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박사

[스크랩] 황 교수 기자회견 일문일답

도깨비-1 2006. 1. 12. 12:52
뉴스: 황 교수 기자회견 일문일답
출처: 연합뉴스 2006.01.12 11:54
출처 : 새튼, 황우석 박사에 결별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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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교수 기자회견 일문일답
-- 조작을 지시한 것이 맞는가. 그리고 난자 개수가 틀린 것에 대한 해명은.

▲어느 일을 할 때 구체적인 사항까지 지시하는 성격이 아니다. 큰 틀만 정해주고 거기서 나오는 최종 데이터만 받아보는 식이다. 어쩌면 과학자로서는 지적을 받아야 하는 결점이 있는 성격일 수도 있다. 무엇을 가지고 DNA를 검사하라고 할 정도로 모든 사안에 대해 꼼꼼히 챙겨오지 못했다.

대게 어떤 파트에서 일을 하면 그 내용을 받아보기만 했다. 2천여개의 난자가 공급됐다는 것은 보고서를 받아 보고 나서 알았다. 이를 총체적으로 파악한 바가 없었다. 2002년부터 2004년 초반까지 사용된 난자 기록은 유영준 전 연구원이 모든 기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 과정에서 논문에 나와있는 난자 사용개수와 다른 점은 총괄 책임자로서 내가 당연히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 실험에 사용된 것보다 더 많은 난자는 예비실험 단계에서 조건을 위해 사용되는 숫자가 많다. 김수 연구원이나 박선호 연구원도 있지만 사람의 난자는 매우 독특한 성질이 있다. 어떤 난자는 세포질이나 핵 자체가 빠져 나오지 않는다. 35개 난자를 받았을 때 난자 전체가 삶은 계란처럼 딱딱해 단 한개의 세포질도 꺼내지 못한 경우도 있다. 가져온 난자 중에서 쓸 수 있는 것들은 일정 부분 한정돼 있다. 2천개 난자 중 실제 사용된 난자는 논문에서 나온 난자의 두 세배는 아닐 것이다. (김수 연구원) 논문의 데이터는 속인 것이 아니고 논문에는 의미있는 데이터를 넣는 것이다. 여러가지 환경이나 팩터 등에 의해서 데이터를 통계처리를 하게 된다. 2005년의 난자 185개는 숫자가 맞다. 거기서 유래된 배반포로 실험을 하게 된 것이 정확하게 맞다. 난자를 공여해준 분들의 건강 상태 등에 따라 난자의 상태가 다르다.

--지금 미즈메디 연구원이 바꿔치기를 한 이유는 무엇인가. 배반포를 만들었다고 했는데 그 난자를 어떻게 구했고 줄기세포 수립되기까지의 시간은

▲왜 이런 행위를 했는지, 이런 결과를 초래했는 지 모르겠다. 배양이 안됐다면 안됐다고 하면 될 것이다. 전 대한민국을 수치로 몰아놓고 큰 파문을 불러일으킨 행위를 왜 했는지 정말 모르겠다. 만약의 경우 저 혼자 그 수많은 밤잠을 모르면서 제가 왜 이랬을까 갖은 가설을 다 그려봤다. 이 분들은 혹시 수정란 줄기세포를 배양해본 분명한 경험이 있어 이 복제 배반포에서 유도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자체내 자존심의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만약 이것이 모두 사실이었다면 김선종 연구원은 저희에게 논문의 제 2저자를 요구했었다. 물론 노 이사장은 저에게 2005년 논문의 교신저자를 원했다. 원래 논문의 기여도가 섀튼 박사가 많아 섀튼에게 준다고 했더니 제 2저자를 자신에게 달라고 했다. 김선종 연구원에게 제 2저자를 약속해 난색을 표했더니 미즈메디 병원에 대한 위상 등으로 제 2저자가 중요하다면서 자신이 김선종 연구원을 설득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김 연구원이 동의했다고 하면서 다시 2저자를 요구했다. 김 연구원은 이에 매우 씁쓸해 하면서 `어쩔 수 없죠'라고 말했다. 제 2저자를 담당하지 못한 것에 대해 계속 섭섭함을 표시했다. 모두 진실에 근거한 것이라면 논문의 제 2저자는 일생의 보증수표가 됐을 것이다. 파트타임으로 사립병원 연구실에 있으면서 박사학위를 한 사람인데 이 상황에서 제 2저자가 됐다면 그 가치는 컸을 것이다. 배반포는 계속 들어가는 데 성공을 하지 못했다면 배양기술 담당자를 다른 사람으로 바꿨을 것이다.

국내에는 차 병원의 정 교수 등 여러 전문가들이 있다. 외국에서도 배양을 담당하겠다는 많은 연구팀이 있었다. 사람의 면역 유전자가 들어가 있는 것이 무균돼지 맞춤형 줄기세포를 직접 배양한 바가 있다. 비슷한 비유로 적용한다면 101개를 이처럼 바꿔치기나 폐기나 훼손시키지 않았다면 서너개의 줄기세포는 만들지 않았을까 통탄한다.

--생명윤리법 발효 이후 매매에 의한 난자가 어렵다며 노 이사장이 특허지분을 더 요구했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이냐

▲ 노 이사장은 존경한다. 없던 일까지 만들어내며 폄하를 했지만 나는 그 분을 존경하며 감사의 마음이 가득하다. 그분 그런 적 전혀 없다. 다만 밝혀주고 싶은 것은 항간에 저와 문 모 교수의 불화설, 저와 노 이사장의 불화설 등이 나온 것 알고 있다. 나 그렇게 모진 성격 갖고 있지 않다.

분명한 것은 2004년 말 판교 프로젝트를 몇번에 걸쳐 설명한 적이 있다. 판교 프로젝트는 잘 되면 세계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좋은 계획이다. 저에게 이 계획을 경기도 행정을 맡은 고위 인사에게 설명한 적 있다. 부지를 확보할 계획이 있는데 황 교수가 동행을 해주었으면 분위기가 좋을 수 있다면서 부탁했다. 나에게 협조 요청한 것이다. 이 때 노이사장에게 그 동안 우정에 감사하며 다 협조드릴 수 있으나 나 자신이 철칙으로 삼고 있는 것은 제 이름을 빌어서 하거나 연구결과를 이용해 개인적 영업 이득도 취할 생각이 없으며 그런데 동원되고 싶지 않다고 얘기했다. 이것이 혹시 서운한 계기가 됐는 지 모르겠다.

두번째 보유한 영광은 자신이 갖게 해줄 수 있냐고 노 이사장이 말해 오케이(OK)한 뒤 연세대와 합동으로 IRB 통과, 서울대 수의과대 IRB 통과시켜 두명의 소아당뇨 환자 세포와 50여개의 난자를 보내 맞춤형 줄기세포를 만들어달라고 말한 적이 있다.

--서울대 조사위에서 말한 것처럼 2004년 2005년 논문 조작이 됐는 지 이에 대해 왜 조작이 됐는 지 설명을 해 달라

▲논문 조작의 기준이 뭔지 모르겠다. 2004년 논문은 흠을 잡는다면 분명한 것은 2004년 줄기세포로 테라토마까지 만든 것이 사실. 테라토마 사진이 좋지 않아 어디에서 누가 준 것인지 모르겠는데 테라토마 블럭을 미즈메디에서 넘겨받아 서울의대 모 교수에게 부탁해 사진을 부탁드린 경우가 있다. 테라토마 사진 한장이 실제 테라토마 사진과 다르겠다고 하면 (그것을) 조작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2004년 줄기세포가 실체가 없다고 하면 조작인 것인지 이 논문에 대해 확신했다. 2005년도 마찬가지다. 데이터 부풀린 것 인정한다. 1월9일 줄기세포 6개가 원인 모르게..가건물에서 둥둥 떠서 밑에서 오염된 물질이 들어오는 곳이 우리의 줄기세포 실험실이었다. 거기에다 본관 6층 동물 세포 배양실이 동시 오염이 이뤄졌다.

이미 미즈메디 병원의 줄기세포 2번 3번 제외하고 다 죽었고 이미 4개 부풀려 진 것 사실이다. 나머지도 콜로니가 만들어진 것도 데이터 과장이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논문 조작을 시인 못하겠다는 것이 아니냐

▲이 실험을 다시 시작한다면 맞춤형 줄기세포를 다시 만들어내겠냐는 질문이 있었는데 난자만 제대로 공급되면 6개월 정도면 저희는 맞춤형 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물론 국내외에서 이분야에 경험 많은 이들이 힘을 합쳐준다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우리팀만으로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데이터 자체는 부풀려졌다. 책임 그대로 다 지겠다. 연구에 대한 중압감으로 그런 일을 했다니 왜 그랬겠냐. 2004년에는 아무 중압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다. 제 눈으로 확인을 했다. 줄기세포 만들어졌던 것이다. 과학자로서 최상의 기쁨이다. 일생의 영애를 누릴 수 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영예를 누릴 수 있다.

더군다나 동물복제에 관해서는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대표 연구팀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 2005년 김선종 연구원에 의해 저런 꿈에도 그릴 수 없었던 멋진 결과가 나올 때 대한민국의 미래가 열렸다고 가슴 벅찼다. 왜 김 연구원 결과를 그냥 받아들였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데 이는 내가 져야 할 멍에다.

김 연구원 개인적으로 성실한 사람이다. 6명이 항상 세포를 함께 봤다. 5시 58분에서 6시 2분 사이에 도착했다. 저는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저에게는 줄기세포를 배양해 본 경험이 없었고 배양과정에 대한 중간단계의 진실성을 진단할 만큼 안목이 없었다. 그 저사람 진실된 사람이다라고 믿으면 그 양반이 하는 얘기와 결과는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성격적 단점이 화를 불렀다.

--수의대 연구팀에서 연구 못하면 다른 쪽으로 향후 연구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제가 태어나서 두번째 만나본 법보 신문의 김 이사장. 평소에 존경하는 어느 분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겠다고 했다.

눈이 많이 오는 날 나이가 많이 든 세 분을 뵌 적이 있는데 인터뷰 자리도 아니었고 기자도 없었다. 그저 덕담해 주겠다고 했는데 그 분 해주는 말씀 고맙게 들었다. 예측하지 못한 사이에 법보 신문이 이것이 보도가 된 적이 있다. 이것이 취재 윤리에 맞는지 모르겠다.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지도 모르겠다. 항의할 만한 기운도 의지도 없었다.

동국대 이야기는 내가 직접 드린 것이 아니다. 그런 구체적 이야기를 접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대학이라는 말은 앞날에 대한 미래 계획을 직접 드릴 것이 없다. 정부와 국민에 대해 지은 죄에 대해 한 평생 이 빚을 갚고 떠나야 한다는 심정이다. 갚아도 갚아도 갚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 있는 이 연구원들은...불광불급이란 말이 없다. 미치지 않으면 다다르지 않는다는 얘기. 우리는 미쳤었다. 일에 미쳤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오직 이 연구를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없을까 그거 하나 밖에 없었다. 첫번째 아내와 헤어졌었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다. 그거 한 요인 중 하나는 학문을 하고 싶었던 그 사유가 있었다. 가정 포함한 모든 것을 학문에 던지고 싶었다. 결과는 참담하다.

여기있는 이분들 저와 함께 미쳤던 대한민국의 소중한 인재들이다. 각각 흩어지면 다른 나라에 가서는 다른 나라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대한민국이 간직해야 할 정말 소중한 재산이다.

몇명의 우리 연구원들 제가 반성의 시간 가질 때 서울대 연구실에 온 것 아니고 황우석이란 사람을 보고 이 지옥행에 동참했다고 이 연구원들 저에게 얘기했다. 그리고 선생이 가는 길이 지옥이라면 그곳까지도 마지막 같이 하겠다고 했다.

나는 이분들 모시고 가기에는 도덕적 흠결이 크다. 누가 귀를 기울이겠는가. 남은 생은 반성과 회한 뿐이다. 그러나 이분들은 일할 수 있는 터전과 기회를 줬으면 한다.

이분들 잘 가꾸시면 우리의 저 소중한 결실이 서울대 조사위에서는 실제보다 많이 평가절하됐더라도 아무리 싸게 값을 매겨도 외국에 가서는 최고의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기술들이다.

이들도 저와 함께 사회에서 매도될 수 있다고 한다면 이 소중한 기술만큼은 누군가 다른 연구팀에게 그대로 넘겨드리고 싶다.

피땀으로 이룩한 이 기술이 대한민국의 앞날을 밝혀주는 데 이끌어주는 데 윤활유가 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그토록 다잡고 나왔지만 어떻게 하더라도 감정을 표출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더 이상 있기도 죄송하고 더 답변할 수 있는 염치도 없다.

마지막으로 언론인 여러분께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모든 화살은 저 한 사람에게 달라. 이병천 교수, 강성근 교수, 연구원들 일한 죄 밖에 없다. 저를 믿고 끝까지 이 모든 결과가 진실인줄 알고 밤잠 지세우면서 2006년 첫번째 임상 실험에 돌입하기 위해 애를 썼다. 죄송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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