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우리의 역사기록은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우리 문화의 큰 자랑이다. 예컨대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시대의 ‘의궤(儀軌)’ 등.
역사를 바르게 기록한다는 것은 문명국만이 할 수 있는 역사(役事)다. 그 기록을 제대로 보존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은 큰 역사다. 기록하는 데엔 글이, ‘문(文)’이 있어야 하지만 보존하는 데엔 힘이, ‘무(武)’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기록문화의 역사는 특히 조선조 이래 숭문(崇文)만 하고 상무(尙武)를 소홀히 한 상실의 역사라 하면 잘못일까.
세종조 이후 네 벌씩을 분산 보관했던 ‘실록’은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 버리고 오직 전주(全州)사고본만 남게 됐다. 이를 원본으로 다시 다섯 벌의 ‘실록’을 만들어 나눠 보관했으나 그 뒤에도 이괄의 난, 병자호란 등을 겪으며 수난의 역사는 계속된다. 20세기에 들어와선 일제가 침략해 국권을 강탈하면서 오대산 사고의 실록 한 벌을 도쿄제국대학으로 빼앗아 가더니 1923년 간토(關東)대지진 때 대부분을 불태우고 만다. 그때 소실을 면한 실록의 나머지를 이번에 끈질긴 반환 교섭 끝에 도쿄대가 서울대의 개교 60주년을 기념해서 학술의 교류 협력 차원에서 ‘기증’한다는 것이다. 나쁜 소식은 아니다.
남의 나라 사적을 빼앗아 가서 800여 책 대부분은 불태우고 남은 겨우 수십 책을 93년 만에 돌려주는 게 무슨 대수란 말이냐. 게다가 훔쳐간 물건을 ‘기증’은 무슨 얼어 죽을 기증이란 말이냐 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힘이 있었다면 그러한 기록을 빼앗겼겠는가. 스스로 힘을 기르지 못해서 소중한 기록을 지켜 주지 못한 것은 어느 누구도 아닌 우리의 잘못이다. 그런 마당에 긴요한 것은 명분의 유무보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실익을 챙기는 일이다. 게다가 우리에겐 되찾아 와야 할, 되찾아 왔으면 하는 수많은 우리 문화재가 외국에 흩어져 있다.
가령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프랑스에서 약탈해 간 외(外)규장각 소장의 조선왕조 ‘의궤’ 수백 권…. 국사학자 한영우 교수가 고려시대에도 없었고 중국을 포함한 어떤 다른 나라에도 없는 ‘기록문화의 혁명’이라 일컫는 조선시대의 ‘의궤’에 대해 요즈음엔 서울대 규장각 소장품의 공개로 수많은 내외 인사가 그것의 학문적 그리고 예술적 가치를 찬탄하고 있다.
프랑스의 파리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의궤는 총 191종. 그중에서 국내에는 없는 유일본만도 당초 60여 종, 또는 30여 종 등으로 소문이 무성했다. 그러나 역사의 기록만이 아니라 그 기록의 보존에도 각별히 힘을 쏟은 조선시대에는 대부분의 의궤를 어람용의 정본(正本)과 함께 분산 보관할 필사본을 만들어 두고 있어 근래에 한영우 교수가 면밀히 조사한 결과 파리 소장의 유일본은 18종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조선시대의 역사적 의례(儀禮)를 더할 나위 없이 소상히 글로 그리고 그림으로 기록해 놓은 의궤 유일본이 18종이나 생뚱맞게 프랑스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다니 답답하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명분이 있고 없고 하는 것에 상관없이 140년 전에 약탈해 간 외규장각 도서들을 다시 찾아올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그에 대해서는 정부차원에서도 그동안 여러 차례 교섭이 있었으나 아무런 진전이 없다. 그럴수록 앞으로 프랑스와의 교섭에선 이번에 도쿄대에서 서울대에 ‘기증’형식으로 ‘실록’을 돌려준 것이 긍정적인 선례가 됐으면 한다,
외교교섭이 다 그렇겠지만 명분이나 실리를 한쪽에서만 취하려 한다면 협상은 이뤄지지 않는다. 실리를 얻으면 명분은 저쪽에 주거나, 실리도 명분도 함께 나눌 수 있을 때 교섭은 이뤄진다. 의궤를 돌려주는 것이 프랑스에 명분을 세워줄 뿐만 아니라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하기 전에는 협상은 앞으로도 공전할 듯하다. [2006.06.01 03:05]
(최정호 객원大記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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