겠습니다.
 

 
 우리 딸, 우리 아들-- 나는 팔불출입니다. 아들 딸이 잘 생겨 보여서요... ㅎㅎㅎ
 

 * 남장사 *

 

 상주시 남장동 502번지에 위치한 노악산(露嶽山) 남장사(南長寺) 는 신라 흥덕왕 7년(832) 진감(眞鑑) 혜소 대사(惠昭大師) 가 개창하였다. 당시의 사명은 장백사(長栢寺) 였으나, 고려 명종 16년(1186) 각원대사(覺圓大師) 가 남장사라 개칭하여 오늘에 이른다. 곧 상주지역 4장사(四長寺) 에 소속된 이 지역 대표적 사찰의 하나이다.

 고려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여러 차례에 걸친 중건. 중수가 있었으나,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을 들면 다음과 같다.

  성종 3년(1472) 의 중건을 거쳐 숙종 30년(1704) 환성영각(喚惺影閣) 및 진영각(眞影閣) 을 건립하였다. 다시 영조 41년(1765) 종산 화상(宗山和尙) 에 의한 부분적인 중수와 함께 정보 12년(1788) 후불탱화가 조성되었다. 뿐만 아니라 정조 12년이 되는 이 해에는 남장사의 괘불 제작을 위시하여 많은 불사가 이룩되는 시기이다.

  즉 사중에 소장된 '유명교주지장대성신화성복장원문(幽冥敎主地藏大聖新畵成腹藏願文)'에 따르면 남장사의 노비구 성학대사(省學大師) 가 입적하자, 그의 제자 총활(摠活) 등이 명부전의 지장보살과 십대왕을 비롯하여 장군, 동자, 그리고 사자상을 일시에 보결중수(補缺重修) 하였는데, 그해 사월 초파일에

목각후불탱 부분

 

시작하여 28일에 완성되었다고 하였다. 또한 <<본사불전유공록(本寺佛前有功錄)>> 에 따르면, 역시 같은 해에 백봉당(白峰堂) 신엄 화상(信嚴和尙) 이 상하법당(上下法堂) 의 불상을 개금하였으며, 가선팔도도선교승통성학(嘉善八道都禪敎僧統省學)이 명부전을 중수하고 영산탱을 새로 조성하였는데, 이때 소요된 비용은 전체 1천 8냥 8전이라고 하였다.

 또 정조 14년(1790) 에는 가선대부(嘉善大夫) 연추 화상(鍊秋和尙) 이 주동이 되어 영산전의 석가상과 16나한상, 그리고 각부(各部) 탱을 신조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철종 7년(1856) 에 극락보전을 중수 단청하였으며, 다시 고종 28년(1891) 에는 보광전을 중수하였고, 1926년에는 상로전(上爐殿) 및 하로전(下爐殿) 과 함께 진영각을 중건하였다. 또한 같은 해에 관음전 불상과 철조비로자나불상을 개금하였다. 1934년에는 대방(大房) 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찰의 구조는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과 그보다 높은 지역에 보광전을 중심으로 하는 두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사내에는 극락보전, 보광전, 진영각, 교남강당(嶠南講堂) 과 요사 등이 현존한다. 그리고 산내암자로는 관음전과 중궁암(中穹庵)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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