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담

[스크랩] 하늘에서 보낸 편지 기초수급자 할머니 “이웃 위해 써주오”

도깨비-1 2006. 8. 18. 21:35
출처 : 감동뉴스
글쓴이 : 한겨레 원글보기
메모 :



[한겨레] ‘만원짜리 100장과 오래된 우표들.’

지난 16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2동사무소에 한 중년 남자가 찾아왔다. 그는 어머니 사망 신고를 하러 왔다며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어머니가 꼭 전하라고 했습니다.”

봉투 겉에는 “○○아,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거든 이걸 보는 즉시 보지 말고 전해라. 부탁한다. 엄마가. 울지 마라.”라고 적혀 있었다. 봉투 안에는 다시 하얀 편지 봉투가 들어 있었고 그 안에는 1만원권으로 현금 100만원과 편지 두 장이 있었다. 오랫동안 모은 듯한 700여장의 우표가 정리된 스크랩 책자도 따로 들어 있었다.

편지 한 장에는 “위 돈을 이웃돕기 성금으로 한강로2동 사회복지사 아가씨에게 맡깁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나머지 한 장에는 “아가씨 사회복지과 2동 잊지 않을게. 이건 내 마지막 선물이야. 다음 생에 만나면 보답할게.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라는 ‘마지막 인사’가 적혀 있었다.

동사무소에서는 할머니의 유산을 받지 않으려 했지만, 아들이 “어머니 뜻이니 부디 그냥 받아달라”고 사정해 거절하지 못했다.

현금 100만원과 편지의 주인공은 지난 7월28일 숨진 이영순(75) 할머니. 할머니는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어렵게 살아와, 100만원은 사실상 평생 모은 돈이나 다름없다. 강영미 한강로2동사무소 사회복지사는 “할머니는 동사무소에서 주는 한달 40만원이 수입의 전부였다. 방세 내고 약값 쓰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을 텐데, 돈을 모았다니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보증금 300만원 월세 15만원짜리 다세대주택 단칸방에 혼자 살았다. 사람 둘이 누우면 더는 아무것도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좁은 곳이었다. 전화도 없었다. 동사무소에서 직접 찾아가야만 할머니의 근황을 알 수 있었다. 외롭게 살던 할머니는 그때마다 찾아온 동사무소 직원에게 그저 “고맙다”는 말을 거듭했다고 한다.

할머니에게 가족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들과 딸이 있다. 그러나 동사무소에선 둘 모두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 할머니가 아예 움직이지 못하자 아들이 나타나 옆을 지켰다. 동사무소에 나타나 할머니의 유언을 전했던 아들도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여서, 그의 형편이 어려웠음을 짐작하게 했다. 강 사회복지사는 “아들과 딸 모두 사정이 매우 어렵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할머니 건강은 최근 몇 해 사이 많이 안 좋았다. 2002년부터는 당뇨 합병증으로 눈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6개월 전부터는 호흡곤란이 겹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게 되자, 할머니는 마지막 가는 길을 혼자서 준비하게 된 것 같았다.

“우표 가운데는 소인이 1963년으로 찍힌 것도 있었습니다. 돈이나 우표나 할머니께서 평생 모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가난했지만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았던 한 사람이 이 세상에 남긴 소중한 유산 100만원은 그의 뜻대로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회복지시설에 기탁될 예정이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 온라인미디어의 새로운 시작. 인터넷한겨레가 바꿔갑니다. >>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