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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정윤재]옛멋 가득한 안동에 인공폭포라니

도깨비-1 2006. 11. 11. 14:25
 동아광장  



[동아광장/정윤재]옛멋 가득한 안동에 인공폭포라니



내가 처음 안동에 간 것은 대학원 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마을 의사결정 구조에 관한 연구에 참여해 현지조사 및 면담을 목적으로 전국 각 지역을 답사했는데 그중 하나가 안동 어느 마을이었다. 우리 일행은 오후 늦게 큰 소나무들이 멋지게 서 있는 고즈넉한 마을에 도착해 미리 정해진 숙소에서 식사를 하고 밤늦게까지 마을 분들과 시국이며, 학교 강의며 이런저런 대화를 꽤 오래 나눴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다음 목적지로 떠날 채비를 마치고 숙박비가 든 봉투를 집주인에게 내밀었다. 그러나 주인은 정색을 하며 “이게 뭡니까? 옛날로 치면 서울 선비들이 하룻밤 묵으면서 시골 무지렁이들에게 새롭고 좋은 얘기를 많이 해 준 것이나 다름없는데 무슨 돈입니까” 하며 극구 사양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버스 타는 데까지 우산을 받쳐 주며 우리를 정성스럽게 배웅했다. 이 마을은 당시 답사했던 전국 8개 마을 중에서 유일하게 숙박비를 사양했다. 제대로 된 선비 집안의 접빈객(接賓客) 도리를 다하는 아름다운 전통이었다.

 

산수화 같은 풍광 망치는 일

이중환의 ‘택리지’에 의하면 안동 일대는 조선의 4대 길지(吉地)가 다 모여 있는 곳이다. 이중환은 선비들이 살기 좋은 길지의 조건으로 산수(山水), 지리(地利), 생리(生利), 인심(人心)을 들고 안동 부근의 도산, 하회, 천전, 닭실을 이 조건에 가장 합당한 지역으로 꼽았다. 실제로 깊은 산골이 적은 안동은 평야가 널찍하고 큰 물난리도 없어 농사짓기는 물론 인심 좋은 사람들과 글 읽고 그림 치기에 좋은 동네다. 또 산수와 지리도 빼어나다. 예부터 전해지는 ‘양백지간(兩白之間)’이란 말은 태백과 소백 사이란 뜻으로 안동은 바로 이곳에 있는 길지다. 역사적으로 안동 일대는 임진왜란의 피해도 적었고, 근대공업화에 의한 파괴도 이웃 대구와 부산에 비해 적어 현재 남한에서 ‘가장 오염이 덜하고 기운이 맑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원광대 조용헌 교수에 의하면 길지의 네 가지 조건을 이상적으로 갖춘 곳에서의 삶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계거(溪居), 즉 냇가에 사는 것인데 안동 일대에는 산수화 같은 산과 계곡과 들이 멋들어지게 어우러진 곳이 참 많다. 그중 하나가 길안천 상류의 천지갑산(天地甲山)이다.

그런데 최근 안동시는 관광진흥책의 하나로 천지갑산에 가짜 폭포와 빙벽을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동아일보 9월 12일자) 해발 450여 m의 산 위에 5000t 규모의 물탱크를 세우고 높이 160m, 너비 40m의 국내 최대 인공폭포를 올해 말에 착공하여 내년 가을에 완공한다는 것이다.

천부당만부당이다. 인공폭포를 서울 양화교 부근의 그것처럼 도회지 한가운데 쓸모가 별로 없는 곳에 세운다면 몰라도 이미 빼어난 경관으로 사람들에게 푸근한 휴식과 쾌적함을 제공하는 천지갑산에 짝퉁 폭포를 세운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공사 중 주변 산림의 심각한 파괴는 불 보듯 뻔하고 가짜 폭포에서 새는 물은 바위들을 수축시키면서 부서뜨릴 것이다.

중국에 가서 멋들어진 자연풍경을 마음껏 구경하고 오는 세상인데 누가 짝퉁 폭포를 보러 안동에 가겠는가. 안동시에서는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추진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한국 정신 문화의 수도’라고 자부하는 마을 사람들이라면 생각을 더 깊이 할 줄 알아야 한다. 안동은 우리의 문화 전통과 자연환경이 잘 어우러진 모범 동네이니 부디 천지갑산 주변을 천박한 위락단지로 전락시킬 인공폭포 계획을 철회하기 바란다.

이것은 비단 안동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방자치제가 정착된 지금 전국 곳곳에서는 세수 증대를 내세워 말 못하는 금수강산의 자연경관을 마구 해치면서 각종 개발공사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중앙정부의 권위와 올곧은 시민운동이 필요하다. 미래학자 패트리셔 에버딘에 의하면 21세기는 사람의 정서, 정신, 영혼과 같이 보이지 않는 가치들을 고양시켜 주는 사람과 상품으로 돈이 쏠리는 새로운 메가 트렌드 시대다.

‘얼빠진 정신문화’로 무엇을 얻나

부디 선비전통이 서려 있는 안동이 인공폭포 계획을 포기하고 경쟁력 있는 포스트 모던 프로젝트 개발에 앞장서기 바란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하회탈 할배들은 그 천진스러운 너털웃음을 잃고 한 맺힌 눈물만 흘릴 것이고, 안동은 그저 ‘얼빠진 한국 정신 문화의 수도’로 전락할 것이다. 안동시민들과 시의원들 그리고 공무원들의 선비정신 회복을 특히 기대한다. 이 조그만 일에서 혼미한 나라의 앞길이 열릴 수도 있음을 깨달았으면 한다.

 

정윤재 객원논설위원·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tasari@aks.ac.kr

[2006.11.01 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