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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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자립은 타인의 도움이나 지배를 받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것이다. 대단히 어려운 일인데, 많은 사람이 ‘바라기만 하면 내일이라도 가능하다’는 오해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아직도 ‘친밀한 상호관계’라는 과거의 경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리라.
친밀한 관계가 지배적일 때는 결혼, 생활, 취업, 간병 등을 도와 가며 해결할 수 있다. 그런 시대에는 직장을 잃어도 품어 주는 가족이 있고, 나이 들어 돈이 없어도 자식에게 기댈 수 있고, 사업하다 돈이 모자라면 친구나 형제에게 빌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공짜였던 많은 일을 ‘돈’으로 해결해야 한다. 중매사업의 번창이 대표적이다. ‘결혼’을 투자라고 대놓고 말하는 세상이다. 효나 우애, 우정도 돈 앞에서는 무력해졌다.
인문학의 위기란 것도 따지고 보면 ‘돈’ 때문이다.
자기 성찰이 본업인 ‘인문학’에서 ‘위기’란 것은 애초에 없었지만(숭실대 박정신 교수) 새삼 문제가 된 것은 졸업해 봐야 취업도 힘들고 학위 따 봐야 자리 잡기 힘드니 수강과 전공을 피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인문학자 생계의 위기다.
소설이나 시 대신 ‘부자 되기’ 책들이 휩쓸고 있는 것은 ‘믿을 것은 돈뿐’이라는 집단 심리를 보여 주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이념의 시대를 넘어 돈의 시대로 접어든 지 오래다.
문제는 이런 사회 분위기가 좋다, 나쁘다는 게 아니라 한국사회의 자본주의가 심화 중이라는 사실이며 그에 따라 우리의 생활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우리 생활의 모든 영역에 ‘돈’이 개입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공짜였던 영역이 비즈니스 영역으로 들어와 돈이 없으면 얻을 수 없는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저성장까지 겹친 한국사회의 경제 주체들은 자본주의 마인드, 즉 ‘머니 마인드(money mind)’로 더욱 무장해 갈 것이다.
머니 마인드란 모든 행동에 대차대조, 즉 비용과 이익을 생각하는 것이다. 애국심, 전통, 명분에 따라 가능했던 행동도 내게 이익이 안 되면 무시해도 상관없다. ‘돈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남의 이목 때문에 결혼을 하거나 애국심 때문에 아이를 낳지는 않는다.
선택에 따른 비용을 남이 대신해 주지 않는 상황에서 모든 판단 기준은 남이 아니라 나다.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게 곧 선(善)이다. ‘행복한 이기주의자’ 같은 이기주의 찬미 담론들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뭔가를 팔아야 한다. 팔 것이 없으면 육체나 사생활이라도 팔아야 한다. 사회안전망이 갖춰지지 않은 한국사회에서 팔 것이 없는 사람들은 아차 하는 순간 생의 허방으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
추석 명절이지만 국민 10명 중 4명은 반갑지 않다고 했다. 돈 때문(45.8%)이다(한국갤럽). 한 결혼정보회사의 조사에 따르면 미혼 남녀들이 보름달에 비는 소원 1위도 ‘부자 되기’라고 한다.
이런 불안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비용 개념도 없이 30년 뒤 장밋빛 미래를 말하는 것은 허영에 가깝다. 한 사람의 자립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데, 감히 국가의 자주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철이 없어 보인다.
허문명 교육생활부 차장 angelhuh@donga.com
"[광화문에서/허문명]돈에 의한, 돈을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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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은 타인의 도움이나 지배를 받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것이다. 대단히 어려운 일인데, 많은 사람이 ‘바라기만 하면 내일이라도 가능하다’는 오해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아직도 ‘친밀한 상호관계’라는 과거의 경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리라.
친밀한 관계가 지배적일 때는 결혼, 생활, 취업, 간병 등을 도와 가며 해결할 수 있다. 그런 시대에는 직장을 잃어도 품어 주는 가족이 있고, 나이 들어 돈이 없어도 자식에게 기댈 수 있고, 사업하다 돈이 모자라면 친구나 형제에게 빌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공짜였던 많은 일을 ‘돈’으로 해결해야 한다. 중매사업의 번창이 대표적이다. ‘결혼’을 투자라고 대놓고 말하는 세상이다. 효나 우애, 우정도 돈 앞에서는 무력해졌다.
인문학의 위기란 것도 따지고 보면 ‘돈’ 때문이다.
자기 성찰이 본업인 ‘인문학’에서 ‘위기’란 것은 애초에 없었지만(숭실대 박정신 교수) 새삼 문제가 된 것은 졸업해 봐야 취업도 힘들고 학위 따 봐야 자리 잡기 힘드니 수강과 전공을 피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인문학자 생계의 위기다.
소설이나 시 대신 ‘부자 되기’ 책들이 휩쓸고 있는 것은 ‘믿을 것은 돈뿐’이라는 집단 심리를 보여 주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이념의 시대를 넘어 돈의 시대로 접어든 지 오래다.
문제는 이런 사회 분위기가 좋다, 나쁘다는 게 아니라 한국사회의 자본주의가 심화 중이라는 사실이며 그에 따라 우리의 생활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우리 생활의 모든 영역에 ‘돈’이 개입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공짜였던 영역이 비즈니스 영역으로 들어와 돈이 없으면 얻을 수 없는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저성장까지 겹친 한국사회의 경제 주체들은 자본주의 마인드, 즉 ‘머니 마인드(money mind)’로 더욱 무장해 갈 것이다.
머니 마인드란 모든 행동에 대차대조, 즉 비용과 이익을 생각하는 것이다. 애국심, 전통, 명분에 따라 가능했던 행동도 내게 이익이 안 되면 무시해도 상관없다. ‘돈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남의 이목 때문에 결혼을 하거나 애국심 때문에 아이를 낳지는 않는다.
선택에 따른 비용을 남이 대신해 주지 않는 상황에서 모든 판단 기준은 남이 아니라 나다.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게 곧 선(善)이다. ‘행복한 이기주의자’ 같은 이기주의 찬미 담론들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뭔가를 팔아야 한다. 팔 것이 없으면 육체나 사생활이라도 팔아야 한다. 사회안전망이 갖춰지지 않은 한국사회에서 팔 것이 없는 사람들은 아차 하는 순간 생의 허방으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
추석 명절이지만 국민 10명 중 4명은 반갑지 않다고 했다. 돈 때문(45.8%)이다(한국갤럽). 한 결혼정보회사의 조사에 따르면 미혼 남녀들이 보름달에 비는 소원 1위도 ‘부자 되기’라고 한다.
이런 불안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비용 개념도 없이 30년 뒤 장밋빛 미래를 말하는 것은 허영에 가깝다. 한 사람의 자립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데, 감히 국가의 자주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철이 없어 보인다.
허문명 교육생활부 차장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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